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식 말고, 급식이요!
우리는 '급식'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초중고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교의 '학식'과는 엄연히 다른, 급식이라는 단어. 하루의 반나절을 학교라는 곳에서 보내면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급식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급식과 마주했다. 어른이 되어도 기다려지는 게 급식 시간인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함께 식사하는 사람을 이젠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 학생 땐 정말 꼭 친한 친구들끼리만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급식을 먹었는데. 안 친한 친구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때였다. 그런데 함께 식사하며 친해지는 것도 꽤나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맞는 동기 교생 쌤들과 급식실이 있는 맞은편 건물로 이동한다. 함께 급식실로 오가는 시간 동안 궁금한 것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오히려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세워진 가림막 때문에 식사 중에 대화는 조금 힘들었다. 거의 방음벽 수준으로 앞사람의 이야기가 들리지가 않아서 대화가 이어지기가 많이 힘들었다.
교사는 자율 급식이었다. 뷔페처럼 반찬들이 즐비해있고, 우리는 한 줄을 서서 반찬을 식판에 담으면 된다. 내가 직접 정량만큼 골라 담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골라 담는 방법이 더 효율적인 것 같다. 학생들은 따로 배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사들이 식사하는 곳과 학생들이 식사하는 공간이 두 영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덕분에 불편하지 않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한양공고의 식단은 채식 위주가 많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만 그래서 한창 성장해야 하고, 맛에 민감한 아이들은 식단이 맛없다고 한 것 같다. 내 입맛에는 간도 적당하고 신선하고, 맛있었는데. 학생들은 항상 '저희 급식 맛이 없어요'를 시전 하며 투정 부렸다. 어디 나가서는 이만큼 균형 있는 식단 못 먹는데도 말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지금은 내 인생 마지막이었던, 다시 만나 참으로 반가웠던 한국의 급식이 이따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