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처음 등단을 포기한 것은 2010년 벽두였다. 그때까지 나는 신춘문예 최연소 등단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고3이 저물 즈음, 신춘문예에 투고해 대학 입학과 동시에 등단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었다.
그러나 2009년 신춘문예에 나와 동갑인 이슬 시인이 등단하며 나의 첫번째 꿈은 물보라처럼 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심사를 맡았던 문태준 시인은 내가 소설이 아닌 시를 쓰게 마음먹게 한 분이었다. 투고한 적도 없으면서 신춘문예의 꿈은 그대로 접어두었다. 공교롭게도 입시에서의 실수로 국문학과도 가지 못하게 되어 그대로 글밥은 잊혀졌다.
그저 고등학교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엽서시 문학공모사이트에 올라온 공모를 보며 적당한 공모전에 글을 보냈고 상금을 타 그 돈으로 후배들에게 술을 먹였다. 시상식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시상이 취소된 적도 더러 있다.
가끔 지방 문예지의 경우, 수상을 하면 문예지를 구매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한 오십만원에서 칠십만원 정도 된다. oo문예지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으로 등단하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돈으로 등단을 사는 것이라 생각해서 상도 받지 않았다. 글쟁이로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러다가 박범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다시 글밥에 대한 욕심이 들꽃처럼 번졌다. 그래도 어딘가에 글을 내보인 일은 거의 없이 그저 일기처럼 기록하듯 시를 쓰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냥 시를 나의 일부로 여기니 마음이 편했다.
고등학교때부터 나에게 시를 알려준 스승과 선배들은 저마다 시집이 열권이 넘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은 한 번도 시를 쓰는 기술이나 요령을 알려주지 않고 그저 마음을 비우는 방법만을 알려주었다. 어릴 때 의미없이 나불대던 나의 시는 그래서 점점 더 짧아지고 마음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로 변해갔다.
그러던 시로 병장때 병영문학상을 받았다. 국방부장관 표창이라 부대에서는 며칠 나가고 싶냐고 먼저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어차피 전역까지 나갈 휴가도 많이 남았기에 포상휴가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 그저 포상없는 후임들이나 내보내달라고 했다가 가는 마당에 오지랖부린다고 욕만 먹었다.
사는 게 바빠 글을 잃었나 싶을 즈음,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살펴봤다. 불민한 내 기준엔 이게 시가 맞나? 라고 생각들이 자주 들곤 했다. 공감할 수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퇴락한 거리의 불썽사나운 네온 간판처럼 빛났다.
그래, 뭐 등단이 중요할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며 또 다시 등단에 대한 미련마저 걷어내었다. 그냥 먹고사는 일을 글쓰는 법을 잊은 글쟁이 정도가 맞을 것 같았다.
요새는 시도 쓰지 않고 공모전에 투고도 하지 않으며 술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냄새 진하게 나는 옛날 글들을 들춰본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람이 좋아 술을 마시고 싶다가
십수년 전의 글을 보고 마음이 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