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드라마 <언내추럴>
지난겨울 동안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18년 1분기 일본 TBS에서 방영한 10부작 드라마 <언내추럴>(연출_아라이 준코, 츠키하라 아유코)이다. 부자연사 연구기구 UDI에서 시신 부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법의학자들을 다루는 이 드라마는 메르스, 집단 자살 등의 개별 소재와 연쇄 살인이라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가 완벽한 캐릭터 설정과 만나 탁월한 서사를 보여준다. 잘 만든 이야기는 인기가 많은 법인데, <언내추럴>이 받은 많은 상이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언내추럴>은 일본의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주제가상, 각본상, 감독상을 받았다.
<언내추럴>은 일본의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 상에서 6관왕을 했다. 수상 항목도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주제가상, 각본상, 감독상 등 화려하다.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 상의 심사 작품 대상은 해당 분기의 드라마로 일 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동 기간에 방영된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작품의 빼어남을 판단하기엔 좋은 지표가 된다. 자, 얼마나 사랑받던 드라마였는지는 많이 말했으니 아래에서는 어떻게 <언내추럴>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요소들을 말하다 보면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1.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의 조화
<언내추럴> 속에는 낭비되는 캐릭터들이 없다.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제 색을 냄과 동시에 사건을 주도하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특히나 주연 인물의 과거는 인물의 행동 동인을 명확히 규정해주고, 작품 전반을 걸쳐 드러나는 주변 인물의 삶은 극의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1)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
여성 법의학자 미스미는 당차면서도 침착하다. 그녀는 법의학을 수호하는 일에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과거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의 피해자다. 미스미의 엄마는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거실에 연탄을 피워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어린 그녀는 수면제를 먹는 척을 했었는데 그 덕에 방으로 들어가 죽음을 피하고 극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2) 나카도 케이(이우라 아라타)
남성 법의학자 나카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거칠고 까칠하다. 주어진 일 이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그가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몰두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입 안에 빨간 금붕어 모양의 상처가 있는 시체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장의사에게 웃돈을 주고 입 안에 금붕어 모양의 상처가 있는 시체면 유족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몰래 조사를 한다. 이런 그의 특이 행동은 8년 전 마찬가지로 입 안에 금붕어 모양의 상처가 있는 채로 살해당해 발견된 여자 친구 사건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3) 쿠베 로쿠로(쿠보타 마사타카)
UDI의 아르바이트생 쿠베는 반듯하다. 의사 가문 출신이지만 의사로서의 길을 걷는 데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를 압박하는 가족은 그가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는 UDI 말고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한 신문사인데, 그는 사실 UDI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사에서 보내진 것이었다. UDI의 일원으로 많은 걸 배워나가면서도 특종이 될만한 UDI 내부 정보를 신문사에게 넘기며 그는 갈등에 빠진다.
4) 쇼오지 유코(이치카와 미카코)
임상병리사 쇼오지는 유쾌하고 푼수끼가 있다. 그녀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극 내내 이야기하는데, 그저 캐릭터 설정처럼 보이는 그녀의 말이 한 회차를 책임지는 에피소드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성이 강한 캐릭터들로 인해서 다양한 케미가 나온다. 똑 부러지는 미스미를 중심으로 까칠한 나카도와 티격태격하는 케미, 미스미를 짝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쿠베와의 케미, 쇼오지와의 버디 케미 모두 극을 풍요롭게 만든다. 극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극의 분위기가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은 데에는 캐릭터 간의 케미의 역할이 크다.
2. 극을 끝까지 견인하는 탄탄한 중심 에피소드
<언내추럴>의 중심 에피소드인 금붕어 상처 연쇄 살인사건은 후반부에서 해결이 어색하지 않도록 극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암시되고 인물들의 고민의 근원이 된다. 나카도 또한 이 사건 피해자의 연인이었던 만큼, 이 사건의 해결은 메인 캐릭터의 고민 해결과 맞물리며 사건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나카도의 캐릭터 설정은 이 사건을 끝까지 흥미롭게 만든다. 극의 초반부에는 나카도가 이 사건의 진범이 아닐까라는 의혹이 미스미의 시선을 통해 제기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나카도는 진범이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5화에서 확인시켜주는데, 이때까지 유지된 긴장감은 다른 유형으로 발전한다. 나카도는 진범을 찾으면 진범을 죽일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5화의 사건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확실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스미의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된 긴장감이 묘사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메인 캐릭터는 거부감이 들고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 있는데, 이 부분을 극은 영리하게 시청자의 대변자격인 미스미가 "당신의 기분을 헤아리거나 배려하는 일이 더럽게 한심하게 느껴진다"라고 시청자들이 불편해할 지점을 탁월하게 집어낸다. 이 부분을 언급함으로써 나카도는 응원은 하지만 견제해야 할 캐릭터의 지위를 얻는다. '나카도가 범인 아니야?'라는 의심은 해소되었지만 '나카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않아?'라는 의심으로 이어지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갈등의 내용과 양상이 자연스럽게 변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끝까지 끄는 각본의 힘은 눈여겨볼만하다.
