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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Oct 17. 2022

[2] 에모이(エモい)

향수, 그리운, 감상적 , 그리고 슬픈

여러분, 혹시 에모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아마 모르시는 분이 99%라고 생각될 거예요. 에모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이자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자 추구하는 단어예요. 앞으로 매거진에 들어갈 모든 글들의 숨겨진 주제이기도 하고요. 부제에 적었듯 에모이(エモい)는 신조어로, 향수, 그리움, 감상적, 그리고 슬픈. 이 모든 것이 담겨있는 뜻이에요. 정말 정형화된 해석은 없어요. 그저 사진이나 물건을 보고 어딘지 모르게 슬프거나 그립거나 감정적인 느낌을 받으면 에모이라고 말해요.


글에 들어가기 앞서, 몇 가지 에모이한 사진들을 보여드릴게요. 여러분도 제 사진을 보고 에모이함을 느끼시나요?


에모이함은, 예스러우면서 예스럽기만 하면 안 되고 슬프면서도 슬프기만 하면 안 되고 외로우면서도 외롭기만 하면 안 돼요.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물 밀듯 들어왔다가 감정만 남기고 떠나야 하죠. 물론 향수도 불러와야 하고요!


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름의 그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겨울의 그 바다를 좋아했지요. 날도 지고 밖은 어둡고 비도 살며시 내리는데, 우리는 우울한 마음이면 바다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 넓고 희고 파란 바다를요. 바다를 생각하면 가슴이 에모이 해지는군요.



 어제는 운전을 하다가 다이빙 용품점을 보았습니다. 일 하느라 바빠서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도, 다이빙 용품점은 처음 봤네요. 제가 말했던가요, 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에 산다고요. 일본의 사면이 바다이듯, 저의 동네 역시 바닷가입니다. 당장 바다까지 뛰어갈 수는 없지만 옆 건물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맨션에서는 쉽게 바다가 보이는 동네죠. 차 타고 겨우 8분이면 거칠고 희고 짠 바다가 나오는 동네예요.


바다. 역시 그 짠맛이 입에 계속 남더라고요. 이번 여름은 해수욕을 한 적이 없더라고요. 물론 작년도, 재작년도 한 적은 없지만 말이죠. 지금은 보기 힘든 브라운 관 밑에서 뜨겁게 돌고 있는 VCR 같은 느낌이에요. 돌고 돌아 다시 에모이함이죠. 이번 여름에 바다를 간 적은 없지만, 참 에모이 했어요. 사랑을 시작하려다 힘껏 미끄러졌죠. 그녀와 깊은 밤, 제 낡은 파란색 알토라판 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시골 일 차선 길을 달린 적이 있어요. 날씨가 좋아서 창문을 열었고 시골이라 그런지 별이 아주 많더라고요. 창 밖으로 별을 구경하는 그녀를 위해 시속 40킬로의 도로를 20킬로로 달렸어요. 다음에 바다에 가서 폭죽놀이를 하자고 약속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여름이 끝나 버렸네요.


이번 여름은 조금 덜 짜증내고 덜 더워하고, 여름이 가질 않길 바라고자 했었는데 어김없이 저는 짜증을 냈고 더워했고 빨리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학교에 늦은 어린아이처럼 허겁지겁 여름의 추억을 하나라도 더 담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 무작정 찾아다녔어요. 


방문을 닫고 빔프로젝트로 '태양의 노래(2007)'라는 옛날 영화도 보고 낡은 가게에서 파는 빙수도 먹고 쇼와풍의 킷사텐(喫茶店)에도 가서 사진작가에게 사진도 찍혔네요. 시간을 즐기며.라는 제목과 함께요.


그래도 이미 여름은 가버렸어요. '여름이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이미지 소비가 쉬운 계절인데, 언제까지 덥냐 하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과거형이 되어버렸네요. 여름은 가버렸지만, 길고 길었던 여름에 별다른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았을 때 느낄 에모이함이 쓸쓸함보다는 행복이라는 의미의 그리움이었으면 좋겠네요. 


아까 말했지만, 운전을 하다가 다이빙 용품점을 보았고 저는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더라고요. 조만간 바다에 들러야겠습니다. 참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어요. 차 타고 겨우 8분이면 가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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