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 전 차장이 온 지도 벌써 6개월째다. 처음엔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요즘은 꽤 적응도 한 것 같고, 팀 분위기도 잘 따라온다. 그래서 며칠 전, 오랜만에 다 같이 한잔 하기로 했다.
초반엔 요즘 프로젝트 얘기, 연말 조직 개편 얘기, 그리고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회사 사람들 뒷얘기로 넘어갔다. 대화의 중심엔 전 차장이 계셨다.
“내가 처음 왔을 때 말이죠, 옆자리 팀 분들한테 인사도 할 겸, 따로 커피 마시자고 연락을 드렸어요. 김 차장이랑 남 과장. 그래도 예의는 차려야 하니까, 내가 어디서 왔고 무슨 일 했는지 설명하고, 두 사람은 어떤 일 하셨는지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전에 디자인실 쪽에 있었어요’ 이 한 마디하고 끝... 그냥 조용히 마셨죠, 커피.”
“어... 김 차장이랑 남 과장 원래 말수 적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그럴 수도 있는데, 그 후에 업무 때문에 남 과장 자리에 가서 일 좀 물어봤거든요? 근데 모니터만 보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라고요. 나를 안 봐요. 진짜 내 후배였으면 뒤통수 한 대 때렸지.”
잔을 비우며 전 차장의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그리고 나 초반에 왔을 때 우리끼리 술 먹었잖아요?
그때 제가 사실 그 두 사람도 초대했었는데, 갑자기 일 있다면서 아무도 안 왔잖아. 나 때문인가 싶었다니까요.”
내가 슬슬 말을 꺼냈다.
"그건 전 차장님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원래 우리 팀끼리만 먹기로 했다가, 그분들이 모르는 다른 사람들까지 조인되면서 괜히 불편하다고...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음... 그런 거였나.”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술잔을 들고, 말을 이었다.
“근데 오해하지 마시고요. 제 생각인데... 그분들도 원래 말수 없고 조용한 분들이긴 하지만, 전 차장님도 좀... 말씀이 적으시고 표정이 잘 안 변하니까, 처음엔 좀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속마음은 안 그런데 겉에서 보기엔 그런 인상이랄까.”
그 말을 들은 전 차장의 눈이 순간 동그래지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갑자기 실소를 터뜨린다.
“야, 너도 엄청 차갑게 보였어! 나 처음 왔을 때 네가 제일 무서워 보였거든?” (급 반말)
... 네?
“저요?”
나는 당황해서 옆에 있던 이 대리를 바라봤다.
“아니, 내가 얼마나 따뜻하게 대해줬는데. 이 대리, 그렇지? 나 엄청 상냥하지 않았어요?”
이 대리는 웃기만 한다.
... 왜 대답 안 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따뜻하게 굴었는데?
분위기는 웃음소리와 함께 풀리긴 했다. 그런데 웃고 있는 그 얼굴들을 보면서, 문득 머릿속을 스친 한마디.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말, 전 차장한테 한 거였는데. 사실, 나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건 술 좀 깨고 나서야 슬쩍 실감이 났다.
참 웃기다. 사람은, 자기 말이 제일 자신한테 안 들린다.
나는 따뜻한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