강력한 햇살 같은 백조 또는 흑조 발

쥬스틴 이야기 3. 나에게 가브리엘이란

by 마누아 브르통

“헤이 쥬스틴, 병원에 몇 시에 가면 돼?”

이 새벽에 누가 전화하나 했더니 가브리엘이다.


“흐음음.. 예약 10시 30분이라고 했잖아 그거 물어보려고 이 새벽에 전화했냐?.”

발렌타인 생각에 잠겼던 목상태를 가브리엘에게 들키기 싫어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했다.


“뭐냐? 니 목소리?”

그런데 가브리엘은 그것을 귀신 같이 알아챈다.


1. 아침 햇살보다 쨍한 원래의 가브리엘


“아니 이 새벽에 전화를 하니까 말 안 하고 있다가 목 막혀서 그러지.”

“전화받은 사람이 잘못 아냐? 그럼 받지를 말지.”


‘역시 가브리엘이다. 이제 덜 아픈가 보다. 그렇지 강력해.’

가브리엘이 좀 나은 것 같아 나도 거기서 한술 더 떠 본다.

“어이구 왜 잠도 안 자고 일찍부터 전화해서 난리야? 너 이따가 늦지 말고 와.”


“응.”

가브리엘의 심플한 대답. 나는 또 길게 말한다.

“야 혼자 올 수는 있겠냐? 괜찮아? 이따 검사하고 점심이나 같이 먹어.”

“그래.”

“뚜뚜뚜뚜…”

'하… 전화를 이렇게 끊어버리다니. 평소의 가브리엘로 벌써 돌아왔다. 그래 안 아프구나. 넌 곧 낫겠다. 눈물이 쏙 들어간다야.’


가브리엘은 발렌타인과는 다르다.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어두움을 맞이한 적이 없다.

맞이? 아니 오히려 가브리엘은 어두움과 만난다면 주로 싸우고 줘 패는 성격이다. 지금 가브리엘에게 드리운 위기도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어쩌면 가브리엘 자신은 모를 수도 있다. 평소에 보면 가브리엘은 모든 문제를 약간 퀘스트 같이 취급하는 것 같다. 어떤 문제를 힘들다거나 괴롭다거나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이건 뭐지? 어떻게 해결하는 거야?’ 항상 이런 태도로 맞이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만났을 때는 ‘아 해결이 안돼? 냅둬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리지 뭐.’ 이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강 문제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쓰러졌다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혹시나 내가 무엇인가 못 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여서 소중한 친구 또 하나를 잃을까 걱정된다.

그 걱정으로 최근 며칠이 나에게는 알게 모르게 무거웠다. 그치만 이런 내 마음은 가브리엘이 몰랐으면 좋겠다.


그냥 내 마음은 내가 가지고 있고 싶다.

내가 하는 걱정으로 인해 가브리엘이 어깨에 진 짐이 더 무거워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같은 내 걱정 때문이 가브리엘의 마음을 휘저어 놓아서는 안된다.

아플 땐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은 저렇게 짧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심난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것도 물어보지 않은 이상 어쩌면 괜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아까 전화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피식 웃음이 난다. 아프니까 병원을 찾고 검사를 하는 것을 보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고 해결할 힘도 있어 보인다. 어둠이건 뭐건 찾아오면 맞서 싸울 것만 같다. 이겨낼 것 같다.


‘벌써 병원에 다 왔군. 오늘도 시작해 보자.’

가브리엘에게 다시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모습이 느껴져서일까? 피곤하게 시작한 하루이지만 아침 햇살 같은 용기가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빽빽한 새벽안개가 한 번에 걷히고 발걸음도 경쾌해지는 것 같다.


우리 병원 건물은 돌을 아주 잘 깎아 만든 회색 파사드이다. 매일 출근할 때면 흐린 날씨와 그 둘이 한 세트인 것 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오늘은 병원 돌 벽에 햇살이 부딪히는 모습을 선명히 본다. 햇살은 부딪히다 못해 언젠가는 이 벽을 뚫고 들어올 것 만 같은 에너지가 있다.

평소의 흐린 날씨보다는 햇살과 병원 건물이 훨씬 더 잘 어울렸구나 싶다. 계속 흐린 회색 날씨와 한 세트라고만 알고 있었다면 너무나 아쉬울 일이다.



햇살일까 가브리엘일까? 누구의 영향인지 가릴 수는 없지만 스터디 후 일과도 어제와는 달랐다.


“선생님, 이것 좀 봐주세요.”

“네, 제가 봐드릴게요.”

동료의 요청에도 오늘 일과가 짜증 나거나 지치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가브리엘의 벌써 검사가 벌써 끝날 시간이 되었다.

‘검사는 잘 받고 있겠지?’

나도 진료가 많아서 직접 가보기는 그렇지만 궁금하긴 하니까.


2. 빵과 백조 아니, 백조 발


“띠리링링”

‘어 가브리엘이다. 텔레파시인가? 소름이야.‘

“쥬스틴 내려와 점심 먹자.”

어디로 내려오라는 말도 없이 그러고는 끊어버렸다.

황당하다.

‘어디로 내려오라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그냥 병원 1층 제일 큰 로비로 내려갔다.


“어이 쥬스틴, 빨리 좀 와. 병원 앞 빵집이 맛있다던데? ”

뭔가 후련해 보이는 가브리엘은 싱글벙글하며 빵집을 찾는다.

