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660년, 백제 멸망 1년 전부터 여러 징후가 나타난다. 여우가 궁궐로 떼지어 들어오고, 거대한 물고기가 잡혔는데 그걸 먹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18척 키의 여자 시체가 떠내려왔고, 궁궐의 느티나무가 밤낮으로 귀곡성을 냈다. 온갖 괴변이 이어지자 백성들은 짐을 싸서 피난을 갔다. 태자궁에서 암탉과 참새가 교미하는가 하면 귀신이 곡하는 소리가 길에서 들리기도 했다.
그러던 660년 6월, 궁궐 안에서 여자귀신이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며 소리를 내고 사라지기에 귀신이 있던 자리를 파보았다. 그랬더니 등에 글씨가 새겨진 거북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일관(나라에서 길흉을 점치던 신하)이 해석했다. “초승달은 아직 작으나 날이 갈수록 점차 커져서 보름달이 되는 반면 보름달은 점차 작아져서 결국 빛을 잃습니다. 그러니 우리 백제가 보름달이라 함은 이제 기운이 다 되어서 국운이 점차 쇠퇴한다는 뜻이옵니다.” 의자왕은 그 말을 듣고 당장 일관을 처형했다. 그때 한 신하가 나섰다. "일관의 말이 틀렸습니다. 우리 백제가 보름달이라 함은 한창 국운이 강성하다는 뜻이고, 신라가 초승달이라 함은 그 기운이 미미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의자왕은 기뻐하였다.
그로부터 1달 뒤, 백제는 멸망했다.
이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는 둘 다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름달은 가장 밝은 동시에 이제 기울기 시작하는 달이다. 같은 사실을 두고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의자왕이 듣고 싶은 해석만 선택했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한 사람은 투옥되고, 귀에 달콤한 말을 한 사람은 포상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된다. 나라가 어떤 위기에 빠져있건 어차피 들을 왕이 아니니 침묵한다. 젊어서 해동증자라 추앙받던 야망넘치던 왕은 어느새 귀얇고 고집센 리더의 전형이 되버린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실제로 백제의 상징색은 노란색(보름달)이었고, 신라는 초승달 모양의 군기를 사용했으며 왕궁 이름이 월성(月城)이었다는 것이다. 예언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의자왕이 이를 몰랐을까.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이 패턴은 지금도 반복된다. 어려운 시장 전망을 보고하는 팀원과 장밋빛 전망만 강조하는 팀원. 프로젝트 리스크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다 잘 될 겁니다"라는 목소리. 불편한 고객 피드백과 긍정적인 리뷰만 모은 보고서. 리더는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메신저를 공격하면 곧 아무도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에 빠진다. 과거의 성과가 현재의 위기를 가린다. 의자왕은 즉위 초 대야성과 미후성 등 40여성을 확보했고 즉위 기간 내내 신라를 궁지로 몰았다. 멸망 5년 전에도 고구려와 함께 신라를 공격해 33개 성을 함락시키고 659년에도 신라의 두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공이 불과 1달 뒤의 멸망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직에 진실을 말하는 일관이 있는가? 그렇다면 리더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아니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신하들로 둘러싸여 있는가? 불편한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지 않는 문화가 있는가?
백제는 1달 뒤에 망했다. 우리회사, 그리고 당신의 회사는 얼마나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