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영화 <나이브스 아웃>
자수성가한 미스터리 작가 할란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는 85세 생일잔치 다음날 저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지난밤 그의 저택을 찾았던 사람들 중 범인은 누굴까. 사설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경찰과 함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트롬비 저택을 찾는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를 보면서 미스터리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늙은 부호의 대저택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공간을 찾았던 사람들이 용의자다. 사건을 수사하러 온 경찰은 특이한 성격의 사설탐정에게 도움을 받는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관객이 익숙한 미스터리 구도에 빠르게 빠져들도록 오프닝을 준비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저택, 점점 가까이 달려오는 두 마리의 검은 개. 으스스한 소품이 가득한 저택에서 피 묻은 시체가 발견되고, 탐정은 저택에서 용의자를 한 명씩 불러 취조한다. 크리스티 풍의 제대로 된 추리극을 보게 될 거란 기대는 미스터리의 재미를 한껏 살린 이야기로 충족됐다.
ㅁ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은 빼어나다. 추리극은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여 관객이 극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유지시키는 게 관건인데, 이 영화에는 허투루 낭비되는 미스터리 단서가 없다. ‘연극용 소품과 진짜 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할란의 대사, 낯선 이를 보면 짖는 저택의 개들 등 감독은 적재적소에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줄지 결정하며 정보의 양을 잘 조절했다. 그 덕에 <나이브스 아웃>은 뛰어난 추리 소설이 그렇듯이 문제의 답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눈치 채지 못한 이야기 장치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마르타(아나 드 아르미스)와 랜섬(크리스 에반스)의 첫 등장이 대표적이다. 마르타가 극 중 처음 등장할 때 관객은 마르타의 얼굴보다 운동화를 신은 마르타의 떨리는 발을 먼저 보게 된다. 사실 그 운동화에 할란의 피가 튀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본다면 그 컷은 불안한 마르타의 심리만을 표현하려는 컷은 아니다. 랜섬이 극 중 처음 등장할 때 관객은 개가 랜섬을 향해 짖는 소리를 먼저 듣는다. 개 짖는 소리가 미스터리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본다면 그 소리는 ‘프레임 밖에 새로운 인물이 도착했다’는 정보 이상을 담고 있다. 감독은 태연스럽게 정답을 먼저 제시했었다.
영화가 미스터리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까닭은 <나이브스 아웃>이 공격과 방어의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교적 이른 타이밍에 마르타가 할란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음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이 사실이 공개되기 전까지 탐정의 시선으로 진실을 향해 공격적으로 탐구했던 관객들은 순식간에 마르타의 입장에서 진실을 알아내려는 탐정으로부터 진실을 숨겨야 한다.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여겨졌던 인물의 특성이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진실을 숨겨야 하는데 하필이면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다니. 불리한 조건을 안고 진실을 숨기기 위해 분투하는 마르타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최종장에 이르러 진실 이면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도넛의 빈 구멍을 규명할 수 있게 되고, 악인에게는 선인의 시원한 구토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과 진실을 숨기는 스릴을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사건 해결의 흡족함까지 느낄 수 있는 잘 짜인 서사였다.
<나이브스 아웃>은 잘 짜인 추리극이자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하는 우화다. 상징적인 디테일들이 안정적인 미스터리 구도 위에 자리 잡으면서 영화는 재미와 주제의식을 동시에 챙기게 되었는데, 라이언 존슨 감독은 디테일들을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영화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깔끔히 전달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내 집, 내 방식, 내 커피!’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머그컵의 주인은 할란에서 마르타가 된다. 할란이 마르타에게 넘겨준 것은 머그컵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의 재력에 과도하게 의존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할란은 모든 재산의 상속자로 마르타를 지정한다. 트롬비 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할란의 간병인 마르타는 철저히 외부인이었다. 이념적 성향이 다양한 트롬비 가 사람들은 할란의 생일잔치 때 이민자 문제를 두고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왕설래하지만 정작 이민자인 마르타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란의 사후 그를 위해 헌신한 마르타를 가문에서 책임지고 보살펴주겠다던 그들은 유서 낭독 후 그녀가 가문의 재산을 강탈했다며 그녀를 헐뜯는다. 그들의 모습은 백인이 일군 나라에 이민자들이 난입하여 그들의 자리와 부를 빼앗았다고 주장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닮았다. 트롬비 가 사람들이 마르타를 비난한들 어쩌겠는가. 브누아 블랑이 지적한 것처럼 랜섬이 트롬비 가 대대로 살았다고 주장하는 저택조차 할란이 파키스탄 사업가에게 매입한 것을.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들의 집’, ‘그들의 방식’, ‘그들의 재산’은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은 저택 밖에서 2층 테라스에 서있는 마르타를 올려다 볼뿐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