“빵? 샌드위치 말고 그냥 빵?”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도 아니고 아침에 먹을법한 빵을 갑자기 왜 찾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 지금 잘 소화가 안 돼 그 쓰러지고 나서는. 좀 부드러운 거 먹으면 괜찮더라고.”

“그게 부드러운 게 아닌데, 너 지금 잘 먹어야 해. 아.. 뭐.. 그래. 그래도 지금은 소화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거라도 먹는 게 중요하지.”


‘그래 이렇게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뭐라도 찾아 먹으려는 것을 보니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졌다.

"근데 무슨 빵 먹게?"

"나? 일단 피낭시에 기본으로 하나랑... 점심시간인데 아직 있나? 브리오슈 오 프랄린 호즈*랑 쇼코 스위스* 너는?"

"난 뭐 샌드위치 중에 먹으려고. 그건 그렇고 너 회사는 어떻게 할 거야?”

'이때다.' 싶어 얼른 물어보았다.


왼쪽부터. 1. 쇼코 스위스(원래 저렇게까지 모양이 뚱뚱하지 않고 보통 길쭉하다), 2. 피낭시에, 3. 브리오슈 오 프랄린 호즈, 4. 말린 토마토를 넣은 치킨 샌드위치

“나? 모르겠는데?”

가방을 뒤적이던 가브리엘은 딴청 피우며 대답한다.


'내가 여기서 물러날쏘냐. 확실히 해둬야지.' 싶어 다시 물어보았다.

“쉴 방법은 없는 거야? 휴가나?”


“내가 휴가가 어딨냐 맡은 걸 그만둬야지. 아님 직종을 바꾸어야지.”

가브리엘은 눈도 안 마주치고 계속 대답한다.


“각자 맡은 일 하면 되지. 너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지 않을 텐데?”

나는 포기하지 않고 가브리엘의 눈을 마주치기 위해 가브리엘이 쳐다보는 쪽으로 요리조리 고개를 향하며 다시 질문했다.


“그러는 너는? 지난번에 휴가 갔을 때 난리 났었다면서 갑자기 담당 환자 응급으로 와서.”

'갑자기 내 이야기로 전환할지 생각도 못했는데. 뭐라고 대답하지? 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휴대폰을 보는 척하다 다시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휴가 가는 것과 아픈 건 다르지. 그때도 내가 휴가 간 게 아니라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 것이었으면 아무리 담당 환자가 응급으로 와도 내가 뭘 해줄 수가 없어.”


“그래 나도 지금 누워있거나 생명의 위독 정도는 아니잖아.”

'역시 얘는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는 것일까? 왜 대답이 다 있고 내 질문에 오히려 다시 질문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다시 다잡고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아이고 그러니까 그전에 뭐든 해야지. 건강회복하고 다시 일해도 늦지 않는 건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을 안 하더라고.”


“얘가 모르는 소리 하네. 내가 건강이 안 좋으면 클라이언트들이 불안해한다고.”


“그런 게 있어? 근데 네 건강이 그 사람들 불안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


“건강이 좀 더 중요하겠지? 근데 그걸 약점 잡아 클라이언트한테 슬쩍 이야기해서 클라이언트를 빼돌리는 파트너도 많아. 아님 그 자리에 다른 파트너 들여도 되고. 걔네도 장사해야지. 쉬면… 다시 복귀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네. “


“설마 다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야. 복귀도 할 수 있을 거야. “


“그럴 수도 있는데 내가 이때까지 겪은 펌은 다 그랬어. 여기라고 다르겠니?”


“너 그런 곳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어?”

더 이야기해야 하는데, 더 쉬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가브리엘이 그런 곳에서 버텼을 것을 생각하니 내 대답도 공감모드로 바뀌어 버렸다.


“뭘 그렇게 말해. 우리 모두가 정글에서 살고 있는데. 난 그래서 뭔가 백조처럼 살았지.”


“머래 얘가 백조라니? 너 지금 스스로 우아하셨다 이런 말 하는 거야?”

'얘한테 공감하기란 어렵지. 그렇지 착각했지 내가 또.' 자꾸 피식 웃음이 샌다.


'아… 그래도 가브리엘을 설득해서 쉬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네.'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쫑긋하고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런 나를 ‘뭐야?’라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가브리엘이 말했다.

“아니 그런 백조 말고!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물속에서 아등바등하는 죽어라 밀어 치는 백조 발. 백조 말고 백조 발처럼 살았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크게 뜨고 있던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떨어졌다.



“쥬스틴, 왜 … 울어 갑자기.”

가브리엘이 당황하며 눈이 커졌다.


내가 아무리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더라도 한 마디가 하고 싶어 졌다.

"너는 근데 백조 아니고 흑조야. 넌 흐벨*이잖아 가브리엘."



*브리오슈 오 프랄린 호즈 (Brioche aux pralines roses): 버터향이 나는 폭신한 빵에 분홍색 설탕을 입힌 견과류가 박힌 빵.

*쇼코 스위스(Choco suisse): 커스터드 크림에 초콜릿 칩이 씹히는 페스츄리 종류.

*흐벨 (Rebelle): 원래는 반항아, 반란자 같은 뜻인데 부정적인 뉘앙스로는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고 싸우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고 긍정적인 뉘앙스로는 불의에 맞서는 혁명가나 독창적인 사람 개척자를 칭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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