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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Nov 27. 2022

[9] 인생의 위기는 다음 단계로 가는 지름길

   


 오늘은 일본 얘기가 아닌, 독일 살던 때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네, 저는 독일에서도 산 적이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전범국가를 두 곳이나 살아버렸어요. 우스갯소리로 얼마 전 월드컵에서 독일 vs 일본이 경기할 때, 어디를 응원할지 고민할 정도로 두 나라는 제가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너는 도저히 한국이 담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무려 고등학생 때부터요. 거기에 가스 라이팅을 당한 건지 아, 나는 해외에 나가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국방의 의무가 끝나자마자 독일로 나가 버렸죠. 


 정말, 정말 많은 눈이 바뀌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해외에 나가는 것을 참 좋아하셨는데 해외에 나가면 세상을 읽는 눈이 바뀐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억압의 한국에서 23년을 살다가 갑자기 떨어진 자유의 나라에서 저는 수많은 감정과 배움이 한 번에 다가왔어요. 자유. 해방. 이런 감정과 동시에, 자유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바로 그 이면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이라는 것이었죠.


 교과서에서나 보며 읽던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날들이었어요. 모든 과정들을 혼자 해결해야 했고 거기서 오류가 났을 때 해결해야 하는 것도 순전히 저의 몫이었죠. 인터넷 하나 안 되는 방에서 3개월이나 살던 어려움도, 24살이지만 아직 자유로운 것이 좋아서 대학에 가진 않을 것이라는 친구의 사상과, 넓은 세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사상을 배웠죠. 파리에 테러가 났을 때는, 자유의 상징이 무너지는 느낌과 난민이 이슈가 되었을 때는 물결 같은 이동을 보았죠.


 그렇게 저는 단순히 말로만 한국이 담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 진짜 경험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 위기가 언제였냐 하면... 제가 독일 살던 때의 일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식겁했어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함부르크에서 뮌헨으로 여행을 갔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에 가방에 친구들 줄 선물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과, 살던 집의 키. 이사 갈 곳의 키. 핸드폰 충전기, 여권, 지갑 등을 넣어놓고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왔어요.


 12월 30일 밤이었죠. 12월 31일이면 한해의 마지막 날이었고 마침 제2년짜리 비자가 나오는 날이었어요. 7시간이 넘는 시간을 잤고 일어나니까 너무 건조하고 목이 마르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콜라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기차에서 내렸어요. 몸이 너무 가볍더라고요. 아뿔싸, 가방이 기차에 있었던 거예요. 시간은 새벽 3시, 창구는 문을 다 닫았고 저는 하는 수 없이 그 기차의 종착역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철로를 따라 걷다 보니, 차량고가 나오더라고요. 


 너무 죄송하지만, 제 짐들이 다 기차에 있다며 새벽 4시에 당직 서시는 잘생긴 독일 분에게 말하고 같이 가방을 찾으러 갔어요. 보이지 않더라고요. 이미 제가 자고 있을 때 도둑맞은 것이었어요. 선물, 키, 핸드폰 충전기, 옷들 다 잃어버렸죠, 뭐.


 다 괜찮은데 다음 날 있을 비자 발급이 문제였어요. 여권이 없던 저는 당연히 비자 거부를 당했고 결국 9개월짜리 단기 비자가 나왔어요. (1년에서 임시 비자기간 3개월 뺀 기간)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죠. 열쇠의 가격을 지불하고, 다시 여러 가지를 구매하고 경찰에 의미 없는 신고. 그 후로 무언가가 변한 느낌이었어요.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 책임, 귀찮음, 결과 등. 물건에 더 신경을 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물론 그 후로 코로나로 3년 간의 출국이 막혔을 때의 위기는 더욱 괴로웠기 때문에 지금은 저 일들을 웃어넘길 수 있어요.


 26살이었나, 지금은 어느 회사 사장님이 되어버린 후배와 술을 마실 때였어요. 그때 그 후배는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 형. 인생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는데, 상위 단계의 사람들은 밑의 단계를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랫 단계의 힘듦을 알지 못한대요. 왜냐면 자신은 그 위기를 뛰어넘었고 더 큰 위기 앞에서 힘들어하고 있으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요. 우리는 중학교 2학년의 그 호르몬 변화의 어려움을 다 겪어왔고, 그 위기에서 뛰어넘은 사람들은 그 힘듦을 이해하지 못하죠. '힘들겠지, 그렇지만 별 거 아니야.'라고 치부해버리죠. 수능도 마찬가지예요. 수능 정말 힘들죠. 다시는 하기 싫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이 들죠. 그것을 뛰어넘었으니까요. 군대? 대학의 쓴 첫사랑? 구직 활동? 다 마찬가지예요. 


 저는, 위기를 정말 많이 뛰어넘었어요. 얼마 전에 독일로 나간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에, 그의 힘듦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사실 이해는 했고 해결법도 알려주었죠. 그러나 그럼과 동시에 결국 그 힘듦은 그 친구가 뛰어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았고, 그냥 입을 닫고 들어주기만 했어요. 그 친구가 원한 건 자신의 힘듦을 들어줄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인생에는, 정말 위기들이 찾아와요. 위기에 무너진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위기를 넘었을 때의 당신의 성장은 아마 그 전의 당신과는 비할 바가 아닐 정도일 거예요. 마치 점점 강한 적과 싸우는 만화처럼, 저희도 살면서 위기가 오면 그것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보다는 맞서 싸워서 이겨보자고요. 아무리 밋밋한 인생이라 해도 저희는 인생이라는 글의 주인공일 테니까요.


 언젠가는 여러분들이 쳐해 있을 지금의 위기가, 마치 제 글처럼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오늘 글을 마쳐볼게요.


 그나저나 라이키는 10개 이상 매번 찍히는데 구독은 참 안 느네요. 혹시 여러분들 구독자 늘리는 법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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