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제는 힘든 걸 나누기 위해 같이 달리기
나는 어렸을 때 많이 약했다. 왜소했고 병을 앓았기에 친구들과 뛰어놀다가도 어느새 그만두어야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매 년 건강 설문조사에 내가 겪었던 병을 적고 나면 항상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상담과 교육이 있고는 했었다. 그래 왔기 때문에 나는 지금껏 많이 달리지 못했었다. 숨이 차오르고 가슴 부분이 저리고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질 때면 '아 나 정말 아픈 건가' 생각을 하며 주저앉았다. 흔히 어려서부터 남자 애들이 하는 축구보다는 덜 뛰어도 되는 야구를 했었고 지금껏 활발함 보다는 정적인 이미지가 내게 부여되고는 했었다.
애초에 운동을 많이 안 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달린다는 건 내게 있어서 몸도, 마음도 나와의 싸움을 이겨내는 도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장했고 때가 되어 군 복무를 시작했다. 내가 복무한 부대는 크게 간섭을 안 한터라 달리기를 자주 하지 않았었고 나도 몸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웨이트 트레이닝만 할 뿐이었다. 흔히들 농담 삼아 말하는 것처럼 뛰는 건 근손실 난다며 질색을 했었고 달리는 건 내 삶에 없을 줄 알았다.
그러던 중 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군대에 가면 다들 헤어진다던데, 나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슬픔과 괴로움, 착잡한 마음과 더불어 그런 기분을 풀어낼 수단이 없다는 게 내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나는 슬픈데 그 슬픔을 나눌 사람도, 해결할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눈을 떠야 했고 어느 때와 같이 밥을 먹어야 했으며 항상 그랬듯이 일을 해야 했다. 그때의 나에겐 감정이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뛰기 시작하면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은 마르고, 머릿속을 뒤집어 놓은 수많은 생각들은 사라졌다. 몸이 힘들면 아무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그저 뛰고 뛸 뿐이었다. 생각을 없앴고 감정을 지우며 그저 홀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짊어져야 할 나만의 짐이기에 하루, 이틀, 그렇게 꾸준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조금만 뛰어도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고 다리는 아파왔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가끔은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니까 달리는 게 점차 재미있어졌다. 달릴 때 나이키에서 나온 NIKE RUNNING CLUB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기록도 했는데 하면 할수록 마치 '나'라는 RPG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기록도 세우고 가끔 날짜 별로 받는 배지를 획득하고 나면, 처음의 힘든 감정은 사라지고 흥미가 가득했다.
100KM, 200KM, 400KM... 달리는 거리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늘어나는 거리와 함께 달리는 사람도 늘어났다. 후임들도 종종 같이 뛰기 시작하고 부대 차원에서 다 같이 달리는 걸 시작하기도 했다.
올해 초 30가지 정도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마라톤을 나가보는 것. 실제로 5월 달에 전역을 하자마자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월드비전의 VIRTUAL 마라톤에 참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돕기 위한 후원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달렸다. 그리고 올해 11월에는 스파르탄 레이스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마라톤에도 나가볼 계획이다.
며칠 전에는 우리 학교에 러닝 크루가 있어서 가입했다. 다 같이 뛰는 게 좋았고 해보고 싶었기에 용기 내어 나가 봤다. 이제는 혼자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과 다시 만나 달리고 있다. 힘든 건 이전이나 마찬가지지만, 더 이상 감정을 지워내려 홀로 달리지는 않는다. 내 옆에 있는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고 시원한 물을 마시며 같이 웃는다. 이제 정말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