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라는 배우가 없다면

with 영화 <페르소나>

by 만타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가능한 영화 <페르소나>(감독_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는 미스틱 스토리가 제작하고 월간윤종신이 제공하는 윤종신 기획의 작품이다. "유명하고 특색 있는 네 명의 감독이 한 명의 배우를 주연으로 각기 다른 단편 영화를 만든다"가 이번 기획의 컨셉인데, 모든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컨셉을 살펴보니 방점은 '한 명의 배우'에게 찍혀있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르소나>는 아이유의 존재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영화다. 과연 아이유가 아니었어도 영화를 찾아볼 사람들이 있었는가 의문이다. 이는 아이유가 배역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우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배우에게 종속되어있다. 몇몇 사람들이 <페르소나>를 전부 시청한 후 뮤직비디오 같다고 평하는 게 바로 이 점에서 기인한다. 가수가 직접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들은 다양한 상징과 연출로 여러 메시지를 전하지만 일차적인 목적은 가수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데에 있다. 영화 <페르소나>의 목적은 메시지보다는 다양한 아이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 <페르소나>를 찾아볼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윤종신과 네 유명 감독이 뭉쳐 시도한 영화를 확인하고픈 시네필들과, 아이유의 팬들일 것이다. 영화는 영화를 찾아볼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단편영화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더 얘기하도록 하자.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페르소나 러브세트.jpg <페르소나> 첫 번째 이야기 <러브세트>

1. <러브세트>_앙칼진 아이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테니스 코트, 아이유는 자신이 연인처럼 사랑하는 아빠를 두고 아빠의 여자친구와 테니스 경기를 펼친다. 그러니까, 연적인 두 여자의 대결인 셈이다. 타이트한 흰옷을 입고 빨간 과일을 가득 베어 무는 아이유는 자신의 매력을 표현해보지만 아빠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경기가 시작되고 화면은 땀에 젖은 두 여자의 클로즈업과 신음소리로 가득 찬다.


<러브세트>(감독_이경미)는 앙칼진 아이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리지만 욕심이 가득한 아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다치는 일에도 개의치 않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딸이 아버지를 향해 강한 소유욕적인 애정을 보이는 설정은 앳된 이미지의 아이유가 강렬하게 바라는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꽤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러닝 타임이 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특히 아이유와 배두나가 테니스를 치는 장면에서 땀이 흐르는 얼굴과 맨살의 몸을 계속 보여주고, 공을 칠 때마다 신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것은 두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원하는 설정과 맞물린 섹슈얼한 효과가 과한 느낌이다. 더군다나 아이유가 테니스채를 휘두르는 폼은 클로즈업으로 가리려고 해도 엉성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아이유가 테니스 숙련자로 나오는 게 아니라고 해도, 현실에선 아이유와 같은 자세로 공을 두 번만 받아치면 손목이 부러지는 게 정상일 것 같은데 게임은 끝나지 않고 이미 보았던 클로즈업만 가득하니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페르소나 썩지않게 아주오래.jpg <페르소나> 두 번째 이야기 <썩지 않게 아주 오래>

2. <썩지 않게 아주 오래>_마녀처럼 치명적인 아이유


자신보다 많이 어리지만 매력적인 아이유와 만나기 위해 파혼까지 선택한 남자가 있다. 그러나 열흘 동안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아이유는 남자와 대화가 재미없는 것 같다. 남자는 사랑을 보여보라는 아이유를 위해 진짜 심장을 꺼내 보인다. 아이유는 웃으며 펄떡이는 심장을 유리병에 담아 간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 보관한단다. 아이유의 가방에는 심장이 담긴 유리병이 가득하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감독_임필성)는 자유롭고 이기적이어서 오히려 더 치명적인 아이유를 그린다. 이 영화의 반응 중에 나이 든 남자와 연인 관계의 어린 여자가 소재로 사용된 점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 자체가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곧잘 비하되곤 하는 PC 영화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음에도 영화가 특정 소재를 선택했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관객의 수준 미달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소재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거나 욕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다뤘느냐가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나이 든 남자의 수동성을 부각하고, 자유롭고 이기적이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아이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유가 남자에게 준 선물 상자 속에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있었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아이유의 손바닥 안에 있는 그를 의미한다. 남자가 아이유에게 말했던 "여자는 아이를 밸 수 있어서 더 위대한 것 같다"는 말 또한 이런 대사가 등장했다고 차별적인 영화인 게 아니라, 그 말을 들으면서 심드렁한 아이유의 액션과 장면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소재를 푸는 방식을 끝까지 영리하게 유지하진 못했다. 아이유는 사실 남자의 이름도 상관없이 남자의 심장만을 수집하는 존재라는 반전은 자유롭고 이기적인 여자를 마녀나 괴물로 특정 지으며 영화의 메시지와 그리고 싶은 아이유의 모습 모두 흔들려버렸다.



