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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7. 2017

<슈독> 달리기 확신범의 좌충우돌 나이키 창업기


막 MBA를 마친 24살 청년은 아버지를 설득했다. 수업시간에 발표까지 한 이야기. 일본이 신발도 잘 만들 것 같으니 수입해오겠다, 사업에 돈을 좀 대달라. 그리고 일본에 직접 가보는 김에 여행 좀 하고 오겠다고 4개월간 세계여행을 했다..1962년 아직 일본과는 적군의 감정이 사그러들지 않았을 때고, 아시아는 겁나 먼 동네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원래 달리기를 미친 듯이 좋아했고, 사람들이 달리기를 더 좋아했으면 싶었고, 신발이 중요했다. 엉뚱한 모든 도전의 출발은 '확신범'에 가까운 신념.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나이키 창업자가 창업 반 세기만에 썼다는 자서전. 이게 신화의 시작이란 걸 알고 봤으니 망정이지 그의 도전기는 좌충우돌 또라이 스토리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사연들이 넘친다는 얘기다.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 본격 읽기 시작해 그날 밤 1시 반쯤 다 읽었다. 550쪽? 어느 틈에 끝나더라.


1962년 그날 새벽 나는 나에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멈추지 말자...


정말 남들이 뭐라 하든, 상식이든 아니든 그냥 계속 부딪치고 달렸다. 책은 1962년 창업부터 고군분투한 1980년까지의 일이다.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뮤추얼펀드는 좀 더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단순히 제품을 파는게 아니기 때문. 나에겐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 맞다, 의미 있다, 이런 믿음이 일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확신범'이란 단어는 내가 망중립성 공부할 때 많이 썼는데ㅎㅎ 방향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달리게 된다. 확신범이 될 때, 뭔가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달리기에 대한 필 나이트의 믿음은 대단했다. 그리고 꼭 그런 이들만 모였다.  1965년 달리기는 스포츠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운동장 아닌 곳에서 3마일을 달리는건 미친 짓. 즐거움을 위한, 운동을 위한, 엔돌핀을 위한 달리기는 생각지도 못했다. 운동장 밖에서 달리면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말이나 타세요" 맥주 던지고 ... 이런 시절에 운동화에 미친 사람들이 모이니 일은 매번 우연이 필연이 된다. 저자의 코치이자 평생 멘토 같은 바우어만 코치는 어느 일요일, 아침 먹다가 와플 틀의 격자무늬 패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 틀에 신발 밑창을 찍어내려 시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히트상품의 배경이다.

슈독은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한다고..사람은 하루에 7500보,평생 2억7400만보를 걷는다. 지구 여섯바퀴. 슈독은 인류의 발이 지구 표면과 접촉하는 경첩을 다듬는게 아니라 인류를 이어주기 위한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한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자신의 일과 소명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니.

항공우주 공학자 출신의 괴짜가 "러닝화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하자, 필은 처음에 "왜요? 농담이시죠?"라고 받았다. 에어슈즈라니 우주 유영에나 쓰일런가. 그렇지만 곧바로 신어보고 달려봤다. 직접 달린 후에 그는 대박을 예감했다. 결국 그는 성공한 달리기 덕후.


나이키 창업자라는 자체의 아우라가 대단하고, 세계적 기업인 만큼 초창기 에피소드는 기절할 지경이다. 사업이 언제 망할지 몰라 올인하지도 못하고 회계사로 돈 벌면서 버틴 건 둘째 치고..


"동적인 느낌을 표현해주세요" 내가 너무 모호하게 말해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조차도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2주 뒤..테마는 뚱뚱하게 생긴 번개라고 할까? 감사하며 캐럴린에게 35달러 수표를 주며 돌려보냈다


나이키 로고가 나온 사연이다.


이제 내 맘에 쏙 들지 않는 로고와 함께..브랜드 이름이 필요했다.수십 가지 아이디어 중 유력한 후보는 팰콘, 디멘션 식스.. 우델이 말했다. 제안이 하나 더 들어왔어. 꿈속에 새로운 이름이 나타났대. 그게 뭔데? 나이키..승리의 여신 이름이다


필 나이트 본인이 마음에 들어했던 '디멘션 식스'로 창업했다면? 나이키가 꿈에서 계시받은 이름이라고? 그는 당초 <블루 리본>이라는 회사를 즉흥적으로 차리고, 아니 차렸다기보다 차렸다고 뻥을 치면서 일본 회사에게 미국 수입 총판을 맡겨달라고 설득했다.


