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을 줄 알았어

다비드 이야기 3. 치열한 로펌 파트너 경쟁. 오늘은 디저트도 먹을 거야

by 마누아 브르통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지난 이야기 마지막)



1. 끝이 있을 줄 알았어


로랑의 질문을 들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그헤 드 꺄나흐(오리 스테이크)를 썰다가 칼을 식탁에 놓았다. 잔으로 시킨 와인을 벌컥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난 끝이 있을 줄 알았어. 쉴 수 있을 줄 알았어.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휴게소도 나오고 풍경도 보고 쉴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


내 말을 듣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로랑이 다시 물어온다.

“왜 못 쉬는데? 휴가 내고 쉬면 안 돼?”


“내가 휴가를 낸다라. 휴가 내가 승인하는 거야. 내가 파트너니까.”


“그런데 뭐가 문제야?”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로랑이었다.


당연히 모든 회사가 바쁘겠지만, 그냥 지금 나의 상황은 이해가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속해있는 이곳이 그냥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되었다. 그러다 존재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즐겨본 적 없는 여름휴가가 생각이 났다.


“로랑, 여름휴가 기간 때 휴가 안 간 적 있어?”


“없지. 너는 그럼 여름휴가도 안 가?”

“가긴 가지. 가는데 대부분 일하고 있지.”


“그게 무슨 휴가야? 아니 8월에는 회사들도 다 쉬고 거래도 없는데 왜 일을 해?”

“그러게 왜 그럴까? 난 거의 십몇 년을 그러고 산 것 같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시대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바게트 빵 조각을 갈기갈기 손으로 쪼개며 자근자근 씹어 먹던 로랑이 다시 말한다.


포크랑 칼이 왜 반대로 놓여있을까. 로랑은 뭘로 먹으라는 거냐 제미나이.


“그래 그럼 휴가 못 가서 힘들다 쳐. 그럼 휴가 가면 되는 거고. 휴가 제대로 못 가는 거 말고는 뭐가 또 힘들어?”


2. 과열된 경쟁, 불안, 허무


“휴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쉬지를 못해. 좀 잘 되어 보이면 클라이언트를 다 자기가 데리고 가고, 좀 안되면 책임 넘기려고 언제든지 호시탐탐 노리는 것들 때문에 말이야. 그렇게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거든.”


“아니 한 로펌 안에서 클라이언트를 빼앗아 간다고?”

로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후 아주 자주 있는 일이야. 그래서 싸우고 소송하고 찢어지고 붙었다가 다시 처참해지고 볼꼴 못볼꼴 다 보고. 너무 흔한 일이야.”


“그래도 다비드 너네 팀은 괜찮지?”


“응 팀은 제법 괜찮은 편인데. 애들한테 맡겨두고 온 게 영 마음에 걸리네.”

대각선 테이블에 신입 어쏘(associate) 변호사 나이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정장을 입고 자기네들끼리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얀과 우리 팀의 인원들이 지금 나 없이 어떻게 있을지 더 마음이 쓰였다.


6명을 한 테이블에 그려달라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포도주 잔 두 개를 앞에 둔 욕심쟁이 빼곤.


“무슨 일 있었구나?”


“어. 자세히는 말 못 하는데 거래되자마자 갑자기 이번 주에 난리 난리 치는 상대측 때문에. 아 난리 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낌새를 조금 풍기는데 로펌에서 압박을 넣는 거지 그 일 내가 디렉팅 했다고.”


“어우 살얼음 같아서 견디겠어? 그렇게 늘 불안 불안하게 지내야 한다니 상상이 안된다.”


“어. 그래서 내가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어.”


“그래서 어쩌게?”


“몰라 나도. 일단 오늘은 좀 쉬고 싶었어. 나 몇 달 동안 주말이 없었다. 밖이 이렇게 푸른지 오늘 처음 알았어. 눈 뜨고 밖을 제대로 쳐다본 게 몇 달 만이야. 봄이 벌써 스쳐 가버렸더라. 날이 아직 이렇게 찬데 다 푸르더라고. 난 꽃도 못 봤고 해도 못 봤어. 오늘이 처음이야. 6월 다되어서 말이야.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하고 난 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쉬었다.


“뭔가 슬프다 다비드.”

로랑의 눈썹과 입이 아래로 쳐지며 고기를 썰고 있던 것을 멈추고 칼과 포크를 테이블에 놓았다.


죽어서 고기 남긴 이 오리보다는 덜 슬퍼. 난 아직 안 죽었잖아.”

“비유가 뭐 이래. 밥 먹겠어?”

“거의 다 먹었어 다."


"디저트는 먹을 거야?"

"당연하지. 점심때 늘 빨리 먹으려고 본식 외에 디저트는 늘 꿈도 못 꿨어. 나 오늘은 디저트도 먹을 거야."


"그래 지금이라도 한숨 돌려."


"아 난 아직 준비가 안되었단 말이야. 계절이 이렇게 마음대로 지나가 버리는 게 어딨어. 매년 이래. 매년 내가 겨울을 느낄 새도 없었어. 어느 날 바바리 입고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데 눈이 오더라.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상기후인가 싶었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그냥 가버렸고 가을이 가고 12월 초였던 거야. 그리고 봄? 나는 꽃잎 한 장 못 봤어. 새벽에 해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지고 들어오니까 이렇게 햇살이 깊어졌는지 밝아졌는지 그리고 뜨거워졌는지도 전혀 몰랐다고.

아까 속사포처럼 다 내뱉어 놓은 줄 알았는데, 아직 내 속에 이렇게 말할 것이 많은지 말하고도 새삼 스스로 놀랬다.


“나한테 투정하니?”


“푸념이다. 허무하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야.


“그래 푸념하고 싶으면 해야지. 근데 그래도 그렇게 해서 많이 벌잖아.”


“나 돈 없다. 집 샀다. 매달 은행에 빠져나가는 돈 때문에 회사를 그만 못 둔다.”


“알지. 집들이에 갔었잖아. 아니 그러게 왜 그렇게 비싼 걸 샀어 파리 시내 한 중간에.”


“출퇴근하는 시간 줄이려고. 다니기 편한 곳을 골랐지. 하필 그 동네가 젤 비싼 걸 어쩌겠니.”


“아이러니하다. 일 잘해보려고 집도 회사 근처에 샀는데 그 집 때문에 그 회사를 못 그만둔다니."

그렇게 말하고 나를 쳐다보는 로랑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3. 그래, 아이리스


맞다. 로랑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로랑 머릿속에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리스 말이다. 지금 사는 집을 처음에는 아이리스와 함께 마련했다. 둘이서 갚아 나갔다. 할만했다. 우리가 함께 마련한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리스는 더 이상 이 집에 나와 함께하지 않게 되었다. 나 홀로 이 집에 남았다.


"로랑, 네가 보기에 내가 지금 이 일에 휘둘리는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님 말고. 아이리스가 그렇게 말했었거든. 그러면서 이 일 그만두라고. 아니면 헤어지겠다고."


내 말을 듣고 있던 로랑의 눈동자가 더욱더 흔들렸다. 방금 나온 디저트도 떠먹지 못하고 정지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 맛있는 사과조림 타르트 딱뜨 딱 땅 (Tarte Tartin)을 앞에 두고도 정지 상태가 된 로랑. 왜 하필 디저트 먹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니 다비드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다비드가 로랑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인 것 같습니다. 다비드처럼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클 때가 있죠. 여러분이 다비드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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