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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03. 2016

<디지털 디스커넥트>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승자독식의 디지털 시대, 문제는 자본주의다


누군가 독점해온 정보를 나누고, 권력자들 소리만 들리던 공간에 풀뿌리들이 목소리를 내고, 소통과 연결의 힘으로 개방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세상. 디지털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혁명이었다. SNS를 기반으로 진행된 아랍 혁명에 주목했고, 여론을 움직이는 넷심에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증거보다 그렇지 않다는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은 불평등하다. 민주주의도 쇠퇴했다. 언론은 더 많이 망가졌다. 어느게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훌륭한 나라가 아니다. 이런 주장은 사실 미드 <뉴스룸>에도 나온다. 다들 아는 얘기다. 핵심은 불평등한 구조가 심해진 현상에 있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이제 필리핀이나 멕시코와 비슷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걸 당연히 여기는 나라가 된건가. 상위 20%가 차지하는 부, 스웨덴은 35%, 미국은 84%에 달한다. 2004년 조지 부시에게 투표를 한 응답자의 90%조차 스웨덴의 분배 형태를 선호했다. 폴 크루그먼은 걱정을 한다. 한 국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질수록 경제성장 가능성은 낮아지고 불황이 심해지며. 장기 불황은 반동과 심지어 야만의 시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이 시대에 우리는 비슷한 걱정을 갖고 있다. 


만약 소득과 부,경제적 지위가 모두 정치의 자원이 된다면, 그리고 이 모든게 불평등하게 배분되면 어찌 모든 시민이 정치적으로 평등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정치적으로 평등할 수 없다면 도대체 민주주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정치학자 로버트 달도 걱정을 했다. 


디지털 기술 덕에 위대하고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했는가? 연결된 네트워크 시대, 풀뿌리 민주주의는 희망을 가져왔는가?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 우리 시대의 결정적 문제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뿌리에서부터 침해하는 현실에 있다. 어디서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가?


디지털? 공론장이 무너지는데


하버마스는 현대 민주주의 혁명의 결정적 요소를 공론장이라고 했다. 정부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민들이 모여 동등한 자격으로 정책 문제에 토론을 펼치고 논쟁을 벌이는 공간. 국가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미디어. 공론장, 혹은 '저널리즘'이 대체 뭐였는지 새삼 저자의 정리를 옮겨본다.  


홍보는 일반적으로 '기업은 좋은 것, 시장도 마찬가지로 선한 것, 반면 정부는 나쁜, 노동계급은 더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홍보와 광고의 결합은 이 시대를 진실과 거리가 먼 커뮤니케이션의 황금기로 전락시켰다는게 저자의 지적이다. 인터넷이 기존 언론을 망하게 했다고? 혹은 인터넷이 언젠가 훨씬 탁월한 미디어를 만들어낼 거라고? 저자는 이른바 미디어 '황금기' 동안에도 저널리즘의 질은 높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공식 취재원 의존 문제는 더러운 주고받기 관계다. 엘리트들이 원하는 바를 성실히 보도하는 한도 내에서만 미디어는 접근권을 얻을 수 있다. 그 상호이익 관계가 깨지는 순간 제대로 된 기자들은 접근권이 거부된 채 벌판으로 내쫓길 것이다...

전현직 정부 관리 말을 두서너 마디 따고 (동의할 만한 제도권 싱크탱크 전문가 말을 중간에 섞은 후) 이들이 말하는 바를 무비판 적으로 방송하고 되풀이한다. 이게 바로 워싱턴에서 제도권에 봉사하는 저널리스트들의 이른바 '리얼한 보도다.


디지털 혁신에 대한 로망은 여러 곳에서 배반당했다. 위키리크스는 탐사 저널리즘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 같았지만, 공개된 문서는 온라인에만 머물렀다. 기존 미디어가 써주지 않으면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비영리 온라인 미디어도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메이저 언론이 기사를 받아줘야 여론이 움직인다. 개인 기부금과 재단 기금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근래 가장 성공적인 가디언조차 운영상 손실을 감당할 군자금이 기껏 몇 년 버틸 정도란다. 