창업자 뿐 아니고 창업 공신들의 캐릭터도 좀 남다르다. 남들이 보면 루저로 보일 수도 있고, 기인이거나 괴짜가 많았다.


나는 우리가 막강한 팀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대책 없는 오합지졸 같았을것. 우리 중 대다수가 오리건 출신. 자신이 시골뜨기 혹은 잡초 부스러기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직면했던 문제들은 하나같이 심각하고 극복하기 어려웠다. 3000마일씩 서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쉽지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이면 늘 웃었다. 때로 나는 박장대소하며 둘러보았다. 우정, 의리, 감사..아니 사랑이었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혹은 어떤 사람이라도 때로 해학과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곳에서 지나간 의제를 허물없이 다시 꺼낼 수 있는 분위기..이게 버트페이스Buttface 라고. 나이키의 정신, 미션, 기질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이라고 한다. 뭔가 거침 없이 사고를 치면서, 혹은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도 두고두고 다시 꺼내들고 풀어보는 방식. 그런데 읽다보면.. 이게 누워서 침뱉는 건지, 자랑인지 자학인지 좀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다. 어이 없는 상황 전개가 다 아름다운 사연이 되는 느낌도 든다.

사실 일본 운동화 수입하다가, 총판에서 짤릴 위기에 처하자 몰래 서류를 훔쳐보고, 다른 공장을 섭외해 얼렁뚱땅 로고와 브랜드 만든게 나이키. 덕분에 일본 기업과 소송에 휘말려 악전고투.. 쓸데 없이 광고는 왜? 하다가 광고도 신경쓰게 되고. 2500만 달러 관세를 물게 되자, 세무 공무원을 찾아가서 "히틀러의 아버지가 세관원이었다는 사실을 아세요?"라고 한 판 붙다가..결국 지역 상원위원에게 로비해서 세금 깍고..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온갖 접대에 빽을 동원해 들어가고. 매번 돌려막기 마냥 대출로 버티며 돈이 없어서 쩔쩔 매는데 실상 금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잘도 버텼다. 그래도 성공하니 이 모든게 전설.


초창기 얘기를 풀어내던 저자는 마지막에 후일담 식의 코멘트를 이어나간다. 나이키가 악명을 떨쳤던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짧게 언급된다.


나이키 해외공장 비방 보도 이후 10년에 걸쳐 우리는 회사를 다시 만드는 기회로 활용했다. 예컨대 갑피와 밑창을 결합하는 러버룸의 발암물질 유독가스..우리는 유독가스를 배출 않는 수성접착제를 발명,발암물질 97%를 제거. 경쟁기업에도 제공했다


나이키는 노동력 착취 현장이라는 비난과 이로 인한 위기에서 벗어난뒤 Girl Effect 설립했다. 가난한 국가에서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자 했다. UN, 기업, 정부 기관과 함께 소녀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에 수천만 달러를 썼다.


하루 6센트에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1996년 '라이프'지의 표지에 실린 뒤, 나이키는 시가총액 절반을 날렸다. 이후 저런 사회공헌으로 돌파했다. 노력하고 있다는 건 인정. 대단한 기업이란 것도 인정. 인습을 타파하려는 사람,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 반란을 꾀하는 사람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이들은 항상 자기 등에 과녁을 달고 다닌다. 승리할수록 이 과녁은 점점 더 커진다. 이는 나 한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다. 저자는 과녁으로서 공격받는 것에 대해 대범한 측면이 있다. 웬만한 시련과 비판에 꿈쩍 않은게 비결일 수도 있고, 제3세계 노동에 대한 무심함일 수도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싸게 만든 신발을 수입하던 그는 대만, 한국을 거쳐 중국, 파키스탄까지 공장을 옮겨다니며 성공했으니.

그래도 악착 같이 열정 하나로 밀어붙인 그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일에 미치다보니 가족들에게 부족했고, 결국 그로 인한 상처까지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잘한 일, 못한 일, 아쉬운 일.. 돌아보면 누군들 다를까.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사기꾼이다.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 포기하고 다른 걸 추구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기는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서는 안된다.


결코 중단하지 않는 기업가. 나이키는 시가총액 100조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는 나이 일흔에 이제 뭘할까.. 소설을 쓰시기로 했단다. CEO 그만둔 뒤, 스탠포드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셨다고.. ㅎㅎ 이런 대단한 할배. 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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