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드라마 <여우각시별>
작년 10월 1일부터 11월 26일까지 방송된 SBS 드라마 <여우각시별>(연출_신우철, 각본_강은경)을 보았다. <신사의 품격>과 <파리의 연인> 등을 연출한 PD와 <제빵왕 김탁구> 작가의 <구가의 서>에 이은 두 번째 만남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워낙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한 요즘 최고 시청률이 9.7%로 다른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도 한몫했다. 그런데 웬걸,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끝이 나버린다.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전혀 설득되지 못했다는 소리다.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메인 플롯을 담당하는 캐릭터의 위상이 극에서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기획의도를 빌리자면, <여우각시별>은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한 남자와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지만 지극히 평범한 그 여자, 두 결핍 남녀가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매일매일 이어지는 치열한 순간과 마주치고 부딪히고 겪어나가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을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이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은 바로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뿐임을 이야기하고 싶은" 드라마다. 기획의도를 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은 남자와 평범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은 남자 한 명뿐이다.
● 첫 화부터 마지막 화를 책임지는 메인 플롯의 부재
드라마의 메인 플롯을 파악하기 어렵다. <여우각시별>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두 남녀의 결합을 방해하는 난관은 드라마 속에서 핵심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청소년 시절 깡패 집단에게 붙잡힌 이복형 서인우(이동건)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오른팔 오른 다리의 감각을 잃어버린 이수연(이제훈)은 웨어러블로 인해 걸을 수 있고 물건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웨어러블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걸 수연은 바라지 않고, 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밝히면 연인이 떠나갈까 고민한다. 두 남녀의 결합에 가장 큰 갈등은 이렇듯 남자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그치고, 이 때문에 주인공 격인 여자 주인공은 핵심 갈등에 관여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전락하게 된다. 마지막 주차에 가서야 수연이 웨어러블을 계속 착용할 경우 몸 상태 악화로 죽을 수도 있다는 설정이 추가되고, 한여름(채수빈)은 웨어러블을 제작한 미스터 장(박혁권)으로부터 수연의 웨어러블 기능을 해제시키는 주사를 받게 된다. 드디어 여자 주인공이 드라마 종영 한 화를 앞두고 갈등 요소를 받게 된다. 충분히 두 남녀의 외적 갈등으로 발전될 수 있지만 종영은 한 화밖에 남지 않게 되고, 여름은 "내가 타인의 선택을 부정할 권리가 있을까"라는 말 한마디로 갈등을 종료시킨다. 웨어러블과 관련한 갈등은 극후반부에 언급된다는 점에서 첫 화부터 마지막 화를 책임지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드라마 방영 내내 <여우각시별>이 핵심으로 다루는 사건은 남녀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된다.(기획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여우각시별>은 이권을 위해 공항을 장악하려는 깡패 세력과 얽힌 형제의 이야기인가? 드라마의 진행을 이끌어가는 것은 도리어 이 부분이다. 수연이 일하는 곳에서 팀장으로 근무 중인 인우는 동생을 드라마 전반에 걸쳐 밀어내려고 노력한다. 인우는 깡패 집단과 얽혀 그들이 민영화를 통해 공항을 장악하기 위한 수로 공항에 입사해서 근무 중이었다. 그런데 강력한 적대 세력으로 묘사되어야 할 깡패 집단이 표면상 핵심 이야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분량에 밀려 굉장히 어설프게 묘사된다. 인우의 악질적인 행동이 사실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언급이 마지막 주에 설명된다. 가장 어설픈 점은 웨어러블을 통해 초능력자와 같은 힘을 얻게 된 수연과의 대결로 큰 상처를 입은 조직원이다. 이 조직원은 수연에게 철저하게 패배하고 잡혀가지만 극 후반 잔뜩 폼을 잡으며 공권력의 무능력을 입으로 설명하며 등장한다.(힘 있는 자에게 약한 공권력이라는 설정은 시청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동시에 적대 세력의 강력함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다.) 그렇게 수연이 근무 중인 공항에 열 명 가까이 되는 부하들과 (검은 차량 네 대까지 동원해서!) 수연을 잡으러 간 조직원은 허름한 곳으로 수연을 끌고 간다. 그리고 바로 다음 씬에서 수연과 조직원 부하들이 대결하는데 조직원은 한 컷만에 마치 수연의 능력을 처음 본다는 듯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지만 결국 수연에게 잡히고 만다.
● 결과: 공감 못할 민폐 캐릭터로 낭비되는 인물들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지 못한 덕에 여자 주인공 여름은 극에서 아무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32부작(16회)에 등장하긴 힘드니 여자 주인공은 나름의 설정이 추가된다. 바로 능력에 비해 여자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차별받는 캐릭터라는 설정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소위 억울하게 '폭탄'이라고 별명 지어졌다는 여름은 상사의 지시 사항은 이행하지 않고 여자인 본인이 인사 고과에서 인정받기 위해 눈에 띄는 일을 해야 한다며 타 부서의 일에 간섭하고 다니는 실제 '폭탄'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차별하지 말아 달라고 상사에게 언성을 높이는 여름은 시청자들에게 민폐 캐릭터가 되어 전혀 공감받지 못했다. 이 민폐 캐릭터가 극이 진행되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서사는 찾아볼 수 없다. 수연 형제의 이야기에 여자 주인공은 연인인 보조자의 위치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형제 이야기가 주가 되지 못한 덕에 수연의 형 인우는 마지막 화에서 동생을 향한 태도의 변화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 인우는 마지막에 어설픈 깡패들에게 잡혀간 동생을 따라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다 도리어 자기가 포박당하는 신세가 된다. 깡패들에게 위협당하는 동생을 구하겠다고 포박당한 신세에도 차를 몰고 돌진하지만 깡패들은 너무나 쉽게 그 차를 피해버리고, 오히려 차가 바다에 빠질 위기에 처한다. 바다에 빠질뻔한 차를 수연이 웨어러블로 얻은 힘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시각적인 흥미를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뻔히 운전석을 포함한 차량의 반 이상이 지상에 있어서 문만 열고 나오면 되는데 동생이 괴력으로 끝까지 차를 뭍으로 올려주기 전까지는 내리지 않는 모습은 인우를 민폐 캐릭터로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깡패들이 왜 형을 신경 쓰느라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수연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치지 않는지 의아한 수준이었다. 둘을 죽여버린다는 깡패들 아니었나?
끝까지 기획의도를 살리지 못한 <여우각시별>의 시청률이 9.7%나 나올 수 있었던 점은 비주얼과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배우 이제훈 덕이다. 더불어 감초 역할을 하는 많은 배우들이 있었기에 <여우각시별>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들의 노력 이외에 <여우각시별>의 이야기가 매력이 있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이기엔 부족했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드라마는 그저 내가 응원하는 배우의 잘생기고 예쁜 모습을 보는 게 다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