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가을이 되면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고개를 번쩍 들게 하는 향이 날아온다.
달큼하면서도 부드럽고 화려하면서도 옅은 복숭아 향 같기도 한 향이, 격하게 말해 그 향은 나를 미치게 한다.
처음 그 향기를 맡은 건 중학생 때였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생경한 향이 풍겨왔다. 개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냄새에 예민한 나는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리며 향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진해졌다 연해졌다는 반복하던 향은 아파트 뒷길 그늘진 주자창에서 가장 진하게 풍겼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곱고 향긋한 향을 낼 것 같은 꽃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랗게 변해가던 잎들만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불수록 향은 더 진하게 퍼졌다. 나를 안달 나게 하는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꼭 찾고야 말겠다는 오기만 커져갔다.
한발, 킁킁
또 한발, 킁킁
누가 보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기도라도 하는 줄 알겠다. 먹이를 찾는 강아지처럼 킁킁대며 주차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다른 동으로 넘어가는 주차장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였다. 지금까지 와는 다른, 뇌리에 각인이 될 만큼 진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무였다.
여태껏 꽃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나무라니.
귤의 낱알 같은 크기와 색을 띤 작은 꽃잎이 동글동글 뭉쳐 나무줄기에 예쁘게 피어있었다.
처음엔 '겨우 요만한 게 이런 향을 낸다고?' 라며 믿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 있는 가지를 당겨 코를 대봤을 때야 비로소 믿었다. 상당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향이 났다. 벚꽃처럼 나무를 가득 메울 만큼 피지도 않았고 그저 군데군데 귀엽게 모여 피었을 뿐인데도 멀리까지 향이 퍼졌다.
나는 어린 마음에 몽글몽글 노란 꽃잎이 핀 잔가지를 꺾어 주머니에 넣었다. 내 방에 놔두면 이 향이 방안에 가득하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저 넋을 놓게 하는 그 향을 갖고 싶었다.
반나절 동안에는 은은하게 향이 돌았지만 곧 사라졌다. 자려고 방에 들어갔을 땐 싱그러웠던 꽃잎이 말라있었다. 그때만 해도 금목서는 나에겐 희귀한 나무였다.
또다시 금목서의 고혹적인 향이 풍겨온 건 일주일 전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세차게 불어 들어오는 바람결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향. 나는 고민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이젠 코를 킁킁거리지 않아도 찾을 수 있었다.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노랗고 작은 꽃잎이 달린 나무를 찾았다. 아파트 둘러싸고 만들어진 오솔길에서 반가운 금목서를 발견했다. 푹신하게 깔린 야자매트를 밟고 가 금목서 앞에 섰다.
이전만큼 향이 강하진 않지만 길을 따라 드문드문 심어진 금목서에서는 여전히 갖고 싶은 향을 풍겼다.
얇은 가지를 내려 둥그렇게 모인 꽃잎들 위로 코를 가져갔다. '흐읍-'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 향이 왜 그렇게 좋을까. 검지 끝으로 꽃잎을 부드럽게 쓸었다. 로즈메리를 쓰다듬으면 손에 향이 남는데 아쉽게도 금목서는 남지 않았다. 난 이제 성인이니 이 향을 갖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안다.
처음엔 향수를 찾아봤다. 더럽게 비쌌다. 완전 똑같이 구현해내지도 못할 거면서.
그러다 샴푸를 발견했다. 하루 종일 머리에서 금목서 향이 풍긴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적당한 가격이라 구매했다. 며칠 뒤 배송 온 샴푸를 개봉해 바로 머리를 감았다.
역시... 자연의 향을 쉽게 구현해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쉽다. 그렇다고 화분을 살 수도 없다.
며칠도 못가 죽일 테니까. 금목서로 가득한 곳은 없을까? 있다면 가보고 싶다.
난 오늘도 금목서 향을 맡기 위해 오솔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