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와 반갑다, 새 직장 적응은 잘하고 있어?"
같이 근무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나서, 거의 1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너는 아직 그 팀에서 근무하고 있어? 바뀐 건 없고?"
"어, 나는 계속 거기에 있지. 그대로야. 여전히 힘들어. 너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어디라고?"
"xxx. 이것저것 처리하는 회사야."
처음 듣는 이름이다. 뭐, 세상에 내가 모르는 좋은 회사는 많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면서 친구는 본인이 얼마나 바쁘고,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우리 회사 직속으로 있는 비서실 같은 곳이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사업 관리 때문에 계열사 사장들을 좀 만나야 돼서 출장이 많고, 회사 투자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어서 이번 주말에도 회사 나가야 될 것 같아. 자금 운영 팀이랑도 내일 아침 8시부터 회의해야 되고, 아무튼 엄청 바빠."
전 회사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얘기만 들으면 회사 돌아가는 걸 거의 본인이 총괄하는 수준이다.
"그 많은 걸 너 혼자 다 하는 거야? 그럼 연봉도 엄청 많겠네?"
"물론 팀이 있긴 한데, 팀장이 이런 일은 안 해봐서 잘 몰라. 그래서 내가 많이 도와드리지. 연봉은 전 회사보다 xx% 정도 올려서 왔는데, 우리는 상여금이 많아서 나쁘진 않아."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내가 가볍게 맞장구를 쳐주자, 이번에는 나에게 삶의 조언을 건넨다.
"만숑아, 네가 지금 일하는 곳이 전부가 아니야. 내가 나와서 지금 이 회사에서 일해보니까 세상은 정말 넓고 대단한 사람도 많더라. 너도 너무 지금에만 얽매이지 말고, 좀 더 넓게 봐."
"... 그래, 고마워."
"내가 돈을 벌어보니까, 월급은 그냥 품위 유지비 밖에 안되더라. 하루에 주식으로만 그만큼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하니까. 놀고 있는 판 자체가 다르지."
이쯤 되니 슬슬 대화에 피로가 몰려온다. 조용히 정리하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테이블 위 영수증을 들고 일어섰다.
"사장님, 여기 계산이요."
"네, 잠시만요."
사장님이 계산을 하고 계시는데, 내 친구는 내 옆으로 오지 않고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아까는 돈이 흐르는 삶을 말하던 그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데.
"네가 사는 거야? 잘 먹었어."
"어... 그래. 나도 잘 먹었다."
결국 그날 저녁은 내가 냈다. 확신에 차 있는 말들 뒤에는, 어쩐지 계산서까지 닿지 않는 어떤 거리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