저널리즘이 공공재라면    


저자는 저널리즘을 위해 공공미디어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미국의 금융 귀재들도 찾지 못한 이 시대 미디어 BM을 찾느라 애쓰지 말고, 저널리즘이 공공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출발하자고 한다. 제대로 공적 투자를 해보자는 과격한 주장이다.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에서 미국이 19위인데, 상위 18개국 대부분이 미국에 비해 1인당 최소 10~20배의 미디어 보조금이 지원된다고.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공공미디어 투자는 비례하고 거의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공공미디어가 국영미디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갖추면 되지, 쫄지 말고 공공미디어를 키우자고 한다. 그러나 MBC와 KBS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지난 몇 년 지켜본 입장에서,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어디서 복원해야 할지 아득하다. 원론적으로는 동의하는데, 양 극단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저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스럽다. 이 책은 독서모임 <트레바리 뉴미디어>에서 함께 읽었는데, 다들 이 문제에 낙관적이지 않았다. 국영방송이 되어버린 공영방송, 정부 예산을 받아 정부 비판에 소극적인 통신사에 대한 신뢰가 분명 줄었다. 그러나 팟캐스트 등 새로운 대안 미디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편집권 침해에 제동을 걸어줄 룰, 강력한 견제와 감시를 구조화할 수 없을까? 결국 투명한 논의를 통해 제대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K님 주장에 동의한다. 


급진적 학자라는데 대체로 이견이 없는 저자는 세금 공제 방식으로 모든 납세자에게 '미디어 바우처'를 제공하자는 얘기도 꺼냈다. 모두 각자 지지하는 비영리 미디어에 기부하도록 아예 시스템을 만들자는 얘기다. 엉뚱한 극단적 매체가 후원자 머릿수 모으느라 애쓰게 될까? 몇 몇 부작용이 떠오르긴 하지만, 역시 위축될 필요는 없는 상상력. 쓴웃음이 나오다가, 막판에는 조금 생각해보게 된다는게 함정. 


디지털 거인들의 패권주의


선량함을, 혁신을 내세웠던 쿨한 거인들이 우리의 구세주가 될 거란 착각도 버려야겠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기존 권력자들은 힘이 세고, 새 권력자들은 도도하다. AT&T와 버라이즌이 60%를 장악한 복점 구조의 대가? 미국인들은 휴대폰 서비스에 연 평균 635달러를 지출한다. 스웨덴 네덜란드 사람들은 훨씬 뛰어난 서비스에 130달러도 내지 않고있다. 마침 한국이 bandwidth cost, 대역폭, 즉 망비용 상승하는 유일한 나라고 서울과 타이페이 transit cost 는 유럽보다 15배 비씨다는 얘기가 나오는 즈음이다. 


45년 이후 미국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맡은 교수의 1/3이 국가 안보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군사적 목적과 엮인다. 구글어스는 군부가 이용자당 수백만 달러를 기꺼이 지불한 덕분에 나왔다고 한다. 차세대 드론은 스마트폰 군단을 만들어낼거라 한다. 클라우드컴퓨팅 환경은 이미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상당한 자본 지출이 필요한데 결국 과점이나 독점으로 귀결된다고. 하기야 모든 기업들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아마존 AWS 클라우드에 모여든 것은 과연 안전한가? 아마존은 갑자기 독점적 지배력을 활용해 가격을 인상하거나, 해당 정보를 통제할 가능성은 없을까? 해마다 수십 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에 쓰는 구글과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까?    


