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지, 정리하러

전쟁으로 쌓은 다비드의 내공, 같은 편의 교활함을 정리할 시간

by 마누아 브르통
“[... ] 일에 치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런 깡다구는 언제 생긴 거야?”

“내가 일에 괜히 치이고 있었겠어? 전쟁 중에 도망갈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지.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매일 이 전쟁만 치렀는데, 나도 내공이 있지. 이제 이 전쟁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네.”


1. 브리스의 교활한 커뮤니케이션


“다비드 너 핸드폰에 뭐가 온 것 같은데?”

나를 떠난 아이리스 이야기를 불쑥 꺼냈더니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던 로랑,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메일 알람이 보인다.

‘아 교활하게 이런 이메일을 보내다니.’


갑자기 속에서 화산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손이 덜덜 떨리고 어깨에 소름이 솟는다.

내 눈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로랑이 디저트 먹기를 포기하고 나에게 묻는다.


“무슨 일 있어?”

“하… 이 새끼.”

“혹시 너네 메니징 파트너야?”

“너 브리스를 어떻게 알아?”

“내가 왜 몰라.”

내가 깜빡 잊고 있었다. 로랑도 브리스를 잘 알고 있다.


지난가을쯤이었다. 우리 로펌에서 일을 잘하던 주니어였는데 인하우스 변호사(사내 변호사)*로 한번 일해보고 싶다며 로펌을 나간다고 했었다. 사모펀드 팀의 파트너 아나이스와 함께 일하던 변호사였다. 정말 일도 잘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너무나 매끄러웠던 변호사라 사모펀드 팀의 대표인 아나이스가 그 변호사의 이직을 너무 아쉬워했다. 그래도 추천 편지도 잘 써주고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도록 아나이스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주었는데 브리스가 그걸 다 망쳐버렸다.


그 변호사가 나간다고 하자, 브리스가 그 주니어 변호사를 불러다가 말했다.

“지금 시기에 나가는 것은 좋지 못해요. 주니어 시기에 이렇게 빨리 이직하는 것은 본인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게다가 팀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어서 지금 이직은 좀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와인잔에 있지만 와인 아니고 포도주스일 거라고 생각하자.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제미나이가 끝내 지워주지 않은 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고 모두를 생각하는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당시 로펌의 HR(인사) 팀이 재조직되는 상황이었고, 누군가를 다시 리크루팅* 하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 주니어가 나간다면 몇 달 동안 그 자리는 공석으로 두어야 하고 사모펀드 팀이 매우 힘들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 당시 사모펀드 팀과 면밀히 일하고 있던 브리스로서는 그 시점에서 주니어 변호사의 이직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주니어 변호사에게 사실대로 말했으면 주니어 변호사가 한 번쯤 생각을 다시 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브리스의 에둘러하는 말에 숨겨진 의도,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지 마라.”라는 말을 당연히 파악했고 결국에는 퇴사를 선택해 버렸다.


그리고 퇴사 후 이직을 하려는 회사가 바로 로랑이 법무팀장으로 있던 회사였다.

로랑의 회사는 우리 로펌의 고객이었다. 그 회사에서 리퍼런스 체크*겸 우리 로펌으로 연락을 취했을 때 아나이스도 답을 했겠지만 브리스가 이메일을 시스템을 통해 그 회사와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하게 되었고, 로랑 회사와 그 당시 업무 미팅 때 슬쩍 이런 이야기를 흘렸다.


“그 주니어 변호사는 우리 로펌의 최고 에이스라고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동료를 조금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워요. 우리는 그 점을 많이 도와주려고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은데 지금은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네요.”


팀원의 협력을 중시하는 로랑 회사에서는 브리스의 말을 듣고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그 말이 고용하려는 팀에 전해졌는지, 그 주니어 변호사의 고용은 취소되어 버렸다.


리퍼런스 체크*는 보통 채용과정 중에 가장 마지막 단계인데 그 단계에서 브리스 때문에 일이 그렇게 꼬여 버렸다.


