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모녀 여행, 새로운 맛의 즐거움
아아. 정말 아쉽지만, 작년 10월 딸과 다녀온 <후쿠오카 역사 여행>의 즐거운 깨달음, 재미난 구경들을 결국 정리하지 못했다. 혹은 못하고 있다.. 아니, 못 할듯. 기억을 되살려 정리하는 건 너무 힘들다. 고고학자와 희랍어 통달한 인문학자, 중국 금석학 전문가를 비롯해 인문학 전문가 7명이 저마다 선생님이 되어주신 그 여행. 일본의 역사와 양국 관계를 새삼 여러가지로 성찰할 기회가 되어줬던 여행...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딸도 너무 좋아했는데.
무튼, 2박3일 짧았지만, 심지어 먹는 걸로도 매우 흡족했던 여행이다. 중요한 여행의 발견은 어쩔 수 없고, 찍어놓은 사진 정리 차원에서.. 후쿠오카 먹방만 정리하고 넘어가자.
금요일 오후 늦게 비행기를 탔다. 근사한 료칸에서 묵기로 되어 있는데,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서 저녁을 맛볼 수 없었다. 하지만 굶을 수는 없는 법. 막판에 수호천사처럼 우리와 인연이 닿은 가이드님은 도시락을 준비했다. 우리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밥을 새로 했다나 뭐래나. 하얀 쌀밥에 좋은 도시락. 그리고 마트에 잠시 들려 회와 후쿠오카 명물 명란젓 등을 사서.. 숙소에서 풀었다.
저 도시락 브랜드, 국내에도 들어왔는데. 다른 듯.
아침은 제대로 만끽. 딸과 아주 소박하지만, 기분 좋은 노천탕에서 몸 좀 풀어주고 아침을 즐겼지. 모녀 여행의 묘미!
이런 숙소였다! 창 밖 배경도 근사했지. 잠만 자고 나온게 아깝..
이 여행은 진짜 전문가들, 제대로 타향을 즐길 줄 아는 고수들과 함께 한 것이 특징. 덕분에 매 끼니, 이보다 더 신날 수가 없었다.
투명하게 살아있는 한치회. 먹다보면 몸통과 다리는 소금구이와 튀김으로. 한치슈마이로 시작하는 한치 코스. 한치성게덮밥도 매우 훌륭. 창 밖 물고기가 다니는 해저 식당으로 흔들림도 잠깐. 후쿠오카 가라쓰 만보.
바로 튀겨내온 한치 튀김은 소금을 찍어 먹었는데, 튀김의 예술이랄까.. 배가 불러도 놓을 수 없는 맛. 한치 구이는 또 어쩌고. 부드럽고 신선한데 구워서 고소해진 그 맛.
우니 듬뿍, 계란과 한치에 비벼먹는 밥!!! 한치 슈마이~
식당 자체가 저렇게 물 위에 반쯤 떠있다. 지하로 내려가서 먹으면. 유리창 너머 저 한치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둘째날 저녁은 정말 환상적이라고 밖에. 인당 한 4만원 정도 든 것 같은데. 두유를 80도 정도로 굳히면 얇은 막이 생기는데 '유바'라고 한다. 유바를 비롯해 두부 요리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우메노하나'
기본 상차림. 식감 좋은 모찌두부와 자왕무시, 오토시로 나온 유바.
유바는 4인 테이블에 저렇게 네모난 스테인레스 통에서 만들어진다. 이게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넷이서 차례로 얇게 생기는 막을 건져낸 뒤..
유자 껍질을 갈아서 살짝 향을 더하고, 소스와 함께 맛보면 된다. 와우..
ㅇㅇ이 와중에 두부 슈마이도 나오고. 두부 튀김에다.. 갖가지 두부 요리를 마음껏 즐기면 된다. 하나하나 아주 흡족하다.
질 좋은 고기도 제공되는데, 달랑 두 점ㅋㅋ 그러나 훌륭해서 토를 달 수 없다. 이미 배는 엄청 부른 상태. 게다가 향 좋은 버섯밥을 안 먹어줄 수가 없고. 콩가루 뿌려진 아이스크림도 진한 맛에 반하지 않을 수가.
이 식당은 사실 일본식 정원도 기막히게 꾸며놓아서... 호사로웠다. 딸에게 이런 곳을 보여주게 되어 어찌나 흐뭇하던지. 이렇게 대단한 식사도 사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편. 흠흠.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점심. 짧은 여행이지만. 알차게 먹었다. 이 집은 줄이 길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는다. 점심에 500셋트만 한정 제공된다는.. 약 15,000원 상당의 정식 셋트.
이것은 회 정식. 알차게 나오고.
모밀 정식이다. 구성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이 집의 핵심은 명란젓!!
저 튜브형 명란젓이.. 무제한 제공된다. 튜브 하나에 8000원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식탁마다 비치되어 있다. 우리 일행들은 한 두 번 더 부탁해 계속 튜브를 짰다. 딸이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르다"고 감탄했는데, 진짜 달랐다ㅠㅠ 저 튜브를 더 많이 사오지 못한게 아쉬운. 하얀 쌀밥에 명란젓 만으로도 근사한 밥상.
딸과 여행을 가니.. 쓸데 없는 것에 약해진다. 평소 같으면 저런걸 다 샀을리가. 그러나. 바나나 빵이 명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딸은 후쿠오카 공항 면세점에서 저 노란 상자부터 챙겼고, 신제품으로 나온 딸기 빵 소개를 듣더니 딸기 빵 상자도 품에 안았다.. 둘 다, 하나 이상 먹기는 좀 느끼하다.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먹으면 그럭저럭. 하지만, 이미 먹어본 바 있는.. 저 위의 남색 상자는 이름도 잘 모르지만.. 하여간에 정말 맛있다. 쿠크다스 원조 같은데. 담에 가면 저거나 더 사야지.
모녀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2박 3일 내내 박물관들과 유적지만 다니는 일정이라.. 아들은 처음부터 관심 없다고 했던 덕분에 이뤄졌다.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 음식들. 딸은 언제 다시 가자는 얘기를 계속한다. 흠흠. 얘야, 네가 바쁜게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