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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4. 2017

<중국 만리장정> 중국이 보이고 마음이 흔들린다


미국 6400km를 자전거로 횡단한 이야기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으로 십여년 전 이 분을 처음 만났다. 진심 부러워서 <불쌍한 도시인 모드로.. 네 가지 부러움> 이라는 리뷰도 남겼다. 이후 회사도 그만두고 미국에 이어 7년 만에 중국 횡단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자 팬심으로 당시 여행기를 실은 '미투데이'를 비롯해 중앙선데이 연재도 기다렸다. 그런데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아니 이 옵바 글에 너무 힘 주는 거 아닐까?ㅠ 재미있다가도 조금 쳐지기도 하고, 어느 틈에 흥미가 줄었다. 책이 나왔다지만 그냥 넘겼다.


그래서 너무 늦게 알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다니. 토요일 오후에 읽기 시작해 370여쪽 주말 내내 몰아서 달렸다. 몇 년 전 어렴풋한 인상과 기억만으로 그냥 지나갔다면 엄청 아까울 뻔 했다. 새해 시작하자마자 이런 두근거리는 위안을 얻다니 운이 좋다. 13년에 나온 책을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다. 그때는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 세상에.


바람과 함께 떠나다


"헬스클럽이나 수영장, 등산과 마라톤으로 심심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육된 움직임이다. 바람에 묻어나는 냄새를 느끼면서, 바스락거리는 풀잎에 스치면서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은 공간에 대한 오감을 가동하는 행위...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복제하기보다 그냥 벌판을 달리고 싶은. 박차고 일어나 가보지 못한 세계로 뛰어들고 싶다. 그게 오랜 주입식 교육과 좌식노동을 통해 순치돼버린 일상에서 벗어나 DNA의 명령에 따르는일. 규격화되지 않은 삶이 좀 더 본성적..."


왜 달리는가. 왜 떠나는가. 인간의 DNA 자체가 현대 도시사회 생활과 맞지 않다는 당당한 주장. 물론 저렇게 인용 트윗을 올렸더니 트친 박태웅님이"바람에 묻어나는 냄새를 느끼면서, 바스락거리는 풀잎에 스치면서" 하는게 등산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셨고, 요즘 저자도 등산 즐기시는 걸로 알지만서도. 하여간에ㅎㅎ 저런 로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게 우리 본성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니 이런 사진이 나온다. 와우.... 잠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길.. 길이 있고, 자전거가 있다. 그거면 됐다.


역사와 함께 떠나다


여행은 다양한 기록이 가능하다. 풍경 감상, 만난 사람들의 인상, 에피소드.. 그런데 저자는 중국을 탐하는 뿌리가 깊었다. 동양사학을 공부할 때 부터 뭔가 옆구리를 간지르는 나라였다고. 미국 자전거 횡단 하자마자 옆집 중국 부인에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전거여행 코스부터 중국사를 관통하도록 구상했다. 이 책에 반한 이유 중 하나인데.. 저 삼각형을 보고서야 비로소 대륙의 구조가 중국 역사와 함께 쿵 하고 머리에 들어앉았다. 진나라의 시안을 비롯해 후한과 당의 뤄양, 정저우, 송의 카이펑.. 아니, 온갖 무협지의 배경, 바로 그 낙양, 정주, 개봉이다! 화산파의 본거지 화산에 대한 묘사라니! 상하이에서 출발해 중국의 8대 고도를 잇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역사가 보이고, 현대로 이어지며 정치와 문화, 사회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4년 전 책이라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내심 걸렸는데 기우였다.


"중국의 미래라는 상하이는 뜻밖에도 1930년대를 그리워한다. 황금시대. 자유, 개방, 선진이라는 세가지 키워드..중국 근현대사 가장 고통스럽던 시기 유일하게 흥청망청했던 그 상하이.." 


"...환경오염과 식품안전,부패 같은 문제가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 상하이와 난징을 거쳐 대학생들은 모두 비슷하게 말했다. 정치구조 개혁에 대해 무관심하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상부구조는 외려 시장경제에 의해 떠받쳐져 공고해진 것처럼 보인다..


첫 출발지 상하이부터 겉만 보는 여행이 아니다. 민족이나 혁명 같은 담론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된 건 아닌지. 거리를 구경하면서 툭툭 던지는 이야기에 독자도 생각이 많아진다. 오래된 도시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가 역사를 넘나드는 길이다.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중첩되고 융합되고 분기된 역사의 흔적이 나타난다. 길 자체가 2500여년 연대표이다. 쑤저우는 그동안 한 번도 단절된 적 없이 지속돼온 도시이기 때문.. "

길의 이름 자체가 역사다. 반 만년 역사를 얘기해도, 고작 600년의 한양 서울에 사는 입장에서 2500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란 또 상상 속 세계. 장쑤성 최고의 명문고교 쑤저우고교는 1000년 됐다고. 그 학교를 기어이 찾아가는 여행자 덕에 호기심을 채운다. 2002년 상하이와 그 인근 항주, 소주(쑤저우) 구경이 중국을 본 전부인 내게 그 도시는 그저 아름답고 오래된 정원으로만 기억되는데.


