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내려오는 길에서 배운 것들
에필로그 – 내려오는 길에서 배운 것들
하산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오를 때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그 도전은 어딘가에서 박수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그 어떤 외침도 필요하지 않았다.
몸은 가벼워졌다.
짐도 덜었고,
고도도 낮아졌고,
심장도 더 이상 허덕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오를 때보다 더 자주 멈춰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돌아감이 아니었다.
그건,
무언가를 품고 간다는 뜻이었다.
다시 만난 길 위의 바위,
같은 바람, 같은 흙냄새.
하지만 모든 게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달라진 건 내가 아니었을까.
오르기 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말을 걸어왔다.
내가 밟고 지나왔던 흔적들,
그 위에 얹힌 기억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준 것이란 걸.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려오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이 고요한 시간을,
도시로 돌아가선
어떻게 꺼내놓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무엇을 얻었느냐”고.
“거기까지 가서,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엔 숫자도, 명예도,
선명한 결론도 없었으니까.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다는 걸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배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알았으니까.
돌아오는 발걸음은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여정이었다는 걸.
길은 끝났지만,
진짜 여정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나는 이제,
산이 아닌
나 자신을 천천히 오를 준비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정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정상은
그 고도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던 순간,
사람들과 말없이 따뜻함을 나누던 자리,
눈을 감고 바람을 들이마시던 그 자그마한 공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하나 작은 정상들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것들을
조용히 마음에 담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 작은 정상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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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