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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Oct 17. 2022

[1] 내가 사랑하는 공중목욕탕

일본 센토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첫 번째 글로 무엇을 쓸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넣을까부터 시작해서 글꼴은 뭐로 하지, 구성은 어떻게 하지, 소설이 쓰고 싶은데 소설을 쓰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첫 번째 글은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한편, 어차피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여러분이 저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해 주실 글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대뜸 목욕탕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정말 목욕탕 이야기는 뜬금없긴 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니 우선 어릴 때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예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부모님과 동네 허름한 공중목욕탕을 가서 뜨거운 물에 때[시간]를 불리고 아버지에게 때[각질]를 밀리고 나서야 찬물에 들어가 모르는 형들과 한참을 물장구를 치다가 샤워기로 몸을 헹구고 목욕탕의 문을 열면 찬 바람에 수건만 홀라당 들고 다시 들어와 몸을 다 닦고 나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시절의 얘기예요. 냉장고에 들어있는 박카스가 마시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아직 어려서 안된다며 바나나 우유나 제티를 사주시던 시절의 얘기죠. 


그렇게 목욕탕 카운터 옆 허름한 의자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나오지 않는 어머니와 동생을 한참을 기다리다가 노곤 노곤해진 몸으로 꾸벅꾸벅 졸고 정신 차려보면 근처 태릉에 있는 식당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는 했죠. 그렇게 저는 목욕탕, 목욕이라는 의미를 일주일의 끝 혹은 일주일의 시작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게 나이를 먹고 나서도 똑같더라고요. 스무 살, 어머니한테 속아, 한 겨울 주 6일 12시간을 밖에서 근무하는 극한 알바를 할 때도, 6일째가 되는 월요일이 되면 항상 집 보다 먼저 사우나에 들렸죠. 군대에서 가끔 휴가를 나올 때에도 마지막 날이 되면 사우나에 들르곤 했어요. 


지금 저는 일본에 살고 있는데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목욕문화가 발달됐어요. 온천... 료칸... 스파...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여 비싸고 좋은 곳도 물론 너무 좋지만 저는 그중에 센토(銭湯)라고 하는 공중목욕탕이 제일 좋더라고요. 1000엔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탕 몇 개 있고 샤워시설도 있는 70,80년대 공중목욕탕이에요. 


바닥 타일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파란색의 정자 블록형이고 한쪽 벽은 높게 올려져 건너편 여탕 아주머니들이 깔깔 거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정겨운 곳이에요. 한국에 그 갈색 기둥으로 높게 굴뚝을 만든 OO 탕이라는 목욕탕 아시나요. 그런 류의 목욕탕이에요. 


얼마 전에 교토에 우메유라는 목욕탕을 다녀왔어요. 우메= 매실, 유= 탕. 즉 매실탕이라는 곳인데 실제로 매실탕은 없고 그냥 일반 물이에요. 아마 천연 온천일 거예요. 490엔의 싼 입욕료(코로나 전에는 410엔)에 6시-12시, 2시-2시까지 엄청 길게 하는 목욕탕이에요. 역시 센토답게 가면 동네 어르신들 밖에 안 계시지만 특이하게 사장이 젊어요. 


어릴 때 근처에 살던 사장님이 자주 우메유에 오곤 했는데, 교토대 미대에 재학 중 경영난으로 우메 유가 없어질 거라는 소식을 듣고 가게를 인수했대요. 아마 사장님도 저와 같이 공중목욕탕을 사랑하시는 분이었을 거예요. 사장님이 미대생답게, 탕은 옛날 그대로지만 가게 안은 꽤 멋스럽게 꾸며놨어요. 과하게 세련되지도 않고 과하게 낡지도 않은 그런 조화로움이 좋은 곳이에요.



이런 곳이에요. 바나나 우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제2의 친구 커피우유가 있는 곳이에요. 한국과 다르면서도 어디인가 닮아있는 것이 두 나라는 서로 같이 할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역사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는데 교토에 가시게 된다면 한번 들려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주의 마지막을 목욕으로 마무리해요. 일이 끝나는 금요일에도, 한 주가 끝나는 일요일에도. 이렇게 두 번 목욕탕에 방문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입니다. 그러다 보니 1926년부터 1989년에 세워진 가게들이 참 많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일본에 살지는 않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게 참 좋아요.


앞으로 글을 쓰면서도 상당히 많이 묻어 나오겠지만, 저는 예스러운 것들을 좋아해요. 땔감으로 다 타버린 나무를 한쪽 벽에 모아 두고 굴뚝에는 연기가 올라오는 낡은 공중목욕탕 앞 벤치에서 낡은 바구니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커피 우유 두 병을 사서 10시 10분에 만나기로 했던 그녀가 나오기를, 상기된 얼굴로 기다리는 그 시간이 참 예스럽고 좋더라고요. 



끝으로, 저는 참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일본에 살고 독일에 산 적도 있고 잠시 프랑스와 필리핀에 머문 적도 있는 사람이에요. 브런치를 쓰는 것은 처음이고 앞으로 에세이를 계속해서 쓸 것 같지만 여러 이야기를 빙빙 섞어 여러분에게 흘리듯 말하려고 해요. 몇 명이나 구독자 분들이 생길지도 모르고 앞으로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을 읽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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