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를 무려 9년이나 다녔습니다. 군대 이슈도 있었고 해외에 자주 돌아다니기도 해서 길어진 건 맞지만 중요한 건 장시간 수업을 듣는 게 그렇게도 괴롭더라고요. 한 학기에 수업을 12학점~14학점 밖에 듣지 않고 그마저도 한 과목은 철회를 해버리는 아주 못된 학생이었죠. 그렇다고 게으르지만은 않았어요. 그 남는 시간에 볼링을 치거나 게임을 하거나 알바를 하거나 여행을 다녔죠.
중학생 때는 매일 같이 학원을 다녔었는데, 정확히 학교가 끝나고 40분 뒤에 타야 하는 학원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만 하는 생활이 힘들었어요. 시간이라는 숫자에 갇혀 사는 게 아무래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남들은 걱정했어요. 얘 나중에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 삼 개월 만에 관두는 건 아닐까 하고요. 저도 물론 걱정을 했죠. 하루에 5시간 이상 일과를 할 수가 없는 몸과 정신이었으니까요.
일본은,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최근에는 월평균 잔업 시간을 300시간을 하던 남자가 과로사로 죽은 적이 있었죠. 소위, '블랙 기업'이라고 하는 회사도 많고 주말 출근도 많이 하는 회사가 즐비한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에요. 저도 물론 일하면서 아, 일 하는 강도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다.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저희 회사는 블랙은 아닙니다. 월평균 잔업 시간을 25시간 이하로 맞추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회사고요. 정시에서 15분만 넘겨도 총무부에 혼나는 그런 회사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원들이 월평균 20시간 이하로 잔업을 해요.
제가 소속받은 부서, 팀은 우연히도 회사에서 제일 기대받는 팀이었어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은 방식, 무수히 넘쳐나는 특허출허, 매우 다양한 산업에 사용할 수 있음, 시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무려 3천만 원어치나 써보고 싶다고 사감. 당연히 회사에서 기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그 팀의 막내로,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회사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되었어요. 동기들은 아직 한 달 평균 10시간 이상 잔업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저는 당연히도 한 달에 50시간을 가뿐히 넘기는 사람이 되었죠.
매일 입으로 퇴근하고 싶다, 피곤하다. 이렇게 말을 해요. 물론 17시 정시가 넘어 퇴근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어요. 야근은 자율이 보장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매일 회사 불이 꺼질 때까지 남아서 일을 해요. 일이 즐거운 것도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도 바쁘니까- 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매우 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이 즐겁기도 해요. 마치 피시방에서 한 시간 더 한 시간 더 충전하는 것처럼 정신 차려보면 이미 9시가 넘어간 시간인 것이죠.
아침 8시 30분부터 17시가 근무시간인 저희 회사에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30분 동안 업무 보고서를 쓰고, 아침 회의 준비를 하고, 17시부터 청소를 하고 15분 정도 쉬다가 잔업에 들어가면 집에 가는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가도 남은 일들을 얼마나 더 할 수 있는지가 머리에 들어와요.
이게, 매일 성장한다니까요? 처음 입사했을 때는 19시 30분에 퇴근해도 아 너무 힘들다 이랬었는데, 19시 30분에 퇴근하면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우니까요. 보는 눈이 매일 다르고 주변에서 노력한다는 말 듣고 더 멀리 서는 키무상 천재네.라는 말을 듣고 어제는 몰랐던 것을 오늘은 알고. 또 내일은 어떤 걸 알게 될까 하는 마음. 3개월 만에 출근한 휴직했던 선배가 나보고 괴물이라 했을 때라든가, 점점 주변에서 어떤 것들을 맡기고 시키고 의견을 물어볼 때의 쾌감.
엔지니어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이라고 다들 말해요. 물론 맞아요. 工数、コスト. 공수와 코스트를 가장 줄이는 방법을 늘 생각해야 하죠. 어떻게 하면 이득을 볼 지 생각하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그 안에 굴러다니는 사람은 매일 성장을 해요.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들이 물밀듯 들어오는 이 시장에서,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도태되기 때문이죠.
" 외국인 사원 중에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
제 선배가 말했어요. 승진 확률이 매우 낮은 외국인 사원 중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을 하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요. 인간은 하루의 1/3 이상을 일 하면 노예래요. 그런데 저는 1/2보다도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어요. 평가대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선배는, 얼마 전 태어난 딸보다 저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대요. 그 사람들이 다 가고, 불이 꺼져도 저는 머리를 움직여요.
성장. 저는 성장에 목이 말라 있었던 것이에요. 사실 번아웃도 조금 두렵기는 해요. 이 긴장의 끈을 놓치고 하루, 이틀 일찍 집에 가다 보면 다시 이 어마어마한 성장 이벤트가 끝나버리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지만 걱정해서 뭐하겠어요? 지금은 조금 더 열심히! 하루라도 더 많이 성장하는 게 제일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