12년 FCC가 승인한 망중립성은 유선 ISP의 중립성을 유지시켰지만, 무선 ISP의 경우 사실상 중립성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구글과 버라이즌의 야합에 대해 제프 자비스는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의 인터넷 지배를 풍자하며 '슈민터넷'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는 특히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법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혁신이란 각각의 단계가 그 이전의 아이디어를 딛고 올라서는 일종의 지적인 축적 과정인 경우가 많은데, 저작권이나 특허를 앞세워 힘 센 기득권들이 이를 막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98~2010년 의회 로비 및 홍보를 위해 13억 달러를 썼다. 공적 도메인과 공정이용을 요구한 반대편 시민들은 같은 기간 100만 달러를 썼다. 로비력에서 1300배 더 힘이 세다는 차이도 간과할 수 없지만, 대체 13억 달러를 써서 지킨 세상에서 그들은 얼마나 더 챙겼을까. 

 

지배적 사업자들은 자신의 BM을 무너뜨릴 수 잆는 미래의 혁신에 호의적이지 않다. 창의성과 문화적 생산을 독려하기는 커녕 저해하는게 저작권. 밥 딜런 초기 히트곡 상당수가 영국계 아프리카계 전통 레퍼토리 표절해 재탄생했지만 우리는 그의 노래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면 저작권법에 걸린다. 재즈나 록 레게 힙합 등 대중음악의 위대한 돌파구는 거대 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변두리 공동체가 만들었다. 미디어 기업들의 경우, 수용자 입맛을 끌어올릴 그 어떤 동기도 없다고. 공급이 수요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독립 영화 한 편 제대로 보기 힘든 영화 유통 구조에서도 실감난다. 


연결된 세상의 감시와 통제


연결된 세상은 빅브라더 우려도 키운다. 9.11이후 미국의 '국가안보 컴플렉스'는 어마어마하다. 23만명이 근무하는 국토안보부를 비롯, 정보 관련 부서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건물만 33개? 85만명이 일급비밀 취급 허가를 받았고, 1300개 정부 기관과 2000개 사기업이 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3만명이 미국내 감청 위해 채용됐다는 내용에는 괜히 진위 여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인터넷 혁명과 다름 없었던 2010년 위키리크스의 미국 정부 비밀문서 공개. 아마존은 서버에서 위키리크스를 내쫓았고, 애플은 위키리크스 앱을 걷어냈다. 페이팔, 마스터, 비자, 아메리카 은행이 위키리크스와 관계를 끊었다. 행정부가 이들 기업에게 이런 조치를 요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친구 K의 설명을 들어보면 더 무섭다. 위키리크스 탄압에 반발한 어나니머스라는 해커들이 마스터카드, 비자 등에 DDos 공격을 감행한 뒤, 미국 FBI는 40개의 영장을 발부받아 해커들을 잡아들였다. 100명이 넘는 이들이 인도네시아, 도미니카, 캄보디아에서까지 해커들이 체포됐다. 미국과 각국의 치부를 드러낸 줄리언 어샌지, 미국의 감시 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여전히 위태로운 망명객 신세다. 



생각보다 책이 읽을만 해서 안도했다. <트레바리 뉴미디어> 9~12월 시즌 첫 책. 고르고 골랐지만, 너무 어렵진 않을지, 너무 뜬구름 잡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다들 교수님이 쓴 책 답게 좀 어려웠다는게 첫번째 감상기. 번역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들 얘기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난 대목이 많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다행이다. 


저자는 대놓고 급진적 좌파. 지향점과 철학이 분명해서 오히려 나았다. 감안해서 보면 더 잘 볼 수 있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자본주의라는 구조,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틀이 나빠지는데 디지털이 만병통치약이 될 리 없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할 처지도 아닌게 우리의 숙명. 솔루션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피지기 기분이 조금 들었다. 나름 ‘인터넷주의자’로서 낙관을 지지하던 입장이라, 몇 년 전만해도 저자의 주장에 쓴웃음을 지며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른다. 구글의 독점을 맹비난하며, 과거 미국이 독점 기업에 대응했던 규제, 예컨대 쪼개거나 공공재로 만드는 방식 등에 대해 말도 안된다고 넘겨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사이에,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고, 당혹하던 중이다. winner takes all 의 원칙이 너무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불안한 시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줬다. 역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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