3.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연출이 돋보이는 개별 에피소드
<언내추럴> 이야기의 중심에는 법의학을 통해 부자연사를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을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으려면 각 에피소드 속 사건들이 법의학이 아니면 해결이 불가능해야 한다. 편한 길이 있음에도 '굳이' 법의학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사건이 전말이 매력이 없으면 시청자들이 이야기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컸다. 이 드라마는 1화부터 이야기 속의 사건이 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1화에서는 메르스 사태가 묘사되는데, 사실 이 사태의 본질은 병원 내부의 바이러스 유출사고였다는 점은 앞으로의 사건들도 이 같은 반전이 있으리라 기대하게 만든다. 7화에서는 범죄 현장을 보여주는 데에 '인터넷 생방송'이라는 요소를 끌어와 드라마가 현시대와 괴리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을 중계하고 이를 시청하는 주체를 고등학생으로 설정해 학교 폭력과 관련한 주제를 풀어나간 점은 정말 영리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언급하면 끝이 없지 않겠는가. 특히 감명 깊게 보았던 4화와 5화의 엔딩 장면을 통해 이 드라마의 연출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고자 한다.
4화 중, 초과근무에 지친 노동자가 사장의 집으로 케이크를 배달하고 있다. 노동자는 뒤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4화는 노동자에 관한 얘기였다. 이 에피소드의 말미에서는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데, 불꽃놀이를 중심으로 이를 보지 못하는 인물과 즐기는 인물들의 대비가 노동자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사장의 욕심으로 불법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노동자가 사장의 집으로 케이크를 배달한다. 그는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아니, 아예 지금 폭죽이 터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듯하다. 반면, 사장은 집에서 파티를 벌이며 불꽃놀이를 친구들과 감상한다. 극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바로 노동자의 아내와 아이들이다. 이들은 퇴근할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며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다. 노동자는 돌아오는 길에 피로로 인해 졸게 되고, 타고 있던 오토바이가 넘어지며 사고가 나게 되는데, 땅바닥에 누워서야 하늘의 폭죽을 보는 장면은 절묘했다. 같이 흘러나오는 주제가 <Lemon>(요네즈 켄시)은 시청자들이 이 딱한 사연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5화 중, 장례식장에서 진범을 피해자의 연인이 칼로 찔렀다. 동요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카도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해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5화의 엔딩은 '과연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이 엔딩이 사용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연인이 자살로 위장돼 살해당했는데, 이 사실을 나카도와 미스미가 밝혀준다. 사건의 전말을 나카도는 연인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는 남자에게 알려주게 되고, 그 남자는 연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천연덕스럽게 슬퍼하는 연기를 하는 진범을 칼로 찔러버린다. 남자가 진범에게 변명의 시간도 주지 않고 1차로 찔러버리고, 이미 쓰러져 기어 도망가는 진범을 잡아 2차로 등 뒤를 찔러버리는 장면은 꽤나 충격이었다. 이 일로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모두가 패닉에 빠졌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나카도는 공허한 눈빛으로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슬로우가 걸리는데, 움직임 속 고요함이 나카도의 내면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전체 극의 중반부에 위치함으로써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진범을 찌른 남자는 나카도의 분신인 셈이고, 시청자들은 원하지 않지만 캐릭터는 원하던 피의 복수를 미리 실행한 사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긴장감의 양상이 바뀌게 되는데 사건의 진행으로만 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점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지점이다.
잘 만든 이야기는 인기가 많다는 불변의 진리를 드라마 <언내추럴>은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낭비되지 않는 캐릭터와 잘 짜인 극의 짜임새가 캐릭터들의 주체적인 행동으로 유지되는 점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모두가 고민해보고 본받아야 한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내가 읊조린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 정말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