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를 읽는 것을 무려 10년을 미뤄왔다. 원래 너무 유명한 것은 약간 꺼리는 조금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 나인데,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인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그동안은 썩 읽자는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뭐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 그렇게 10년을 미뤄오다, 2년 전에 보다 못한 친구가 나에게 강제로(?) 책을 선물하게 됐고, 그것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 왔다.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 이사를 계기로 책과 책꽂이 정리도 다시 하고, 인터넷 설치가 느리게 되는 바람에 책을 읽을 수밖에 없어 드디어 완독에 성공하게 됐다.
연금술사의 이야기는 크리스천인 나에게 어딘가 매우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작가 개인의 배경도 그렇고,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나 콘셉트 같은 점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성경적인 면에서 이 책을 해석하기보다는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로 이 책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사가 전투를 앞두고 휴식을 취하듯 그대도 쉬게. 하지만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게. 그대가 여행길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때 그대의 보물은 발견되는 걸세..."
인생은 여행이다.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오래 살았고('나'에게만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순간이자 가장 오래된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은 여행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찾고 싶어 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매달려 고민도 많이 했고, 도전도 했고, 때로는 웃는 날에, 때로는 우는 날 속에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해 온 날들을 수고했다고 추켜세우기보다는 허비한 시간으로 평가절하하곤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점차 길어지는 돌아가는 시간 속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란 참 어려운 일이더라.
사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있다면 지나온 시간을 허비한 시간으로 평가절하하는 일. 바로 이 한 가지였다. 그러지 않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요즈음, 연금술사가 말하는 이야기는 바로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책도 나를 만나기 위한 가장 적당한 때를 찾아 10년의 여행을 한 것일 수도...:)
얼굴 양 옆에 딱딱한 책갈피를 대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할 것 같은 사회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불안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혹은 누구처럼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불안함과 욕망을 훨씬 뛰 넘는, 나만의 궤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꿈이 훨씬 크게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크리스탈 잔을 몇 년씩 닦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양들을 다 포기하고 돌고 돌아가더라도 꼭 찾고 싶은 나만의 보물인 것이다.
원하는 때에 손을 뻗어 보물을 갖게 되는 것보다도, 보물을 찾는 길에 만날 아름다운 피라미드.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 때로는 나를 상처 줄 아름답지 못한 것도, 사람들도. 걷다가 고개를 들면 보일 빛나는 보름달, 눈을 가늘게 뜨고 찾아야 하는 도시의 별, 별자리. 이런 것들을 내게 알려주기 위해 신께서 한 걸음 더 나를 돌아 걷게 하시는 거겠지. 나를 움직이고, 나를 걷고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든 여정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공기처럼 느끼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앞서 인용한 구절 앞에 연금술사는 이렇게도 말한다.
"마시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게."
나에게 주어진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은 연금술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면서도 잠깐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처럼 내 곁에 가까이 있다. 보이진 않지만 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바람처럼.
도서명: 연금술사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출판사: 문학동네
발행연월: 200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