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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5. 2017

<뜬 세상에 살기에> 김승옥의 40년 전 수필

책 받자마자.. 이렇게 자랑했던 바로 그 책이다.

미안하지만, 링크 눌러보셔야.. 배만 아프실 겁니다. 눈밝은 508명의 주문만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진기행이라니. 사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인생 지적 허영이 최고조로 치닫던 여학생 시절에 읽었다는 것 외에 모르겠어요. 그의 문장이 얼마나 아름답고 단단한지 술자리에서 말씀하시던 분이 아녔다면 관심 안 가졌을 수도 있어요. 
작년 말 송년 모임에서 L님이 슬쩍 쥐어주시던 핸드크림이 아녔다면 또 금방 잊었을텐데. 순간 그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고마워서 L님에게 마음 갚을 길을 고민했고. 문득 글 좋아하는 님에게 이걸 선물해야겠다 그 생각 뿐이었어요. 그리고 신나서 주문 결제 한 뒤에.. 음?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저 않고 제 것도 주문했죠.
주문 후 생산인 메이커스는 까먹고 있을 때 또 이렇게 선물처럼 도착합니다. 그저 제가 구입한 물건인데 보니까 좀 설레이고. 
복각본을 펼쳐보니...아... 음...  제가 작은 세로 글씨를 다시 읽기엔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40년 만에 작가님이 코멘트까지 덧붙여 낸 새 버전도 있어서 다행. 네네. 오늘도 자랑질 한 껀. 인생 뭐 있나요. 이런 자랑질 하는 재미로 살아야죠^^


1977년 수필집. 40년 전의 글인데 그냥 편하게 다가온다. 앞 부분에는 글 쓰는 이 특유의 '엄살'이 많다. 문장으로 일가를 이뤘다는 평의 작가도 이렇듯 글이 어렵다. 별로 새롭지 않을까봐, 남들 다 쓴 얘기일까봐 내놓기 어려운 고민들.


얄팍한 지적 만족감이나 주고 끝나버리고 말 소설을 열심히 구상하는 어리석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흔하다..이 정도 생각이나 얘기는 '소설계'에도 나온다는 자기비하 느낌과 '이런 얘기를 벌써 다른 사람들이 써버린건 아닐까'하는 강박..


검열 때문에도 힘들다는 이야기는 70년대 시대상. 70년대의 이야기.

이런 글을 쓰다가 당국에 걸리는게 아닐까 하는, 참으로 내놓고 얘기할 수 없는 걱정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귀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 생각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약해졌을 때 귀신을 생각하면 공포를 느끼듯


대표작 <무진기행>의 비하인드 스토리. 다들 공개를 말렸다고. 망작이라 생각했으나 출판사 약속 때문에 '쓰긴 썼다, 그러나 제발 싣지 말아달라'고 보냈단다... 반전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지만. 대단한 반전.. 


무진기행..김현 최하림에게 강평을 청했더니 "별로 좋은것 같지 않다. 발표하지 않는 게 좋을것 같다"고. 나 역시 몹시 미심쩍고 탐탁치 않던 차에 그만 찢어버릴 작정이었으나 약속한 기일 안에 원고를 써보긴 했다는 표시는 해야할것 같아서...

뜻밖에도 독자들에 의해 내 대표작처럼 되어버렸다..아마도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가장 순수한 슬픔만을 가지고 쓴데서..나 자신은 미처 몰라본 어떤 호소력을 우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갖게 한게 아닌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무진기행> 발표를 말렸다는 친구, 김현과 최하림은 그의 수필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1962년 세 사람은 <산문시대>라는 문학 동인지 창간호를 만들었고.. 또다른 동인 염무웅은 후일 백낙청과 <창작과 비평>을, 김현, 김치수는 <문학과 지성>을 이끈다. 불문과 1년 후배 김화영에게 문리대 학생신문 <새세대> 문예면을 물려준 사연, 이청준과의 교류 등 평범한 사연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당대의 거인들. <새세대> 사무실 안에 야전침대 놓고 자취하며 '거지 중의 거지' 대접을 받던 시절 '거지' 동료들인 영화감독 하길종, 시인 김지하..  이른바, 그 시절 서울대 문리대 사람들은 이후 이 나라의 문학계를 움직이는 거인이 된다는 걸, 70년대 저 글을 쓸 때는 모르셨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그 때 사연들이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보인다..


최근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에 열광했던 점 하나가.. 훌륭한 동료들과 지적인 탐구를 함께 하는 생애 자체가 아름답다는 느낌. 김승옥 작가의 리즈 시절도 그 느낌에서 닮았다. 다만 감탄만 할 건 아닌게, 그 시대의 거인들은 너무 오래 문학계를 지배하셨구나 싶은 생각도. 이것은 70대가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선배들을 딛고 일어선 후배들이 점점 줄어든게 아닐까 하는 의심. 그 다음 주도권은 386이 넘겨받았다. 그 중간중간 낀 세대들도 더 날아보고 싶었을텐데. 그러나 당대엔 누가 알랴. 문학이든 무엇이든 풍덩 뛰어들어 뭔가를 만들어내고 모색하는 모든 이들의 현재가 나중엔 역사가 될텐데.


페북에 김승옥 수필집을 자랑하고 났더니 친구가 답글을 남겼다. "김승옥은 노년이 너무 실망스러워요. 무진기행 같은 작품은 정말 너무 주옥같은데 말이죠." 페친 최상국님은 "20대 초반 내 정신을 지배했던 김승옥. 이제는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싶은 김승옥"이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검색했는데 이런 글만 찾았다.

젠더 감수성에 대해서는, 이 수필집 말미에 가서도 이른바 처녀 얘기라든지, 당혹스러운 내용들이 좀 있다. 40년 전 문학 권력으로 떠오르던 남자 문인에게 뭘 바랄까 싶기도 하고. 그가 살던 시대와 그 이후의 시간들, 그리고 현재를 차례로 생각해본다. 김승옥의 노년은.. 더 찾아보지 않으련다. 굳이 <무진기행>을 다시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래된 책을, 사라진 책을 복각본과 함께 이렇게 주문 후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건.. 고마운 시도다. 어찌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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