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보내기'에 대한 개인적 소견

왜 대형 영화관 사업자들은 ‘영혼 보내기’ 전용관을 만들지 않을까

by 만타

또 ‘영혼 보내기’로 영화를 응원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엔 중앙일보다. 영혼 보내기란 영화전문잡지 씨네21의 지난 5월 기사에 따르면 “특정 영화를 응원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예매만 하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영혼 보내기를 자신의 가치나 신념에 소비한다는 ‘미닝 아웃’과 엮어 우호적이고 긍정적으로 보는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한겨레에서도, 중앙일보에서도 영혼 보내기를 긍정적으로 본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씨네21도,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시아경제도 영혼 보내기를 긍정적으로 본다.


이렇게 소비자와 여론이 영화 소비 방식으로 영혼 보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 영화관 사업자들은 왜 가만히 앉아서 돈 벌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 영화표를 예매하지만 사정상 영화관에 오지 못하는 소비자를 위해 ‘영혼 보내기’ 전용관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새로 상영관을 늘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소비자는 현장에 오지 않으니까. 인력을 써서 영화를 영사기에 걸고 관객 안내를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소비자는 영화표를 구매했다는 행위 자체에서 효용을 느끼니까. 전용관을 위해 새로 투입되는 금액은 0에 수렴한다.


새로 투자를 할 필요가 없으니 영화표는 8천 원으로 하자. 그리고 이렇게 발표하는 것이다. “신념을 위해 아낌없이 지출하는 소비자가 많으니 원래 수익금을 영화관과 제작배급사가 50대 50으로 배분하던 것을 저희가 사회 공익적 차원에서 45대 55로 배분하겠습니다.” 우와, 이렇게 영화 발전을 위해 힘쓰는 영화관이라니. 소비자들은 다른 관객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영혼 보내기를 할 때 일부러 앞줄을 예매하거나 조조, 심야 영화로 예매한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불편을 느끼게 해선 안 되지 않는가. 다른 관객의 관람권을 방해한다는 죄책감 없이 미닝 아웃을 할 수 있게 언제 어디서든 ‘영혼 보내기’ 전용관에 영혼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



자, 그런데 이 멋진 아이디어에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 있나?



‘영혼 보내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 영화의 재미,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스태프의 노고에 대한 논의는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응원한다.’는 구호 앞에서 실종된다. 내가 왜 특정 영화를 응원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단순하고 빈약해지면서, 잘 모르지만 ‘이런 영화’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말은 공허하다. 소비자가 물건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물건의 질은 떨어지게 되어있다.


실체 없는 영혼을 보내지 말고 영화를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자.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계속 넘기지 못해 시장에서 사라질 것 같으면 영화 제작 지원비를 보내자. 여러 사람이 모여 영화 제작비를 지원해준다면 손익분기점은 낮아져 시장에서 영화가 겪을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영화가 완성됐다면 다 같이 영화를 보자. 영화를 보고선 얘기를 나누자.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고 잘 만들었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단지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는지.


일반인이 진행 중인 영화 프로젝트를 샅샅이 알고 모금을 해서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이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등장해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좋겠다. 그땐 다양한 양질의 영화가 실체 없는 영혼이 아니라 사람과 만나게 될 테니까.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느끼고,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지 영화표를 구매한다는 행위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이를 간과하다보면 우린 어느새 ‘영혼 보내기’ 전용관이라는 게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영화관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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