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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알지 Apr 09. 2024

아무것도 아니지

정말 아무것도 아닐걸

알람이 울리고 

알람을 끄고

개운하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상쾌하지 않은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물을 마시고

통근버스를 타고


창 밖에 만개한 벚꽃에 눈길도 주지 않는 바스락거리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봄날의 태양도 커튼 뒤로 넘겨버리고

정돈되지 않은 마음속에 막연한 불안과 대상이 모호한 원망과 처음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자기혐오를 한 아름 안은 채

허구와 거짓, 위선과 가식, 생존을 위한 질서의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바람이 부는 마음은 회사를 벗어나며 조금 달래보고

나의 오늘이 가장 무거웠던 양 너에게 또 한바탕 쏟아낸다

그러고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잠시 착각하며 즐거워하겠지

불면의 밤을 핑계 삼아 술을 한 잔 할지도 몰라  

 

목련은 벌써 떨어져 검게 짓이겨졌고

벚꽃은 비와 함께 낙하하겠지

황사가 올 테고

봄은 그렇게 야속하게 사라질 거야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울 걸로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겠지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가겠다며 한국의 여름보다 더 더운 나라로 떠날지도 몰라

국내 유명 관광지의 바가지 상술이 여전하다는 뉴스도 나올 테고

부질없던 설렘은 해수욕장이 폐장하면서 사그라질 거야


새삼 현실을 직시하면 설악산에는 벌써 단풍이 들고 포장마차마다 전어를 구워 낼 거야

그때쯤, 요즘 입는 재킷을 다시 찾아 꺼내 입을 거야

하늘이 파랗다며 한번쯤은 동물원을 찾겠지


앗, 눈이다

첫눈이야

우리는 또 첫눈이라며 괜히 그 사람을 불러내

크리스마스이브의 괜한 기대는 나이가 들어도 식지를 않아

바보 같다

각종 시상식을 보며 MC가 외치는 카운트다운을 멍청하게 따라 읊으며 내년을 맞을 거야

 

달라지는 건 없지

 

새해  많이 받으라는 말은 건네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미워할 테고 어쩌면  덕담으로 복을 받은 사람을 시기할 거야


북한은 또 미사일을 쏠 거야

여당과 야당은 여전히 서로에게 삿대질을 할 거야

부모님은 여전히 우리를 걱정하시겠지

지겹도록 해왔지만 우리는 또 상사를 욕하고 회사를 욕하겠지

행복해지고 싶다며 로또를 사기도 할 거야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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