"수나라는 귀족들과 권력을 나눠갖기 싫어 과거제도를 개시. 평민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문제는 출제범위. 무려 대학 논어 중용 맹자의 사서와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역경의 오경을 망라했다. 주희의 해설집 '사서집주' 이후 사서가 성문종합영어 같은 텍스트.. 1300년간 같은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 발전할리 없다. 온고溫故만 있고 지신知新은 없었다. 명청시대 팔고문 시험은 경전보다는 문장 형식을 짜맞추는 시합으로 변질됐다. 최근 공무원시험은 법률 중문 수학 추리 정치 등 5과목에 문제해결능력 본다.."  (내 트윗 정리다보니 뚝뚝 끊기지만, 원문은 훨씬 친절하다)

동양사를 전공한 저자가 대학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신걸까, 혹은 그저 중국에 대한 몰입 덕분인가. 역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유익하다. 과거제도 자체가 평민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나라 고시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결국, 같은 텍스트만 죽어라 외우는 것도 닮았다. 현대의 공무원 시험 중 '추리'라는게 대체 뭔지 좀 더 궁금하다. 논리적 사고 같은걸까.


"중국은 탄성이 강하다. 아편전쟁서 영국에 항복한뒤 공산당이 중국 접수할때까지 백년 외세에 시달렸다. 나태했고 무력했고 부패했다. 스스로를 불신했다. 그런데 100년은 시련도 아니라고. 춘추전국시대 등 몇백년 전란. 시련뒤 중국은 더 강해졌다.."

중국이란 나라는 경외감을 부른다. 어쩌면 옆 나라라서 우리가 누린 운도 있겠지. 100년 시련에서 주저앉는 경우도 훨씬 많을텐데, 궁극적으로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다. 문소영 선배가 명저 <못난 조선>에서 중국 역사를 언급한 한 대목이 떠올랐다.


"국사학자들이 술자리에서는 "조선은 임진왜란이나 늦어도 병자호란 때 망했어야 했다"는 말이 나온다. 조선은 500년 넘게 왕조를 이어간 세계적으로 드문 왕조였다. 하지만 백성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편안하게 살게 했느냐는 의미에서 보면 성공적인 왕조는 아니었다. 중국의 왕조는 대체적으로 200~300년간 이어졌다. 새 왕조가 들어서면 전 왕조가 망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고, 국가를 일신했다.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제도개혁을 통해 나라를 혁신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이 500여 년 지속되자 혁신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닐까?"  <못난 조선>에서 인용


역사와 문명 속 개인의 삶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끝없이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이든 개혁이든 무슨 이름이 됐든 대국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게 가장 중한 건 아니다. 역사란 개인에게는 대체로 무심하거나 잔인하다. 개인은 설혹 황제라 하더라도 마냥 권세를 누리지는 못한다.

묘지를 좋은데 쓴다고 해서 후손이 잘되는 건 아닌듯. 명효릉 기념관에는 황제들의 수명이 기록돼 있다. 주원장 71세 등을 제외하면 12명의 수명은 26,48,38,30,41..23,35 황제들은 당시 한낱 필부처럼 마흔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 대목에서 슬며시 저걸 다 메모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피식. 끈질기고 평범한 삶이 언제나 더 소중하다 싶기도 하고.

59~61년 대기근 아사자는 최소 2천만명, 최대 5천만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신양에서는 1년간 800만 인구 중 107만명이..원인은 우파 타도운동이었다. 생산량 초과 달성 못하면 우파라 낙인찍힐 수 있어 당서기는 생산량을 두배 허위 보고..

평범한 삶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아사자가 수천만명이란 것 역시 대륙의 스케일인가. 하기야 스케일은 곳곳에서 목격 한다. 방법은 간단한데 구현이 어려운 종류의 일처럼 중국이 잘하는 일은 없다. 북쪽 오랑캐 침입 막기 위해 성벽을 쌓으라 한마디 하면 만리장성. 남쪽 풍부한 곡식을 북으로 운송? 길이 1700km 징항대운하가 남북 종단. 수백만명을 수십년 동원가능

문명이란 대개 개미들의 삶을 갈아넣은 결과물. 그렇게 발전해온게 인류다. 당대의 평가와 역사가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중국을 사랑했으나 중국에게 버림받았던 펄 벅의 삶도 다시 보게 되고. 선교사였던 펄 벅 부친의 부질없는 전도를 뒤로 하고, 오늘날 자발적으로 유행처럼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풍속도 새삼스럽다. 저자 말대로.. 이질적 문화의 충돌과 융합은 놀랍다..

