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20년 전부터 선대 대표님께서 항상 하시던 방식입니다."
회의실에서 이 말이 나오면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 전 세계 가족 기업의 70%가 2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90%가 3세대까지 가지 못한다. 시니어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 계곡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줄 젊은 사자가 한 마리 살고 있다.
1979년 소련 침공 때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판지시르에서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전쟁 중에도 학교를 세우고 여성 교육을 지지한 비전 있는 리더였다. 그는 '판지시르의 사자'로 불리며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911테러 이틀 전인 2001년 9월 9일, 알카에다에 의해 암살된다. 그가 암살당했을 때 아들은 열두 살이었지만, 이미 아들의 앞날은 정해져있었다. 아들 마수드는 이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영국에서의 긴 유학 기간 동안 전쟁학과 국제관계학을 배웠다. 그는 2019년,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탈레반 토벌에 앞장섰다. 그는 2021년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NRP를 조직해 지금까지도 저항하고 있다. 그것도 아버지의 숨결이 남아있는 판지시르 계곡에서. 그리고 그는 '판지시르의 젊은 사자'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젊은 사자'는 아버지의 게릴라전에만 의지하지 않고 소셜 미디어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 게릴라전으로 물리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신적인 저항을 하며 깃발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핵심 가치인 '자유, 독립, 교육'은 그대로였지만, 실행 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 대조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한 계승이란 시니어의 '방법'이 아니라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짐 콜린스가 말했듯, 위대한 기업은 핵심 이념은 바꾸지 않지만 운영 관행은 끊임없이 진화시킨다. 마수드 가문이 그랬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념은 100% 계승했지만, 방법은 0%도 따라하지 않았다. 2021년은 1989년과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정반대로 한다는 것이다. 핵심 가치는 흐릿해지는데 창업자의 습관은 신성시된다. "창업자께서 아침 6시에 출근하셨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고객이 그 시간에 필요로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맥락이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5년 전, 창원에 위치한 제조기업의 2세 대표를 만났다. 사석에서 친해진 경영본부장님의 말을 들어보니 첫 이사회때 2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방식의 70%를 바꾸되, 핵심 가치인 '품질 우선'은 200% 강화하겠습니다. 아니 이제 우선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합시다." 아버지는 하루 100개 제품을 직접 검수한 보고서를 확인했다. 창업 초기에는 직접 검수하셨다고 한다. 그때 100개의 제품이라면 지금은 10,000개, 아니 그 이상이다. 같은 품질을 유지하려면 결국 자동화된 시스템과 신뢰성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대표는 당시까지 수기와 엑셀로 관리하던 재무구조부터 바꿨다. 구닥다리 ERP를 걷어내고 새로 구축하는가하면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을 통해 MES와 WMS를 도입했다. 생산부터 재고관리까지 한 눈에 보이게 재설계 했다. 이제 누군가 서류를 일일히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품질은 더욱 좋아졌다.
핵심은 지켰지만, 방법은 혁신했다.
이것이 '비판적 계승'이다. 시니어를 존중하되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것. 삼성의 이건희는 아버지의 '도전 정신'은 계승했지만 설탕 사업 대신 반도체를 선택했다. 팀 쿡은 잡스의 '집중' 원칙을 계승했지만 제품 라인은 확장했다. 시장이 커지면 집중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조직 문화는 "왜 그렇게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아닐까. 건강한 조직에서는 주니어가 질문하고, 시니어는 맥락을 설명하며, 함께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반면 곧 망해 없어질 조직에서는 "전통을 존중해야지"라는 말로 혁신을 차단한다. 창업자가 위대했던 이유는 그 시대의 문제에 혁신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후계자는 '창업자를 복사'하는 게 아니라 '창업자처럼 혁신'해야 한다.
"창업자께서 항상 하시던 방식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묻는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뭐였을까요? 지금도 같은 이유가 유효한가요?" 이 질문이 새로운 대화의 물꼬를 튼다.
판지시르에서 아흐마드 마수드가 든 것은 아버지의 AK-47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진정한 계승은 시니어가 가졌던 가치의 맥락을 살피고 그 핵심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의 깃발을 들되, 휘두르는 칼은 내 것이어야 한다.
계승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대물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