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르다》-5화

5화 – 베이스캠프, 그곳에 닿았을 때

by 이승헌

5화 – 베이스캠프, 그곳에 닿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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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닿은 건,

어느 맑고도 낯선 오후였다.

바람은 더 이상 거세지 않았고,

하늘은 말없이 축복처럼 열려 있었다.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햇살은 아무 의심 없이 땅을 비췄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이곳에서 시작되거나,

때론 여기서 조용히 끝났다.

나는 그 길 위에

그저 또 하나의 작은 돌멩이처럼

가만히 놓여 있었다.

간판 하나 없는 얼음 벌판,

바위 위에 작은 기도 깃발 몇 장이

하늘을 향해 조용히 펄럭이고 있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여기가 맞구나.’

나는 그냥,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눈물을 보였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물러섰다.

나는 그 셋 모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분명,

뿌듯했다.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지나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스쳤고,

허벅지의 통증조차 그 순간만큼은 자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벅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아주 조용한 공허함이 스며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나는 뭘 얻은 걸까?’

나는 그렇게 자문했다.

그 질문은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하지만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도,

구름도,

깃발도—

모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 침묵이 전부였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이곳이

‘얻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이곳은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묻는 장소였다.

속에 남아 있던 것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가벼워진 나를 마주하는 곳.

나는 그날,

오래 앉아 있었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기념품도 없었다.

누구에게 자랑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맞았다.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내 숨소리뿐이었고,

그 숨소리마저 이따금은

산의 리듬에 잠식되었다.

나는 이제 목적지에 닿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긴 여정이

조금 잠잠해졌기 때문에 멈춰 있었다.

모든 것을 걸고 와야 했던 이곳에서,

나는 어떤 것조차 걸지 않고

그냥 잠시 머물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이토록 조용할 수도 있다는 걸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발을 떼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남겨진

무언가와 작별을 준비하듯,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별은,

어쩌면 내 안의 불안과,

조급함과,

증명하고 싶은 욕심과

이별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베이스캠프를

‘정점’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곳은 시작점이었다.

산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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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 [에필로그] 내려오는 길에서 배운 것들

“정상은 오르는 데 있지 않았다.

진짜 정상은, 내려오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있었다.”


5화 – 베이스캠프, 그곳에 닿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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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10시에 연재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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