펄벅은 정작 중국서 문화적 제국주의자로 버림받았고 사후 재평가...역사의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함포의 지원받은 복음 전파는 49년 공산정권 수립으로 끝장났지만 최근 중국인들은 자발적으로 기독교.이질적 문화의 충돌과 융합은 항상 놀랍다.


여행기에 흔들리고 매혹된다


느낌 닿는 구절만 트윗으로 정리했다..  코멘트 조금만 덧붙인다.


정화는 명나라 영락제의 명에 따라 15세기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5만km 넘게 지구를 탐험한 인물이다. 인류의 달 착륙에 비견되는 무동력시대의 위대한 성취. 4200km를 탐험하는 내 여정은 초라하지만 진취적인 기백만큼은 그를 닮고 싶었다.  (무동력시대에 5만km 를 탐험한 이와 하이퍼루프에다 자율주행차까지 나오는 시대에 무동력 자전거로 만 리를 달린건 사실 닮았다. 다르게 상상하고 꿈꾸는 이들.  초라하다고 낮추면 여행기에 설레이는 독자는 어쩌라고요.)


그들의 눈에서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전거의 힘이다. 자전거는 무력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놓게 하는 힘이 있다..자전거 여행은 사회과학 특히 문화인류학에서 쓰는 방법론인 참여관찰의 간이 버전 정도의 자격은 있는 것 같다. (이런 시각 좋다. 무력하다고 표현하기 아까운 소박한 힘.)


같은 길을 가도 사람마다 다 느낌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노선을 누가 정했느냐 여부. 세찬 바람 부는 험한 길이라도 스스로 선택했다면 감수하기 쉬울. 인생은 天바람 地땅 人사람의 합일. 그 체험학습이 자전거여행.아무리 험해도 인생에 비할.. (아이고, 140자의 한계ㅋ 그러나 길을 선택하는 이의 의지, 그 마음에 따라 삶의 여정 자체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직접 대륙을 두 다리로 여행하지 않지만, 이런 한 마디에 흔들리기 위해 여행기를 본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가보지 않은 쪽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여행을 길게 하다보면 어떤 나쁜 길도 항상 나쁘지만은 않고 좋은 길도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좋은 길과 나쁜 길은 이어져 있다. (최형두 선배가 마침 신년 인사로 이 구절을 택했다. 마침 책을 읽을 즈음이라 반갑기도 했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구절이다. 어제 민병두 선배 부친상 문상 갔다가 최 선배를 만나 다시 이 구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


어떤 일이든 결국 흘러간다. 황허는 수없이 꺽어지고 부서지고 휘돌지만 점점 더 넓어져서 바다로 흘러간다. 나는 그런가? 나이가 들수록 넓어지고 있는가? 실패와 좌절조차도 발 딛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삶의 지반으로 꾹꾹 다지고 있는가? (이런 구절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나라서, 그 정도는 철 들어서 다행이라고 잠시 자뻑...ㅎ)


알고 보니 두보의 묘임을 주장하는 여덟 곳 중 하나. 두보는 서로 모시겠다고 해서 묘가 사방에 생겨났지만, 조조는 강탈당하지 않으려 묘를 숨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찾고있다. 권력자는 당대를 살고 시인은 천 년을 산다. 간웅은 죽음에도 속이나니  권력자는 당대를 살고 시인은 천 년을 산다....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은 될까. 천 년을 욕심내지는 않지만 인생의 무게중심을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


4200km 만 리의 장정이 될거라 예측했던 중국 자전거 여행은 4873km로 마무리.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게 여행이고 인생이다. 떠나는 자의 용기를 갖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과 느낌을 이렇게 간접 체험할 만큼 운이 좋았다. 글로 남겨주셔서 감사. 굳이 고백하자면, 저자를 보쓰로 모시면서 배울 기회도 갖다니 진짜 운이 좋았다. 이런 운까지 따라주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겠지만, 최소한 책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중국은 그새 또 많이 변하고 있지만, 일독을 추천한다.


PS. 부작용이 하나 있는데.. 갑자기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뭉개뭉개. 책에 나오는 국수 기행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식탐도 부글부글..

PS2. 진지가 병인 나는 진지하게 리뷰를 남겼지만, 허허실실 저자의 삽질과 나름 유머가 양념처럼 맛나는 책이라는 점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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