페르소나 키스가 죄.jpg <페르소나> 세 번째 이야기 <키스가 죄>

3. <키스가 죄>_불 같은 아이유


아이유의 친구가 키스마크를 아버지에게 들켜 머리카락도 잘리고 휴대폰도 빼앗기고 방에 갇힌다. 아이유는 연락이 안 되던 친구를 찾아와 사정을 듣고는 친구와 함께 친구 아버지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바닥에 기름을 발라 자빠뜨리기, 의자 다리를 잘라놔 넘어뜨리기를 시도하지만 여의치가 않는데...


<키스가 죄>(감독_전고운)는 불 같은 성격의 아이유를 그린다. 두 여자의 자유 의지는 산불과도 같아서, 산불 관리인인 친구의 아버지가 막으려 해도 아무리 막아지지 않는다. <키스가 죄>는 다른 단편영화와 달리 배우의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명료한 스토리라인, 영화 <나 홀로 집에>를 생각나게 하는 집에서의 트랩 준비 장면, 불과 같은 캐릭터가 아이유와 시너지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세 번째 순서인 것은 정말 다행이다. 배우 아이유의 연기폭이 그렇게 넓지 않은데 영화 또한 본인의 이미지로만 끌어가야 해서 피로해진 시청자들이 피로를 풀 수 있는 구간이 바로 <키스가 죄>다. 캐릭터의 이름이 <러브세트>에서처럼 '아이유'가 아니라 '한나'인 점은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모든 영화들이 <키스가 죄> 같았다면 <페르소나>라는 기획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불과 같은 캐릭터는 복수를 위해 행동한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강한 존재가 방해하려 해도 불길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캐릭터의 불과 같은 성격과 실제 산불이 이어지기 위해 아이유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삽입한 연출은 스토리와 주제가 장면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되는 좋은 방법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유'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줄 예상치 못한 충격도 함께.



페르소나 밤을 걷다.jpg <페르소나> 네 번째 이야기 <밤을 걷다>

4. <밤을 걷다>_외로웠던, 바람처럼 사라질 아이유


꿈의 밤거리, 망자가 된 아이유가 애인을 찾아온다. 둘은 대화를 나눈다.


<밤을 걷다>(감독_김종관)는 별다른 서사가 없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남자와 여자의 대화. 포스터에서 '태도'라고 표현한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한 순간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게 단편영화 아닐까. 흑백영화인 <밤을 걷다>는 둘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한계도 존재한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흑백의 화면과 대화다. 대사가 아름답긴 하지만 영화는 대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조로운 화면과 사건이 없으니 동요할 일 없는 캐릭터의 감정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엔 대사만으론 역부족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유의 노래 <이런 엔딩>의 뮤직비디오가 생각났다. 한때 연인이었던 김수현과 아이유가 서로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실처럼 얽힌 현재 자신의 관계를 정리해나간다는 내용은 사별을 다루고 있는 <밤을 걷다>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게다가 <이런 엔딩> 뮤직비디오가 더 재미있다. <밤을 걷다>라는 노래가 있고,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로 단편영화 <밤을 걷다>가 사용되면 정말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얼핏 씁쓸하다. <밤을 걷다>를 영화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느낌이라서다.



5. 총평


배우 아이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제작자인 윤종신이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네 개의 단편영화들은 <키스가 죄>를 제외하고는 영화로서의 존재 이유가 딱히 없다. 다양한 아이유의 모습을 보려면 아이유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된다. <스물셋>의 아이유는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티스트의 상황을 얼마나 잘 표현한 곡이며 뮤직비디오이고, <밤 편지>, <이런 엔딩>의 아이유는 연인을 위한 대화와 연인의 헤어짐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가. 배우 아이유의 한정적인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유라는 배우가 없다면 이도 저도 아닌 영화라면 시네필과 아이유의 팬 모두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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