주니어 변호사를 직접 담당하던 아나이스에게 전화 한 통만 해보았다면 브리스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유는 법무팀장인 로랑에게 까지 이야기가 올라가려면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그 단계 사이에 마치 그 주니어 변호사가 큰 결함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에 무슨 일이 더 있었는지는 누구도 명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브리스가 긴밀하게 협력하던 고객사에게 자신이 원하는 버전의 이야기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전달하기는 매우 쉬웠을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뒤쯤 한 컨퍼런스에서 로랑은 아나이스와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 이 주니어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나이스가 로랑에게 인사하며 물어보았다.

“로랑, 반가워요. 우리 주니어 거기로 이직한다고 했었는데 잘 되고있나요?”


2. 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결과, 이젠 내 식대로의 대응을 할 차례


로랑은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다비드, 기억 안 나? 난 진짜 그 브리스라는 인간이 이런 인간이라는 거에 대해 너무 놀랬잖아. 내가 아나이스도 아는데 금방 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도 있을 텐데 간이 정말 커. 게다가 그 주니어 변호사에게는 첫 이직이잖아.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흔들어버리면 걔는 어떻게 해?


“그래 네가 이 이야기했던 것 같네. 근데 그때 그러고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해결했었다고 네가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

“전화했었지. HR에 그 주니어 연락처를 물어봤지.”

“아 그래 네가 그랬던 것 같다. 근데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데?”


“다른데 취직했는지 물어봤지. 만약에 아직 이직 못했으면 자리를 다시 제안하려고. 그런데 다행히 이직이 결정된 모양이더라고. 우리 경쟁사로.”

“거기는 리퍼런스 체크*를 안 했대?”

“거기는 브리스가 어떤지 아는 것 같아. 진짜 싫어하거든. 그 주니어한테는 다행이지."


"이제야 기억이 다 나네. 나도 네가 어떻게 해결했다는 이야기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생각이 가물가물했어."

"다비드 너 뭐냐. 그때 너 이 이야기 듣고 그 주니어 취직 안 됐으면 브리스 가만 안 뒀을 거라더니 다 잊고 있었어?"


"네가 나처럼 주말이고 밤이고 없이 살아봐라. 아무리 괴로웠던 것도 다 잊고 산다 잊고 살아. 괴로울 시간이 없어. 그것도 시간이 있어야 괴로울 수 있다고."


"아휴 진짜. 근데 다비드 너 브리스한테 받은 이메일 뭐야 또. 괜찮은 거 맞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너무나 다양하게 열받는 다비드 이야기를 하는 틈에 말이다.


“이 X새끼, 앙푸아레(enfoiré, X새끼 또는 쓰레기 같은 놈)가 나 대신에 내 고객한테 답을 하네? 내가 건강상 문제가 있어서 잠시 쉬고 있다는 말을 잘도 지어내고.”

“하 대단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가야지. 정리하러.

눈썹을 치켜뜨고 식탁을 주먹으로 ‘탕’ 치며 말했다.


“지금?”


아니 내가 가고 싶을 때. 일단 디저트부터 다 먹고. 내버려 두어 지 마음대로 하게. 어차피 지 마음대로 안돼.”


“다비드 너 달라졌다. 일에 치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런 깡다구는 언제 생긴 거야?”


“내가 일에 괜히 치이고 있었겠어? 전쟁 중에 도망갈 수는 없잖아.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매일 이 전쟁만 치렀는데, 나도 내공이 있지. 이제 이 전쟁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네.”


제미나이에게 약간 낮으로 그려달라 했더니 너무 쨍하게 그려서 이 버전으로 돌아옴.



*인하우스(In-house) 변호사: 특정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고 일반 기업이나 기관 내부의 법무팀에서 일하는 변호사.

*리크루팅 (Recruiting): 인재 채용 및 인력 확보를 일컫는 말.

*리퍼런스 체크 (Reference check): 채용 시 평판이나 업무성과 등을 주변 인물(전 직장동료, 상사 등)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다비드가 이 전쟁에 대한 계산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이제 브리스랑 한판 하러 가려는 것일까요?

다음 주는 이동하는 일정이 많아 22화는 4월 13일-19일 주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만약 이동 중에 시간이 좀 생긴다면 그 전에 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소식 전하겠습니다.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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