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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을 배우게 되기까지

드러머(Drummer), 드리머(Dreamer)

by 만세

드럼 수업과의 첫 만남


어느 주말, 집 근처의 뒷산에 산책을 나갔을 때 산 입구에 스포츠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부를 구경하다 우연히 드럼 수업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십 년은 더 되었을 듯한 디자인에 정보라고는 갈색 표에 적힌 수업 시간표밖에 없는 포스터. 그 촌스럽기 짝이 없는 포스터에 급격하게 마음을 뺏긴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절대.


마침 한 달을 시작하는 첫 주였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스포츠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주말 드럼 수업은 토요일마다 한 시간씩 나누어 진행되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 가능한 시간대를 물어보니 다행히 내가 원하는 시간대가 남아있었다. 토요일 11시였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4만원. 대신 직접 와서 등록해야 한다고, 전화를 받은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드럼에 대한 추억


브리즈, <Counterblow> 앨범 표지

무려 2004년, 영화 <늑대의 유혹>의 우산 씬은 지금까지도 강동원을 스타덤에 올린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 삽입되었던 브리즈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뭐라할까' 역시 명곡으로 꽤 이름을 알렸다.


기타와 베이스의 서정적이면서도 록 그 자체인 멜로디, 강불새의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보이스, 그리고 중간에 들어오는 강렬한 드럼.


MP3로 노래를 듣던 중학교 시절, 당시엔 원더걸스와 빅뱅, 동방신기같은 아이돌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런 와중에 어떤 경로로 이 노래가 내 MP3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트로의 사운드를 듣자마자 이 노래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 노래는 나의 최애가 되어버렸고, 집에서 부모님께 드럼을 배우기 위해 실용음악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르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중학교 때 남학생들이 피시방을 가는 빈도로 하교와 동시에 노래방에 갔다. 당시 노래방은 5천원을 내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온돌방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앉아 1시간 동안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사장님은 언제나 서비스를 후하게 주셨다. 매일같이 노래방에 가면서 왜 노래가 아니라 드럼을 배우고 싶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이미 취미생활로서의 노래는 내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노래야 노래방에 가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지만, 드럼은 배워야 칠 수 있으니까. 나는 드럼이라는 또 다른 취미가 갖고 싶었다.


나를 아주 사로잡을 만큼 열망이 있던 것도 아니고 사춘기의 허세에 기반한 가벼운 바램이었을텐데 지금까지도 그 미련이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 그 바램이 무참히 꺾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학원을 다니는 것은 허락했지만 “여자애가 무슨 드럼이냐”며 상의도 없이 클래식 기타로 등록을 해 버렸다. 결국 나는 매일같이 드럼을 쳐다보며 기타나 둥당거리게 된 것이다.




드럼 수업을 등록하다


퇴근을 하고 바로 뒷산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스포츠센터까지 가려면 산을 반 바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 없는 산길을 걸으며 가을 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맑은 공기가 다른 때보다도 시원하게 몸 속으로 들어왔다. 답답한 생활이 조금이나마 잊혀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산책로를 지나 스포츠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에 내려가기 직전, 회원가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전화했을 때 등록하러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오라고 하셨었는데. 다행히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내려가서 창구에 드럼 수업을 등록하러 왔다고 했다. 등록은 수월했다. 몇시요? 11시요. 카드, 여기요. 4만원, 여기요. 다음 주부터 나오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등록을 마치고 나와 걸어가는 길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신이 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이런 기분이었지. 나는 원하는 일을 시작하면 이렇게 즐거워 하는 사람이었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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