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보고였다. 그런데 내가 작성한 숫자가 틀렸다. 보고하시던 상무님의 당황한 표정, 보고가 끝나고 나를 실망한 눈으로 보는 듯한 그분의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모멸감'. 내가 느꼈던 당시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렇다. 아무도 나에게 나의 실수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지만, 원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 아닌가.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누가 봐도 티 났을까? 상무님이 다가오셔서 커피 한 잔 하자며 불러내셨다. 하아... 뭐라 말씀드려야 하지?
"만숑"
"네 상무님"
"너 무슨 어벤저스 영화 찍냐?"
"네?"
"우리가 지금 세상을 구하는 일 하냐? 뭘 그렇게 대~단한 일 한다고 그리 심각해 있어?"
"아... 네..."
"우리는 그냥 xx 파는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야. 세상의 모든 짐을 너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착각하지 마"
"아 그래도... 저 때문에 사장님한테 한 말씀 들으신 거 같아서 죄송해서 그렇죠..."
"야, 그게 뭐가 중요하냐? 일하면서 욕먹을 수도 있지. 일이 진행되는 게 중요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난 담배 한 대 피우고 갈 테니까"
직장 다니다 보면, 주위에서 들었던 격려 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나요? 저는 다른 따뜻한 위로의 말들도 소중하지만, 의외로 상무님의 그때 그 차가운 (?) 한 마디에 힘이 나더라고요.
'야, 오버하지 마, 네가 뭐 세상을 구하는 일 하냐?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어. 실수할 때도 있고 짜증 날 때도 있겠지만, 너 조금만 더 생각해 봐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