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색안경을 벗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by 류아민

얼마 전 대학동기와 꽤 늦은 시간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어느새 밥벌이 근황과 육아 하소연으로 대화가 넘어갔다.


[소설? 야! 내가 제일 처음으로 너한테 글 써보라고 한 거 아나? 사회과학통계 과제할 때 결론 쓴 거 보고 한번 공부해 보라 했잖아.]

[그랬나?]

[어! 내용이 꽤 좋았어서 해보랬다.]


그랬던가? 어제 뭘 먹고 뭘 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흘러가듯 이야기한 게 기억날 리 없었다. 그러다 다른 동기들과 연락은 하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대학시절, 난 자발적 아웃사이더였다. 그렇게 된 계기는 있었지만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았다. 친구가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ㅇㅇ누나 기억하나. 생일이라서 연락했는데 요새 심적으로 좀 힘들다더라고.]

[아, 어..]


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언니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뭐랄까.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자였다고 할까, 앞과 뒤가 다르다고 할까.


[누나 대학생 때부터 봐왔지만 진짜 열심히 산다이가. 사업하면서도 주변 다 챙기고 그러기 쉽지 않은데, 존경스럽다.]


그 언니를 찬양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된 이유, 바로 그 언니 때문이었다.


[야, 난 그 언니 얘기 안 듣고 싶다.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대학생 시절,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던 나에게도 남자 둘 여자 셋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있었다. 그들 덕분에 대학생활이 꽤 즐거웠다. 하지만 그 언니가 복학하고 우리 무리에 들어오면서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결국, 난 이탈했다.


그 언니는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예쁘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늘 웃는 얼굴에 공부도 잘했다. 나도 처음엔 그 언니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걔는 진짜 여우 같은 년이야. 예쁜 척 귀여운 척 연약한척하면서 남자들 꼬시고, 내 남자 친구까지 꼬시려는 거 있지? 애정결핍이라서 조금만 잘해주면 오빠~ 언니~ 하면서 엉기더라. 으 개소름~!"

"진짜? 그럼 그냥 떨궈내. 뭐 하러 달고 있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알고 보니까 같은 교회인 거 있지? 친하게 지내는 게 우선은 나을 것 같아. 교수님도 걔 예뻐하고."


화장실 칸 안에 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를 적나라하게 들었다. 앞에선 세상 좋은 언니인척 누나인척 선배인척하면서 뒤에선 한 명 한 명 욕했다. 그 목소리가 웃음소리가 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험담 사실을 '여우 같은 년'으로 칭해졌던 친구에게 말했다. 그 친구의 반응에서 난 인간이 더 싫어졌다.


"알아. 그 언니 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 근데 상관없어. 그 언니랑 친해놔야 성적도 교회도 교수님과의 관계도 수월해져."


난 그제야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게 당연한, 내가 겪은 대학이란 곳은 그런 곳이었고, 난 너무 순진했다. 그래서 그 거짓뿐인 관계에서 이탈했다.


당연 그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언니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를 항상 답답해했고 조별과제에서도 교묘하게 나를 배제했다.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성적이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선 나란 존재는 버리고 가야 할 짐이었으니까.


혼자 다니게 된 계기를 개운하게 털어놨다.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듯 답장이 왔다.


[누나가 학점 때문에 좀 예민하게 군 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삼자대면을 할 수도 없고. 내가 아는 누나는 자기 인생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방을 판단하니까.

난 그랬고 넌 아니었겠지.

열심히 사는 사람인 건 인정한다. 악착같이 공부했고 교수님들의 각종 심부름에 논문 자료조사까지 도왔다. 그런 사람이 나와 함께 했던 과목만 b+을 받았다. 그 과목은 조별과제 점수가 중요했고, 내가 조별과제 발표자였다.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보던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모두가 언니를 달랬고, 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또 받았다. 그리고 상처를 덮어두고 서로를 찾지 않았다.


[나는 그랬다고. 너한텐 어떨지 몰라도 나한텐 그랬다고. 난 그 언니의 흑화 된 모습을 봐서 선한 모습이 안 보였나 봐.]

[야. 나도 학생 때 성적 때문에 사바사바 아양 떨면서 족보 받고 선배들 이용했다. 그게 왜. 살아야 할 거 아니가. 학점이 잘 나와야 장학금을 받지. 누나, 장학금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아, 몰라. 뒷담화하는 거 못 들었으면 몰라도 난 앞뒤 다른 사람 싫다.]


이 또한 내 성격이었다. 지독히도 고집스럽고 지랄 맞은 성격. 그 사람의 어두운 내면을 보면 다가가지 않는다. 비록 그 사람의 밝은 모습을 봐도 믿지 않는다.


[답답하다 니도. 사회생활 안 해봤나. 어째 선하게만 살아가냐고. 이용하기도 하고 당해주기도 하면서 사는 거지. 서로가 눈감아주면서 연 이어가는 거다. 이 답답아.]


답을 할 수 없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며 살고 있다. 필요하니까 연을 이어가는 거고 도움받았으니 또 갚으면서 사는 거다. 이 늦은 밤 불면증을 호소하며 친구의 단잠을 깨운 나도 어쩌면 친구를 이용한 걸지도 모른다.


색안경을 벗고 언니를 다시 봤다. 악착같던 언니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고객유치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이벤트를 열어 물건의 품질을 알렸고 입소문이 퍼지며 점점 규모를 넓혀갔다.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그토록 관리했던 인연들이 다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


흠, 쓰다 보니 자기반성의 시간도 생긴다.

그러는 본인은 누구의 흉도 보지 않고 선하게만 살았나? 당연히 아니지. 지금 이 글도 누군가의 흉을 보는 거였으니까. 나 또한 누군가의 치부를 입에 담으며 깔깔거렸다. 부끄러운 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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