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찐한 두 사람
삼국지를 안읽어본 사람도 유비와 조조의 이름은 들어본 일이 많다.
그만큼 18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이의 기억에서 이 둘은 숙명적인 라이벌로 기억되어 왔다.
재밌는 건 소설인 연의보다 실제 역사에서 이 둘의 관계가 더욱 깊었던 것이다. 연의에서는 황건적 토벌에서 우연히 만난 후 반동탁 토벌군에서 만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당대 인물인 왕찬이 저술한 영웅기에 따르면 189년 이전, 유비가 낙양에 있다가 조조와 함께 조조의 고향인 패국으로 돌아와 병사를 모집하고 무리를 합쳤다고 한다. 그 뒤 영제가 사망하고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조조와 함께 동탁을 토벌하는 데 종군했다라고 말한다. 실제 영제말엽부터 반동탁 토벌까지의 기간을 잡으면 최소한 2~3년 이상은 같이 했던 셈이다. 이후 조조가 동탁의 휘하 장수인 서영에게 대패하고 아마 길을 달리 선 듯 싶은데 이 둘은 조조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서주를 침공했을 때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로는 연의와 대부분 동일하게 흘러간다.
조조는 유비에게 직접 '천하의 영웅은 당시과 나 뿐' 이라고 말하였고 유비는 훗날 '나와 조조는 물과 불과 같으니 그가 엄격하면 나는 관대하게 대하고 그가 난폭하면 나는 인덕에 의지하며 그가 책략으로 행하면 나는 성실하게 행할 뿐이다. 언제나 그와 반대를 행동해야만 나의 일이 성취된다.' 라고 술회했다.
조조가 유일하게 라이벌로 언급한 이는 바로 유비였으며 유비는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 자리잡는 것으로 미약한 세력이었던 자신을 브랜딩했다.
지금에서야 원소가 사실 조조의 가장 큰 적이었으니 하북을 평정한 순간 이미 끝난 싸움이니 하지만 조조가 하북을 평정한 207년 이후,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까지 73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물론 원소를 이긴 뒤에는 세력으로 그를 위협한 이는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히든 보스'이자 다크호스였던 유비로 인해 조조는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조가 마지막으로 친정한 전쟁이자 유비가 대등한 세력으로 조조와 겨룬 처음인 한중 공방전에서 둘은 마지막으로 마주하였다. 유비는 서주에서부터 형주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을 조조에게 지기만 하다 마지막에 비로소 한방을 먹였는데 슬프게도 그 한방이 마지막이었다. 위왕에 오른 조조에 대적하고자 유비는 뒤이어 한중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관우의 오만함으로 시작된 양번전쟁은 관우의 죽음과 형주 실함으로 끝났고 촉의 짧은 전성기도 막을 내린다. 유비의 몰락을 봐서였을까, 관우가 죽은 뒤 몇개월, 조조마저 세상을 떠났다.
다만 조조의 죽음에 크게 기뻐했을 것 같은 인상과 다르게 유비는 조조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문하고 서촉의 특산인 비단 등을 조문품으로 보냈다. 물론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사신을 죽이고 예물은 취하면서 마지막 인사는 참 이상하게 끝나버리긴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대비되는 색채로 살아난 이 두 사람은 생의 몇십곱절이 되는 순간을 또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정답은 없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었을 뿐이고 지나간 역사가 그들을 반추할 뿐이다.
시대를 파괴하고 천하를 배신해 새로운 창조로의 길을 제시한 조조와 구시대의 질서를 수호하며 불가능한 인의의 길을 향해 목숨을 건 유비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여운이 깊이 남는다. 서로를 누구보다 증오했겠지만 서로에게 각자가 없으면 안되는 존재였던 유비와 조조.
어쩌면 그 둘은 난세에서 가장 찐한 관계였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