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무언가, 그리고 말의 무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국내에서는 <향수>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한다. 젊은 시절 여러 편의 단편을 썼는데, 그중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기타리스트 박규희 씨의 인터뷰에서다. 해당 부분을 잠깐 발췌하자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를 뜻깊게 읽었다. 유망한 젊은 예술가가 '당신 작품엔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깊이'를 찾으려 애쓰다 자살하는 이야기다. "도대체 그 '깊이'란 뭘까요? 저도 한때 '어려서 깊이가 없다'는 말에 와르르 무너진 적 있어요. 지극히 주관적인 비평 단 한마디로 늪에 빠진 거죠."
"그래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다양한 감정을 내 안에 쌓기 위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감정의 서랍을 많이 만들어놓으려고요. 30대가 되니, 대가들의 '사랑해라. 지금 이 공기를 느껴라. 눈을 감고 살아 있는 느낌을 만끽하라'는 조언을 알 것도 같아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30/2019013000170.html )
이 부분인데, 읽고 바로 흥미를 느끼고 책을 찾아 읽었다. 독서모임의 다음 책으로 선정함은 물론이다. 열린책들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나온 단편집으로 구매했는데, 다섯 단편이 실렸고, 맨 앞에 실린 해당 단편은 '정말'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개와 결말은 여러 날의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나도 그 '깊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깊이'란 무엇일까?
잘 아는 것, 많이 아는 것, 좋은 테크닉, 숙련도, 많이 해보는 것, 어떤 정신, 독창성, 과감한 시도-하지만 여기서 또 '과감'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세월의 무게, 반복, 침잠, 표현, 오리지널리티, 자신 있는 태도, 겸손한 태도, 재능, 노력, 호감, 눈길을 끄는 것, 진지함, 유치함, 이성과 감성, 분열과 통합, 의도한 것, 무의식의 것...
이것저것 나열해 보지만 그 어느 것도 '깊이'를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저것들을 다 모아놓는다고 '깊이'가 되는 것 역시 아닌 것 같다. '북돋아 줄 생각'으로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고 말한 평론가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 '깊이 부족'을 발견한 것일까? 사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생각 없이 던진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작품이 곧 자신인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이 단편은 아무래도 주인공에 감정 이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의 날카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실 만드는 사람의 입장과 이를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모두 알고 있지만, 비평가의 입장엔 전혀 이입할 수 없었다. 학부 시절에 비평을 배웠는데, 이렇게 재밌고 나랑 잘 맞는 분야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푹 빠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고, 숨어 있는 메타포를 찾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해보기도 하고...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이를 느낀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표현과 창작의 결과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러니까 더더욱, 타인의 깊이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깊이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렵고, 누구나 깊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겠지만, 누구나 다른 정도로 깊이를 느끼는 것도 있다. A에서 깊이를 느끼는 사람, B에서 느끼는 사람. 그러니까 절대적인 답이 아닌 하나의 말일뿐이다. 적어도 깊이에 있어서는.
하지만 말은 권위를 가지면 증폭된다. 그리고 권위를 가진 말은 때로는 강요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의 처음 몇 문단에서는 깊이 없다는 말이 세 단계에 걸쳐 커지고, 한 사람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과정이 묘사된다.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그냥 스쳐 보내지만, 여러 번 듣다 보니 사로잡혀 버렸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같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지 모를 그 깊이란, 적어도 강요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 하나의 말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 역시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를 통째로 뒤흔드는 말을 잠시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냥 흘려보내기란 쉽지 않다. 깊이에 대한 고민과 비슷하게, 나만의 것을 갖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고민하던 와중, 박규희 기타리스트의 '감정의 서랍'이라는 말은 깊이 없다는 말과는 반대의 파동과 물결로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무엇에 흔들리는 때엔 또 이렇게 반대의 물결이 찾아와 떨림을 상쇄시켜준다. 아름다운 발견.
내가 원하는 걸 실현하기 위해, 기민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으려면 나 역시 저 감정의 서랍을 갖춰 놓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살아 있는 느낌을 만끽하는 것. 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고민과 우울을 벗어던지고, 절벽 앞에 서서 바람을 맞는 사람의 심정으로 세상의 광활함을 느끼는 마음을 회복해야 할 때다. 때로는 길을 걷다 돌멩이에 맞는 날도 있겠지만, 그 돌멩이는 절대 나를 오래 아프게 할 수는 없다. 상황은 절대 나를 지게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나를 찾는 여행을 계속해 나가야지. 깊이를 가지는 것이 목표가 아닌, 과정 속에 자연스러운 나만의 깊이가 생기도록.
보통은 음악을 듣고 사람에도 관심이 생겨 찾아보는데, 사람에 관심을 가진 다음 음악을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언젠가 공연도 꼭 가야지.
추천곡: Nuovo Cinema Paradiso(Cinema paradiso의 ost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 영상에서는 듀엣으로 연주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T2WZptAOE
도서명: 깊이에의 강요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출판사: 열린책들
발행연월: 199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