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이야기 2. 회사 째고 친구 만난 일
“띠링띠링 띠링띠링”
‘아 또 전화야. 누구야 이번엔.’
받기 싫지만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고 말았다.
브리스였다.
‘대표가 결국 전화 올 만큼 일이 더 심각해진 건가?’
브리스의 전화를 받으니 머릿속이 좀 더 복잡해졌다.
“다비드 네가 토요일에 서명할 때 분위기 좋았다고 했었잖아. 지금 상황이 좀 이상한데. 이야기 들었어?”
“응 너도 오페라 끝나고 와서 들러서 만나 봤잖아. 지금 상황은 대충 들었어. 그런데 지금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뭐 우린 잘 모르지만 상대측 회장의 마음에 변화가 있는지도 모르지. 좀 지켜보자고.”
“당장 할 일은 없는 거지?”
확인하고 싶었다. 적어도 오늘은 보장받고 싶었다.
브리스 말을 들어보니 각 팀 별로 해야 할 일을 확인하고 어쏘들에게 전달해 놓으면, 몇 시간의 조건부 자유가 주어질 수도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도 고민이 되었다.
창 밖의 초록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데도 한참 그 자리에 서서 창 밖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결국 창문을 꼭 닫으며 혼잣말을 말한다.
“그래 오늘 아니면 내일 없어.”
일단 얀에게 급하게 해야 할 일부터 이메일로 알려주고 대충 씻었다. 옷도 눈에 보이는 대로 입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지만 아직 덥지 않은 날씨에 재킷을 하나 손에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막상 나와서 걷고 있자니 어색했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따뜻한데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쓸쓸하고 차가운 기분이랄까? 그 따뜻함과 차가움의 차이가 내 속에서 도무지 섞이지 않았다.
“아 혼자 있기 싫은데.”
일 할 때 동료들이 있지만, 파트너로서 한 파트를 혼자 결정해야 할 때 홀로 있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일에서 떠나 나와서도 이렇게 홀로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면서 이게 인생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난 오늘은 혼자 있기 싫다.
햇살이 가득한 테라스가 있는 까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어디에 연락을 해볼지 연락처를 열어 보았다.
“이 시간에 나올 사람이 없지. 평일에 그것도 월요일인데.”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러워졌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로랑에게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회사가 우리 집 바로 근처여서 점심 약속만 없다면 나와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말이다.
문자 보내자마자 로랑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헤이 다비드, 어쩐 일이냐 평일에 갑자기. 뭔 일 있어? 회사 그만뒀어?”
“로랑 잘 지냈어? 그만두는 게 나으려나. 아 답답해. 그만두고 싶다 정말. 너 어디야 점심 가능해? 나 짐 너네 회사 근처 까페야.”
“이 사람아 나 그 너네 집 근처 회사 그만뒀어. 지금 실직기간이야. 좀 쉬고 있는데. 아마 2달 뒤에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게 될 것 같아.”
“그럼 축하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됐고. 어디서 볼래?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인데.”
“오리나 먹으러 갈래, 옛날처럼?”
결국 로랑을 만나러 나섰다.
약속 장소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오랜만에 낮에 파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좋은 날씨에 가벼워진 옷차림 그리고 햇살만큼 밝은 사람들 표정도 구경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크게 변한 건 없었지만 파리에 사람이 굉장히 많아진 느낌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세느강변을 타고 내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학생 때부터 갔던 서점을 지났다. 서점이 화장품 가게가 되어 있었다.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안에 든 것이 변했다.
나와 시간을 함께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지는 동안 나는 전혀 모르고 살았다니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정차해 있는 동안 그 주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호가 바뀌고 다시 출발한 버스와 함께 내 시선도 그곳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준비 못한 안녕을 전하며 그곳을 지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버스는 식당 근처로 향했고 식당 앞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로랑이 보였다. 서점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친구는 내 곁에 그대로 있다는 생각에 무언가 마음이 다시 잔잔해졌다. 그러자 아래로 떨어졌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가고 미소가 지어졌다.
버스에서 내리고 로랑과 반갑게 인사한 후 바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리 스테이크 마그헤 드 꺄나흐(Magret de canard)* 로랑은 오리 다리살 구이 콩피 드 꺄나흐 (Confit de canard)*를 주문했다.
사이드로 치즈가 잔뜩 들어간 감자가 길게 죽 늘어지는 알리고(Aligot)까지 주문했다. 이미 알고 주문한 것이지만 먹다 보니 양이 많다는 것이 다시 한번 실감되었다.
오리 스테이크가 딱 적당하게 조리되어 소금과 어우러지는 감칠맛이 훌륭했다. 다른 데는 오리 스테이크를 조각으로 썰어서 내오는데 여기는 통째로 내어주니 뭔가 더 실한 느낌이었다. 같이 나온 바게트도 너무 맛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레드와인을 부르는 맛이었다.
알리고는 치즈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한참 굳지도 않았다. 웬만해서 끊기지 않는 치즈 같은 알리고를 둘둘 말아 입안에 넣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로랑이 말한다.
“콩피 드 꺄나흐도 좀 먹어볼래?”
아삭하고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콩피 드 꺄나흐도 진짜 맛난다.
“로랑, 여기 진짜 오랜만인데 맛이 그대로다.”
“너랑 나랑 여기 이러고 있으니까 재밌네. 옛날에 시험 끝나고 여기 와서 배 터지게 먹던 그때 같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어 그러네”
“근데 다비드,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마그레 드 까나흐(Magret de canard): 푸아그라를 만들기 위해 키운 오리의 가슴살을 마그레라고 부름. 그 마그레를 스테이크처럼 조리한 것으로 육질이 진하고 풍미가 강한 것이 특징임. 껍질아래 두껍고 고소한 지방층이 형성되어 있어 잘 조리한 경우 겉바속촉함. 보통 로제라고 하여 레어 같은 상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임. 단맛이 나는 소스를 같이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음.
*콩피 드 캬나흐 (Confit de canard): 오리기름 속에 오리 다리를 넣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힌 뒤 오븐에 다시 바삭하게 구워낸 요리. 오랜 시간 기름에 익혔기 때문에 살결이 결결이 찢어지는 부드러우며 겉은 다시 바삭하게 구워 냈으므로 잘 조리했을 경우 겉바속촉의 정석임.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표지 사진은 마그레 드 꺄나흐를 통째로 서빙하지 않고 잘라서 서빙한 예입니다. 이번 화의 음식이 담긴 세 가지 접시 그림 중에 무엇이 가장 맛있어 보이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