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르다-에필로그

에필로그 – 내려오는 길에서 배운 것들

by 이승헌

에필로그 – 내려오는 길에서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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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오를 때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그 도전은 어딘가에서 박수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그 어떤 외침도 필요하지 않았다.

몸은 가벼워졌다.

짐도 덜었고,

고도도 낮아졌고,

심장도 더 이상 허덕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오를 때보다 더 자주 멈춰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돌아감이 아니었다.

그건,

무언가를 품고 간다는 뜻이었다.

다시 만난 길 위의 바위,

같은 바람, 같은 흙냄새.

하지만 모든 게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달라진 건 내가 아니었을까.

오르기 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말을 걸어왔다.

내가 밟고 지나왔던 흔적들,

그 위에 얹힌 기억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준 것이란 걸.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려오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이 고요한 시간을,

도시로 돌아가선

어떻게 꺼내놓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무엇을 얻었느냐”고.

“거기까지 가서,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엔 숫자도, 명예도,

선명한 결론도 없었으니까.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다는 걸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배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알았으니까.

돌아오는 발걸음은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여정이었다는 걸.

길은 끝났지만,

진짜 여정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나는 이제,

산이 아닌

나 자신을 천천히 오를 준비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정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정상은

그 고도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던 순간,

사람들과 말없이 따뜻함을 나누던 자리,

눈을 감고 바람을 들이마시던 그 자그마한 공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하나 작은 정상들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것들을

조용히 마음에 담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 작은 정상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끝.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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