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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06. 2016

<사라진 왕국의 성> 그림이 살아있다



머니투데이 동네북 서평단에 직장인이자 '블로거 마냐'로 이름을 올렸다. 별 짓 다한다..^^;;;

어차피 북리뷰는 취미 삼아 오래 해온 일인데, 맘에 드는 책 한 권 리뷰 못할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요즘 너무 바빠서.. 책 읽는 것도 너무 강행군이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의문.

무튼, 숙제로 제출했던 서평을 여기에도 옮겨놓는다.




"냄새를 느꼈다. 코끝을, 바람이 스친 기분이 들었다. 숲의 냄새다. 초록의 냄새다. 그림 속의 숲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34~35쪽)


착각일 법 하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숲' 냄새를 맡다니. 색깔도 없는 흑백의 스케치인데. 그런데 그림은 진짜 살아있었다. 그림과 접촉하는 순간, 그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책은 중학생 신이 그림 속 세계로 들어가는 얘기를 그린다.


세상에. 소녀 시절 흠뻑 빠졌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이후 책이나 그림에 빠지는 소년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번에는 내가 애정하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 일명 '미미여사'의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는 일본 에도 시대를 그린 역사물도 기막히게 그려내고 가끔 SF나 판타지를 별미처럼 보여준다.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대명사로 떠오를 만큼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의 구조적 아픔을 제대로 녹여낸다. 이 책처럼 '슈퍼내추럴'한(초자연적인) 이야기에도 서늘한 현실을 건드린다.


주인공 신은 평범한 중학생 소년. 그림의 비밀을 알게 되자 그림 속에 '아바타'를 그려 넣어 들어갈 궁리를 한다. 문제는 그림 재주가 없다는 것. 그래서 끌어들인 동지는 미술 재능 충만한 동급생 시로타. 이른바 '미움받는 애'다. 전형적 왕따다.

그녀의 그림은 황량하고 싸늘한 광장이다. 그림에 영혼이 담긴다면 그녀의 영혼은 삭막할 게 분명하다. 이들을 둘러싼 중학생 친구들은 잔인하고 비정하다. 함께 있는 장면을 들키기만 해도 신까지 따돌림당할 게 분명한 그런 아이가 파트너라니.

여기에 아이가 한 명 더 등장한다. 그림 속 아이다. '사라진 왕국의 성' 마냥 쓸쓸한 고성의 첨탑 창 너머에 있는 여자아이. 대체 그녀는 왜, 언제, 어떻게 그림 안으로 들어간 걸까.


소년 소녀의 모험은 그림을 탐구하고 그림 속 성을 바라보고 성 안의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리고 또 다른 인연에 부딪히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림에 들락거리는 일도 불안함과 긴장, 짜릿함을 동반하지만, 현실 세계는 훨씬 더 냉정하다.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시로타의 사연도 이들이 풀어나가는 비밀도 가슴 한편을 아리게 만든다. 세상은 때로 작은 관심, 소소한 배려로 바꿀 수 있을 텐데 다들 어찌나 무심한지. 반면 그들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사심 없는 ‘인정’, 인간의 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미 여사는 언제나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치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늘 그렇듯 먹먹함과 따뜻함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어린아이 판타지 같은 얘기로도 독보적 사회파 작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평범하고 행복한 소년이 평범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소녀와 소통하는 과정, 그들의 닮은 모습과 다른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쓸쓸하지만 가슴에 남는다. 어느 주말, 한달음에 완독. 잘 읽힌다.


◇ 사라진 왕국의 성=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 380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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