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만소 Oct 19. 2022

[3]레몬 사와

달짝지근하면서 시고 쓴

 술! 술! 술! 술! 술!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술 얘기를 할 거예요. 술을 잘, 자주 마시지는 못하지만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술자리에 앉아 잔을 들고 있으면, 친구들은 제게 왜 이렇게 히죽히죽거리냐며 물어요. 제가 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양주, 칵테일, 맥주, 와인, 소주, 일본주, 막걸리, 섞어 마시기, 털어 마시기, 물 타마시기, 끓여 마시기. 정말 다양한 술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중입니다. 그 많고 많은 술 중에 오늘은 레몬 사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해요.


아마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미 아실 테지만 술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생소한 이름일 거예요. 레몬은 아는데 사와는 뭐지? 싶으신 분들도 계실 테고요. 사와. (Sour, 신맛을 내는 칵테일의 일종) 미도리 사와, 레몬 사와, 우메 사와 등 다양한 사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레몬 사와는 소주나 청주에 탄산을 넣고 레몬즙을 첨가해 만드는 술이에요. 이게 한국 발음으로는 샤워가 되고 일본 발음으로는 사와- 가 되더라고요. 레몬 좀 사 와봐~ 하는 것 같아서 웃기지 않나요.


어느 가게를 가던 일단은 생맥이지 하면서 "나마 비루 히토쯔-!"를 외치던 제가 요즘 이 레몬 사와에 흠뻑 빠졌어요. 적당히 시고 적당히 단 이 음료(술)가 저를 취하는지도 모르게 만들더라고요. 무려 7도에서 9도짜리 맥주보다 독한 술인데 말이죠. 일본 술은 무언가를 섞어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해요. 과일즙을 섞어 마신다든가 술과 술을 섞어 마신다든가 심지어 물도 섞어 마셔요! 뜨거운 물에 섞으면 오유와리. 차가운 물에 섞으면 미즈와리가 되죠. 소맥을 자주 드시는 분들은 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섞어 마시면 다음 날 내가 넘어져서 아스팔트에 머리라도 박았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곤 하죠.


이 레몬 사와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래도 세 종류나 섞다 보니 다음 날 머리가 미친 듯 아파오기 시작하죠. 괜히 마셨나 싶다가도, 다음부터는 맥주만 마셔야겠다 싶다가도 몇 시간 뒤면 슬그머니 편의점에 가서 레몬 사와 두, 세 캔씩 들고 홀짝거리고 있더라고요. 그 감칠맛이라고 하죠? 레몬향과 단 맛이 탄산과 함께 쑤욱 왔다가 사라지는데, 그 느낌에 맛이 들려서 한 모금, 또 한 모금 마시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사실 결정적으로 맛없지 않나요? 그 맛있어 보이는 치킨과 맥주를 처음 먹었을 때. 밍밍하고 탄산만 가득한 맛에 놀라 한 모금 마신 맥주는 조금 뒤로하고 다시 콜라를 찾게 되거나, 조금 알딸딸하게 취하면 코에서 이상한 알코올향이 푹 뿜어져 나와 속이 미슥거리고 머리가 아픈 것처럼요.


제가 레몬 사와를 꽤 맛있다고 표현했는데 레몬 사와도 결국 술이죠. 술이 달 리가 있나요~? 술이 달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에요! 레몬 사와도 그 감칠맛 나는 단 맛이 가신 후에는 쓴 맛만 쭈욱 하고 올라오더라고요.


그래도 있잖아요.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축배를,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위로의 건배를, 지치고 피곤한 하루에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찾곤 하지 않나요? 이게 중독이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어느새인가 모든 감정 앞에 술이 있더라고요. 그 미묘한 맛 때문일까요, 초콜릿에 소금을 뿌려먹는다든가, 토마토에 핫소스를 뿌려먹는 것처럼, 우리 인생이 단조롭고 싶지 않고 예상되고 싶지 않고 가끔은 톡톡 튀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미묘하게 쓰면서 미묘하게 달고 미묘하게 신 술을 찾는 걸지도 몰라요.


우리는 항상 행복할 수 없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언제든 다가오죠. 그게 기쁨일 수도, 슬픔일 수도, 괴로움일 수도, 외로움일 수도 있죠.


그러나 그 감정이 항상 지속될 수는 없어요. 언젠가는 그 꿈에서 깨게 되고 악몽이었든 길몽이었든 다시 단조로운 현실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런 인생의 시고, 달고, 씁쓸한 것을 담은 것이 바로 이 레몬 사와가 아닐까요?


주말에는 항상 집 앞 이자카야를 찾아요. 맛있는 곳도 아닌데 자꾸 가게 되더라고요. 저는 스태프들의 얼굴을 다 외웠지만 이 분들은 저를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항상 같은 자리, 꼬치 화로 앞 카운터 석으로 안내해 주더라고요. 늘 같은 자리에 앉고 나면 무엇을 마시겠냐는 스태프에게 말하죠.


"레몬 사와 한잔이요."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2] 에모이(エモ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