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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래서 결국은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by 만숑의 직장생활

두 번째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내가 투입된 시점은,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 약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이었다. 그때 팀 구성은 딱 세 명. 김 상무, 김 이사, 그리고 나.

사람이 적다 보니, 셋이서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점심도 함께 먹고, 자료도 함께 보고. 주니어인 나는 두 시니어의 집중 케어(?)를 받으며, 의도치 않게 많은 관심과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시기에 김 상무가 작은 과제를 하나 맡겼다. “지금처럼 여유 있을 때 실전 연습을 많이 해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했고, 김 이사한테 수시로 피드백을 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며칠 뒤, 김 상무가 나를 따로 불렀다.

“요즘 어떻게 일하고 있어? 과제는 어디까지 했어?”

김 이사한테 받은 피드백 그대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자신 있게 설명드렸다. 그런데 김 상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만숑,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기 이 부분 다시 설명해 봐. 왜 그렇게 한 거지?”

나는 당황해 “사실 이사님께도 오케이 받았던 내용인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김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곧바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래도 만숑이 충분히 생각해 봤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내가 말해줄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적을 받고 나니, 나도 김 상무 말대로 고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내용을 전면 수정했다.

다음 날 아침, 김 이사한테 수정한 버전을 공유했는데, 김 이사 표정이 굳었다.

“어? 내용이 전부 바뀌었네? 이거 왜 상의 없이 바꾼 거야?”

“어제 상무님께서 이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그래도 만숑이 봤을 때는 어때?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

“그건… 상무님께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래서? 누구든 뭐라 하면 무조건 바꾸는 거야? 생각은 좀 하고 움직여야지.”

결국 또다시 전면 수정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걱정이 생겼다. 김 상무 말대로 고치면 김 이사가 틀렸다고 하고, 김 이사 말대로 고치면 김 상무가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내가 점점 ‘생각 없는 사람’처럼 비칠까 봐 불안해졌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두 사람도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직접 얘기를 안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같이 점심도 먹는 사이인데, 왜 이런 얘기만큼은 나를 통해서만 오가는 걸까.

결국, 그냥은 안 되겠다 싶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두 사람한테 시간을 요청해 셋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혼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업무를 정리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전달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내 말을 들으셨다. 침묵이 잠시 흐르고, 김 상무가 먼저 입을 여셨다.

“만숑, 이 과제 담당자가 누구야? 만숑이지? 난 시니어로서 조언을 줄 수는 있지만, 선택하고 책임지는 건 만숑 몫이야. 두 사람의 말을 들었으면, 어떤 게 더 맞는지 판단하고, 설득하고, 책임지는 것도 만숑이 해야 해. 그걸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우리한테 묻는 건… 좀 무책임한 거 같네? 더 고민해 보고, 어떻게 할 건지 말해줘. 난 먼저 일어날게.”

그렇게 김 상무가 나가고, 김 이사도 내 어깨를 툭 치며 따라 나갔다.

“힘들지? 잘 고민해 봐.”

김 상무의 말이 다 맞는 말들이라 딱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못나서 그런 건지, 그 상황 자체가 불합리한 건지, 스멀스멀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맞아요,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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