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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Oct 30. 2022

[5] 사람들은 환수공원에 간다

[4] 바다에서 제가 일본 어디 사는지 밝혔어요. 저는 일본 호쿠리쿠 지방에 있는 '도야마(富山)시'라는 곳에 살고 있어요. 일본인들도 한번 더 물어볼 정도로 인지도도 없는 곳이고 눈 앞에 3000미터가 넘는 산이 있어서 찾아오기도 번거로운 곳이에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친구가 왔는데 오사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오사카역에서 카나자와시로, 카나자와에서 도야마로 와야 하더라고요. 참 수고스러운 동네죠.


 그런 동네에 살다보니, 한국인을 찾아 보는 게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요. 축구 모임에서 한번 본 게 다네요. 어디엔가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마주친 적이 없어요. [여행 많이들 오세요~]


 이런 아무 것도 없는 동네다보니 누가 온다해도 그럴싸한 관광을 시켜주기가 어려워요. 아까 말씀드린 3000미터가 넘는 산은 겨울에 봐야 매력적인 산이고, 주변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바다...정도일까요? 그러면 저는 환수공원을 갑니다.


 환수공원. 바다로 통하는 진쯔우강(神通川) 옆 운하가 끝나는 곳이기도 해요. 운하의 끝지점이기도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것 같아요. 도야마 역에서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자주 오고 도야마 주민들도 그렇게 자주 이용하는 공원이에요. 다들 이곳에 오는데, 북적거리면서도 동시에 조용한 게 매력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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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마현은 시골입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이죠. 도야마현에서 제일 큰 도시가 도야마시라고는 하지만 도야마시 역시 시골입니다. 딱, 역 앞에만 빌딩들이 늘어서고는, 조금만 차를 타고 넘어가도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앞을 보면 바다 뒤를 보면 산이 보인다고 하지만 그건 시골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도야마 역 주변에서 만날 때는 '에끼 마에(駅前)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해요. 도야마에 역이 수십개인데 말이죠. 


 도야마에는 도야마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원이 있어요. 바닷물이 운하로 들어가는 지점에 있는 '환수 공원(칸스이 코우엔)' 이라는 곳이죠. 대전이 빙빙 돌아 " 야 성심당 가자." 라고 말한다면 도야마는 빙빙 돌아 " 환수 공원이나 가자." 라는 말이 나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스타벅스가 있어." 도 빼먹지 않죠.


 스타벅스가 있긴 해요. 이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예쁜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스타벅스고, 사람이 많고, 봄에는 스타벅스 옆으로 벚꽃나무가 즐비하고, 바로 앞에는 천문교라는 다리가 있는, 그런 흔한 스타벅스예요.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보여드리자면 이런 느낌인 것이죠.



물론 잠실에 있는 그 큰 석촌 호수나 천안에 있는 단대 호수를 생각해보면 그저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나름 시의 자랑이라고 꾸며놓기도 잘 꾸며놨고 여행객들도 도야마에 오면 꼭 찾는 곳입니다. 저 사진 안에 저희 집이 있어서 가끔 가기는 하는데, 그냥 산책하기 좋을 정도의 조용함과 생각하기 좋을 정도의 낭만이 있는 곳이에요.


 그래도 도야마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은 지, 밤이 되면 환수 공원에 찾곤 해요. 가끔은 사람이 너무 많아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호수를 한바퀴 빙돌며 산책 아닌 드라이브를 하게 되는 거죠. 환수 공원이 예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앞서 말한 천문교라는 다리일 거예요. 사실 천문교는 예전에는 그렇게 이쁜 다리가 아니었대요. 환수공원을 조금 더 랜드마크로 만들고자, 좀 예쁘게 탈바꿈 시킨 것이죠.

 바로 이 다리예요. 양쪽에 3층짜리 전망대가 있어요. 이게 의외로 높은지라 엘레베이터도 있어요. 올라가서 창문을 열고 난간에서 스타벅스를 바라보면, 공원이 아름답게 반짝이기도 해요. 코로나 전에는, 왼쪽 탑과 오른쪽 탑을 이어주는 실 전화기가 있었대요. 연인들이 서로 탑에 올라가 그 전화기를 귀에, 입에 가져다대고 서로 사랑을 속삭였다네요. 아니면 사랑을 주저하는 남녀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남몰래 속삭였을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실전화기가 없지만 저 붉은 인연의 줄이 그 마음을 대신 전해주고 있어요. 이 천문교는 제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도야마에 취업이 결정된 후, 도야마가 도대체 어떤 동네야? 라는 마음으로 이곳 저곳 블로그를 뒤지고 있을 때, 제가 찍은 구도로 같은 사진을 찍으신 분의 블로그를 보았거든요.

 그 분의 사진에는 저 3층 벤치에 두 남녀가 서로 거리를 조금 벌린 채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더라고요. 거기에 남긴 블로거 분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일까.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너무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워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아무래도 저는 천문교와 스타벅스가 있는 메인 공원보다 이 공원의 뒤가 한적하고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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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수 공원말고도 좋은 곳은 도야마에 많지만, 도아먀 시내에서 가까운 랜드마크는 아무래도 환수 공원이다보니 할 게 없으면 환수 공원가서 산책이나 하자. 환수 공원 스타벅스나 가자. 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익숙함을 좋아하면서도, 익숙함의 늪에 빠져 낭만을 잃어버리는 것을 무서워하는 성격이에요. 이제는 환수 공원 정도는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아도 갈 수 있고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속속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밤 늦게 환수 공원에 가면 풀벌레 우는 소리와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 천문교 위에서 사랑을 전하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자갈 소리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친구들이 제가 사는 곳에 놀러오면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야, 환수 공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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