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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웨Manwe Jan 03. 2024

저기는 내가 아까 서있던 곳인데

와르르

석탄광산 중 메탄가스가 존재해 갑종으로 구분되는 석탄광에서는 인화물질을 소지할 수가 없다. 아주 조그마한 불꽃이나 스파크만으로도 대형 폭발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메탄가스가 없는 을종탄광도 있지만.


하지만 금, 은 혹은 암석 등을 캐내는 일반 광산에는 가스가 없기 때문에 인화물질 소지에 비교적 자유롭고, 근로자들은 갱내에서 일을 하다가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나도 그런 근로자 중 하나였다. 어린 나이에 광산에 들어간 나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갱내에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가 담배를 태우고는 했다. 그 장소도 그중 하나였다.



14:00


땅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빙글빙글 경사져 돌아내려가는 램프웨이(rampway)

그 램프웨이에서 마치 아파트의 층처럼 일정한 심도(深度, depth)마다 뻗어져 나간 무수한 갱도들 중에서는 채굴작업이 끝나 수명을 다한 갱도들이 있다. 갱내에서 조용한 곳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다닐 일이 거의 없는 이런 폐갱도일 수밖에 없다.


언제 마지막으로 작업했는지 알 수 없는 폐갱도는 그만큼 관리되지 않은 시간도 오래 지났으니 깊숙하게 들어가진 않는다. 그저 램프웨이에서 천반을 살펴보며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갈 뿐이다.


안 그래도 육중한 몸의 25톤 트럭들이 저 밑에서 암석을 가득 싣고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소리만 램프웨이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곳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빨았다.



15:30


"올라오다 보니 폭삭 내려앉은 데가 있던데?"


어둠 속에서 막 빠져나온 덤프트럭 기사님이 갱구(坑口) 근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멈춰 서서 말했다.


"어디요? 누가 다친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고 옛날에 작업 끝나서 안 다니는 데 있잖아. 거기 안쪽에 엄청 큰 게 내려앉아버렸어."

"짐 내리고 내려갈 때 같이 내려가요! 어딘지 알려주세요!"


혹시나 무슨 문제는 안 생겼을까 싶어 다급해진 내 목소리에 서둘러 다녀오겠다던 덤프기사님은 약속대로 금세 다시 내 앞에 차를 세웠다.


"부탁드려요!"


나는 내가 평소 작업장을 순회할 때 타고 다니는 차에 황급히 올라타 덤프트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천반

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내려가는 길이 군데군데 파여있어 다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느릿한 속도로 내려갔다. 답답함이 터져 나오던 찰나 앞서 가던 덤프트럭이 멈춰 섰다.


"여기야. 난 그럼 바로 작업하러 내려가볼게."


떠나는 덤프트럭을 뒤로하고 내려보니 낯이 익은 장소였다. 내가 서서 담배를 피웠던 장소. 바로 그 장소에 1톤 트럭만한 크기의 암석이 내려앉아있었다. 분명 천반을 살펴보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 맘 편히 서있던 곳인데 채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은 내 몸을 짓이겨낼 만한 크기의 암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조금만 더 빨리 떨어졌거나, 내가 늦게 서있었다면 난 죽었다.'


힘이 다 빠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혹시나 지금 내가 방금 서있던 천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 차마 올려다보지도 못한 상태로 말이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조금씩 진정되는 마음에 다시금 앞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그제야 천반을 자세히 둘러볼 마음이 생겼다.


'아까도 이랬는데 떨어졌단말이지.'


차이점이라곤 내려앉아있는 암석의 크기만큼 높아지기만 했을 뿐 아까와 비슷한 느낌의 천반. 다시 둘러보아도 매끈해 보이고 떨어질만한 느낌은 전혀 안 들었다.




그 날은 온 몸에 힘이 빠져 기운없는 상태로 일이 끝나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부모님께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전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정도면 되었다.

통화가 끝난 후 바로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때봤던 커다란 암석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내 삶에 내가 모르는 위험이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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