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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Nov 05. 2022

[6] 포르쉐가 사고 싶어졌다.

 포르쉐가 사고 싶어 졌습니다. 한낱 월급쟁이 연봉으로 무슨 포르쉐냐고요? 맞아요. 신차를 사면 1억 5천은 거뜬히 나오는데 제가 돈이 어딨겠습니까. 심지어 외국인 신분이라서 대출도 안 나온대요. 그런 주제에 무슨 포르쉐냐고요? 하하,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고 싶어 졌는 걸.



 여러분 알토 라판이라는 차 아세요? 토끼가 심볼 마크인 스즈키 사의 귀여운 경차인데, 보통 20대 여성분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차예요. 그리고 제 차이기도 하지요. 하늘색의 알토라판. 2011년식, 중고로 59만 엔. 8.7만 킬로. 저는 제 차를 사랑해요. 영원히 여기 살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나 도시로 가면 처분해야겠지만 지금은 너무 잘 타고 다닙니다. 한 달에 2천 킬로는 넘게 타는 걸요. 회사까지 1.4 키로 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에요. 돈을 모으는 걸 좋아하고 그 돈을 펑펑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죠. 알토 라판을 살 때도, 겨우 600만 원 정도의 돈이 너무 아까워 밤새 잠을 못 잤어요. 그런 주제에 무슨 포르쉐를 사냐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사고 싶은 건 대신 무조건 사는 성격이에요.


 대게, 비싼 것들은 아니에요. 3000엔짜리 10개 묶음의 입욕제라든가, 아이폰이라든가, 에어팟이라든가죠.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저는 지금 딱 4200만 원을 모았어요.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수준도 아닌 애매한 돈이죠. 일 년에 저금을 2천만 원을 하는데, 이대로라면 3년 후에는 1억이 생길 것 같아요.


 그 생각을 하면서 늘 노트에 이번 달은 얼마를 쓸지, 얼마를 모을 지같은 것들을 적어 나가요. 그와 동시에 저는 귀가 얇은 사람이에요. 글쎄, 동기들이 500만 엔, 600만 엔짜리 차를 지른 거 있죠. 그러면서 돈은 결혼하고나서부터 모으면 된답니다.


 저희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결혼하고 나서 돈을 모은다니. 저희는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매달 5만 엔, 6만 엔의 융자를 몇 년씩이나 들면서 차를 사고, 집을 짓고 하는 거예요.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겠죠.


 스물다섯의 저는 독일에서 살았어요. 독일에 살면서 가장 크게 변한 성격이, 나이에 얽매이지 말자였어요. 23살의 이탈리아 친구와 대화하는데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언젠간 대학에 갈 것이래요. 그러나 아직은 더 놀고 싶대요. 일은 서른부터 하면 되지.라고요. 그 말에 어딘가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아, 20살에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하고, 26,27에는 취직하고 32살 전에는 결혼해서 정년 전에 자식들 대학 보내고 돈을 모아 노후를 준비하는 그런 인생은 참 재미없겠구나. 


 일본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돈의 쓰임이었어요. 일본은 40년 전과 지금과 물가가 거의 변하지 않은 특이한 나라예요. 40년 전 자판기 사진의 캔커피 가격이 110엔. 지금 저희 회사 캔커피 가격이 110엔이거든요.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사람인데. 그렇게 돈을 모으고만 있다가 불행해지는데(정형적인 삶을 사는데) 돈을 써야 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한 번이라도 좋은 차가 타보고 싶어 졌어요. 벤츠는 타봤고, 큰 세단도 타봤으니 스포츠카는 어떨까 하면서 성공의 상징 포르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포르쉐 카이엔! 포르쉐 파나메라! 너무 멋있을 것 같잖아요? 회사 사람들도 주차장에 포르쉐가 있으면 멋질 것 같대요.


 물론 신차는 못 사요. 12년식, 14년식의 중고차를 사야죠. 420만 엔을 탈탈 털어서요. 이미 몇만이나 달리고 몇 명이나 엉덩이를 붙인 차를 사야 해요. 기왕이면 빨간색이 좋을 것 같아요. 타오르는 제 마지막 젊음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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