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자료에 숫자 하나가 틀렸다.
내가 만든 자료였다.
보고는 김 상무가 맡았다. 자리엔 고객사 대표도 함께 있었다. 한참 설명을 이어가던 김 상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다행히 그가 재빨리 넘긴 다른 페이지로 분위기는 금세 넘어갔고, 아무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회의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팀에 민폐를 끼쳤다는 자책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 김 상무가 잠깐 나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짧은 눈빛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날 오후, 김 상무가 내 자리로 와서 말했다.
“만숑, 커피 한 잔 하자.”
자판기 앞에서 나는 괜히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숫자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
김 상무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너 요즘 영화 찍냐?”
“... 네?”
“무슨 어벤저스 영화 찍어? 뭘 그렇게 세상 구하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있어.”
나는 웃고 말았다.
“아, 제가 너무 심각했나요. 사실 아까 보고서 실수한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실수할 수도 있지.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그러고 있어. 니가 숫자 좀 틀렸다고 세상이 망하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김 상무는 커피를 들고 돌아가려다 말고, 덧붙였다.
“야. 어벤저스도 가끔 틀려.”
‘실수했으니 당연히 반성해야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반성보다 스스로에게 벌을 더 주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의 실수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 오래 남는 건 그 순간의 표정,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그날 김 상무 말처럼 우리는 세상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잘하면 좋은 거고, 틀리면 고치면 된다. 너무 대수롭지 않게 넘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일 이유도 없다.
회사에 오래 다니며 내가 조금씩 배우고 있는 건 의외로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