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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13. 2016

<이명현의 별 헤는 밤> 따라서 별 헤는 호사는 언제

이것은 2014년 7월의 리뷰. 오늘 어쩌다 다시 읽게 됐는데, 또 촉촉한 기분에.. (술도 많이 안 마셨는데..)

퍼날라놓는다.


장구하고 광활한 우주, 밝음과 어둠의 교차점에서 기적처럼 만난 우리..우주적 시공의 흐름 속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쉬워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이 행성에서 연인들과 사랑을 맘껏 나누자


삶이 다 기적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 겪는 일 모두 우주의 신비다. 저 말은 “1조에 1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수 분의 1의 확률보다 더 작은 우연"으로 우리가 만나게 됐다는 칼 세이건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막연하게 천문학자인가 보다, 이해하던 이명현 쌤에 대해 책 표지에서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별 밖에 모르는 친구. 별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별에서 생명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주를 탐하는 인생이라니.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은 그런 천문학자의 감수성 돋는 짧은 글들을 엮었다. 

에세이란 본디, 어지간한 글빨이 아니라면 참아주기 힘든 법. 고등학교 문예반 출신으로 “동네 누나 가운데 문학소녀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는 문예반 생활을 즐겁게 했고 대학에서도 열심히 글을 썼다. 문학가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특출한 문장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이정모님의 소개글은 가까운 친구 답게 정확하거나 다소 겸손하다. 페친인 출판사 분께서 보내주신 책인데, 그냥 들춰만 보려고 했다. 평소 ‘별’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도 없을뿐더러, ‘행성과 우주’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없는 내게 ‘돼지 목의 진주’ 같은 책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 시작했다. 첫날 밤, 별을 헤면서 보지는 않았지만 절반을 읽었다. 이런 트윗질을 하면서.  


“빛의 속도로 달까지 약 1.3초. 아무리 가까와도 빛이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의 웃음도 과거지사일뿐. 하지만 각기 다른 현재를 살아가면서..짧은 시간의 간격속에서 뒤섞인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이명현의 별헤는밤>

우리 뼛속의 칼슘과 핏속의 철분은, 태양이 생겨나기 전에, 우리 은하계에서 폭발한 이 별들 속에 있던 것..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문득 그리워진다면..우리들의 고향이 저 별들의 뜨거운 내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현의 별헤는밤>


예수가 태어난 때는 4월 추정..예수가 꿈꾼 세상은 교회가 없는 세상이었을것. 종교도 없고 권력도 없는, 존 레논이 꿈꾼 그런 세상..예수의 생일도, 모습도, 꿈도 왜곡됐지만 혁명과 개혁에 몸 던졌던 그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별처럼 빛난다.<별헤는밤>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스타 소녀시대에게'.. (플레이데아스 성단 1000개가 넘는 별 중에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밝은 별 9개의 이름을 소녀시대에게 바치는...천문학자라니ㅎㅎㅎ) 


적당한 시 한 수, 혹은 그림에 엮어서 별 별 얘기를 다 하시는데, 편하게 읽힌다. 그냥 천문학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혹시 서점서 이 책을 들춰본다면 '봄의 대곡선'을 강추한다. 천문학도가 별자리 가리키며 별 별 얘기로 여자를 꼬시는 '천문 연애학 실습'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왠만한 연애소설보다 잼나고 반전도 기막히다. 여심은 별에 약하다고ㅋ 아쉽게도 별로 꼬셔보려는 남자를 구경도 못해봤지만, 그럴싸하지 않은가?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해도 그대여, 
그대에게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대는 내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아 어찌합니까, 나는 이미 담을 넘어 버린 것을. 

<이정하, 문> ..... 블랙홀 얘기를 저 시로 여는 센쓰. 

이런 대목에서는 뒹굴뒹굴 책을 보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 다시 별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외로움에 떨며 온 힘을 다해 버텨냈을 세월호 실종자들을 위한 소망의 별자리 하나와 이미 죽음의 경계를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넘어간 이들을 위한 위안의 별자리 하나를 만들려고 한다. 
다행히 구조된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별자리도 함께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포함해서 부끄럽게 살아남은 자들의 분노와 성찰과 실천을 위한 통곡의 별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잊지 않고 하늘을 지켜볼 때마다 떠올릴 것이다.


별을 연구하고, 우주를 들여다보게 되면,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도 조금 다를 수 있을런지. 세상을 등진 이들이 별이 될거라는 마음은, 아마 밤마다 그 별을 보며'잊지 않겠다'는 다짐들. 그러나 별이 되어 함께 한다는 마음은 어쩐지 따뜻하다. 우주는 차가울지라도, 마음은 그런거. 세월호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2014년 봄과 여름에 별자리라도 만들어 기억하고 싶은 우리들 마음. 


'죽어서 더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초신성 카시오페이아A의 잔해. 


초신성 폭발..은 빛나는 현상이 마치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것 처럼 보여 이름이 붙여졌지만, 실제로는 수명이 다한 별이 폭발하며 엄청난 밝기와 에너지를 내뿜는 것.저자는 "초신성과 닮은 사람들"로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부터 시작해... '사무치게 미운 감정이 함께 몰려오기는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낸다.죽어서 더 빛을 내는 별 같은.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을 보며, 그림 속 달 모양이 초승달을 닮았음에도 볼록한 쪽이 위를 향하는..있을 수 없는 달의 모습이란 점에 착안해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아랫부분을 가리고 지나가는‘ 부분월식을 상상한 아마추어 천문가 이야기도 소개된다. 그 아마추어 천문가는 1758년생인 신윤복이 활동했을 시기의 100년 간 부분월식을 모두 조사해, 1784년 8월30일과 1793년 8월21일을 찾아내는데, 1784년 그 무렵엔 서울에 계속 비가 내렸다는 승정원일기가 남아있단다. 그리하여, 신윤복이 1793년 8월21일 밤 11시50분의 부분월식을 그린게 아닐까 짐작하는 스토리. 이 대목에서 이명현쌤은 이리 표현한다. 

그림 속에 부분월식 장면을 그려 넣은 신윤복의 날카로운 관찰과 정확성도 감탄스럽고 그 그림 속의 비밀을 찾아낸 아마추어 천문가의 열정과 통찰도 멋지다. 달빛이 가려져서 어두워지는 자정 무렵의 밀애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글 스타일이 짐작되는가? 맞다. 이 분, 귀엽다. 글이 찰지다. 유쾌하다. 그러니 별에 대한 어려운 얘기도 크게 걸리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더불어 ‘별 헤는 밤’의 촉촉한 마음을 훔쳐보려고 절반 휘리릭 본 이후, 가급적 밤에 혼자 야금야금 읽었다. 

우주의 역사 137억년을 지구의 1년으로 축약해보면, 태양계는 9월9일에, 지구에 첫 생명체는 9월30일 무렵 등장했단다. '슈퍼스타' 부처님과 예수님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5초와 56초에 차례로 태어난 우주 쌍둥이라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우리네 찰나의 삶에 보다 겸허해질 수 밖에 없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별이다. 고마운 독서였다. 한가지 흠은... 더이상 별을 보지 못하는 도시인의삶을 자각하니 슬프다. 쉽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시대구나. '별 헤는 밤'의 호사는 언제 누릴 수 있을까. 

한때 좋아했던 나희덕 시인의 시도 인용되어 있길래, 기념 삼아 퍼나른다.


나희덕 「어둠이 아직」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에도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 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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