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 vs 해결사

문제를 대하는 태도

by Mano

요즘 어느 자리를 가도, 어떤 관계 안에서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이 불편한지 좀처럼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는데, 내가 처한 상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계속 무엇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상황들과, 관계에 대한 부담감들이 그것이었다.

그런 상황들의 풍경은 대충 이렇다.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많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손이 빠르고, 실수 없이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다. 그들의 능력은 분명히 눈에 보인다. 그런데도 불편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조는 그대로, 반복되는 문제는 그대로, 어긋난 흐름도 그대로다.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바뀌게 만드는 사람”이 적다는 말은 결국 이 간격을 말하는 것 같다.


그만 좀 투덜대세요.

사실 이 말은 내가 회사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다들 웃으면서 하는 말이긴 한데,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앞에 물건이 있으면 옮기면 되는데, 물건을 돌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을 묘사하자면 자주 이런 모습이다. 나는 또 웃으면서 딴지를 건다.

"이걸 본 사람이 없어요?"

내가 보기엔 해결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불만이 있다.

여기서 불만은 투덜거림이 아니다. 세상을 미워하는 성격도 아니다. 해결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훨씬 실용적이다. “이게 왜 이렇게 불편하지?” “왜 매번 여기서 막히지?” 같은 감각이다. 남들이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는 지점을 그 사람들은 그냥 못 지나친다. 불편을 불편으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불편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것. 당연하게도 해결은 대체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거창하지 않다. 아주 사소한 균열에서 시작한다. 한 번의 누락, 애매한 규칙, 책임의 공백, 말로만 존재하는 약속.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면 사람은 지치고, 조직은 느려지고, 관계는 어긋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그 불편을 그냥 둔다. 문제를 건드리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불편을 들춰내는 순간 ‘까다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게 되고, 누군가는 갈등을 맞닥뜨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당히 친절해지고, 적당히 배려하며 몸을 사린다.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친절과 배려가 때때로 해결을 막는다.

정확히 말하면 친절과 배려 자체가 아니라, ‘몸을 사리는 방식의 친절’이다. 말로는 공감하지만 행동은 바꾸지 않는 친절, 불편을 알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로 덮는 배려, 갈등이 생길까 봐 핵심을 말하지 않는 조심성. 이런 태도는 분위기를 잠깐 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문제를 없애지는 못한다.

해결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느 순간에는 불편한 말을 해야 한다. 어느 순간에는 경계를 세워야 한다. 어느 순간에는 책임을 가져가야 한다. 그 불편을 통과하지 않으면 해결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해결하는 사람들은 종종 불편한 사람이 된다. “이거 좀 알고 넘어가자”라고 말하고, “꼭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한다. 해결되지 않은 어떤 이슈를 화제로 던진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공격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해결사가 드문 것이다. 해결이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불편함을 감당하는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어려운 것이 있다. 기가 막히게 불만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있다. 문제를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불만을 이야기하면서도 관계와 모임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결사는 단지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사에게는 능력이 하나 더 필요하다.


유머감각과 센스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 핵심을 올려놓는 말의 온도. 상대가 방어적으로 굳기 전에 “우리 편”으로 끌어당기는 화법.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날을 세우는 대신 웃음을 한 번 섞어주는 여유.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흐리지 않는 균형감. 결국 해결은 ‘정답’이 아니라 ‘사람’ 위에서 굴러가니까, 사람을 다치게 하면 해결은 멈춘다.

유머는 가벼움이 아니라 기술이다.

센스는 눈치가 아니라 배려의 형태다. 해결사가 가진 유머는 문제를 덮기 위한 농담이 아니라, 문제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완충재다. 해결사가 가진 센스는 불편을 회피하기 위한 요령이 아니라, 불편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해결사는 “분위기 망치지 말자”가 아니라, “분위기 망치지 않으면서도 바꾸자”를 선택한다. 이 한 줄이 결국 차이를 만든다.

연애도 비슷하다. 관계를 지키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를 함께 한다. 불편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에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서운함을 말하되 비난으로 가지 않고, 문제를 꺼내되 관계를 흔들지 않는다. 그러려면 말의 감각이 필요하다. 농담을 던질 줄 아는 가벼움이 아니라, 서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여유.

결국 사랑도 어느 선에서는 문제 해결이니까. “내가 맞다”가 아니라 “우리 관계가 나아지게 하자”를 선택하는 능력.

“사랑이 식었다”가 아니라 “확인이 부족하다”일 수 있고, “상대가 나빠졌다”가 아니라 “내 불안이 커졌다”일 수 있다. (이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자주 문제가 생기는 듯하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면, 해결은 절반이 끝난다. 반대로 문제를 오해하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엉뚱한 곳을 고치느라 관계는 더 망가진다. 그래서 해결하려는 사람의 사랑은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관계를 살리려고 한다. 그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서 나는 ‘해결’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해결은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현실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리고 해결사는 불만이 있다. 하지만 그 불만을 타인 탓으로 끝내지 않는다. 불편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대신 손을 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도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유머와 센스로 관계를 지키면서, 동시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

마지막으로 세네카의 말로 마무리 하고 싶다.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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