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미래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최초의 전기차는 1837년. 19세기 말 전기차 택시들이 런던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지금 완전히 잊혀졌다..제때를 만나는 아이디어. 알고보면 혁신은 오래된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경우가 놀랄만큼 많다
독서모임 책을 고르느라, 서점에서 온갖 책을 펼쳐보는데 저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최초의 전기차가 19세기 물건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 여기에 한 구절 더 만났다.
테슬라는 1926년에 50년 후에 대한 질문을 받자, 무선기술이 완벽해지면 TV, 전화기로 수천 km 떨어져 서로 보고 듣게 될거라 전망했단다. 와.. 스마트폰을 예측하다니!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 조종하는 비행기도 예측했다. 드론이다. 그리고 국경이 사라지고 다양한 인종이 조화롭게 살아갈 세상을 예견했다는데, 저자가 말한다. 셋 중 둘 맞췄으면 대단한거 아니냐고. 사실 세번째 전망도 혹시 근미래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두근.
심지어 잘생긴 Steven Poole. 1972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석학으로,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 유수의 매체에서.... 그래, 잘났다. 기자들의 글쓰기는 쉽게 읽혀서 좋아하는 편이라 바로 결정했다.
책은 1) 명제, 아이디어는 떠올리는게 아니라 (옛 것에서) 발견하는 것 2)반명제, 발견을 맹신하기보다 경계할 것 3) 예측.. 그래서? .. 뭐 이런 구조다. 첫번째 '명제' 부분을 비롯해 정말 사례들이 훌륭하다. 일종의 사례 모음집 같아서 어디서든 다시 써먹기 좋은 느낌. 다만 '오래된 것'에서 찾은 사례만 다 모아놓거나, '하늘 아래 진짜 새로운 것'만, '말도 안되는데 좀비처럼 살아나는 아이디어' 등을 잘 정리하다보니, 그렇게 '분류'한게 전부일까 싶기도.
개사철쑥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연구하던 중국 약리학자 투유유는 4세기에 쓰인 책에서 치료법을 찾았다. 그동안 약쑥을 끓였던 그녀는 활성 성분을 파괴한 셈이었고, 책에 나온대로 약쑥을 그냥 물에 담궜더니 성공! 강력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공로로 2015년 노벨의학상 받은 얘기다.
LSD는 1938년 호흡기 약물을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 개발 중, 남성 피실험자들이 약을 반납하지 않았다나 뭐래나.
대규모 선제공격으로 상대 섬멸 주장한 폰 노이만과 전술적 목표 파괴가 아니라 담력과 과시로 핵전쟁을 아예 회피하라고 권고한 셸링. 셀링의 '게임이론'은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이런 얘기들에서 언급되는 또다른 사례는 '손자병법'. 결국 그 안에 답이 있더라는게 서양인들에게 신기한 모양인데, 우린 동양 고전의 힘을 다 알고 있지 않았던가. (이 와중에 합리적 계산과 동떨어진 사례로 북핵 실험이 언급되다니ㅠ)
모든 부문에서 증거와 빅데이터를 토대로 삼는 오늘날엔 '경험적'이어야 믿을만하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우주의 이해를 이해한 건 놀라운 일. 가장 성공한 '탁상 공상'은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이라는 주장이다.
"놀랍다! 만물이 지성을 지녔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2500년 전 이렇게 감탄했는데, 이게 바로 이른바 '범심론(汎心論)'. 오랫동안 헛소리 취급을 받았으나 관련 새 논문들이 옥스퍼드대학에서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획득 형질 중 일부는 유전될 수 있다"는 일부 내용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도 알고보면 수십년 전에 나온 내용이 'AI 겨울'에 묻혀져 있다가, 대용량 컴퓨팅 능력과 빅데이터 덕분에 다시 살아난 아이디어가 아니던가. 과거의 이론과 아이디어에서 '빠진 조각'을 맞추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할까.
옳다고 생각했으나 틀린 얘기도 있다. 사람의 혀가 부위 별로 다른 맛을 감지, 단맛은 끝에서, 짠맛과 신맛은 옆에서 느낀다고 알았는데, 헛소리란다. 1901년 생리학 교재 오역 탓이라고ㅠ MMR 백신이 자폐증을 초래한다는 것도 근거 없는 얘기지만 여전히 백신을 꺼리도록 만들고 있다. 저명한 '기후 회의론자들'은 석유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화석연료와 지구온난화 여부를 둘러싸고 과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양 프레임을 만들었다. 실제 그런 논쟁은 없으며, 논쟁이 있다는 주장만 성공했다는게 저자의 지적이다. 깨어나보니 낯선 방 욕실에 있었고, 신장이 제거됐다는 메모를 발견했다고? 이런 장기매매 일화는 중국에서 벌어지는줄 의심했더니, 일반적 도시전설인 모양. 저자는 "이런 도시전설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우리에게 단순한 설명을 좋아하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모론은 해롭다.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법을 바꾸고,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미국의 일부 지역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반전. 미국 정부가 모두를 감시한다는 음모론 역시 스노든 이전에는 음모론일 뿐이었으나,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1875년 막스 플랑크는 교사로부터 "이미 거의 모든 사실이 발견되어서 남은 일이라고는 소수의 중요치 않은 구멍을 메우는 것뿐"이니 물리학과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 조언을 무시했고, 1900년 복사 현상 논문으로 양자물리학 혁명을 이끌었다.
워렌 버핏이 시도한 가치 투자는 90년대까지 주류 금융 이론가로부터 웃음거리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모두가 가치투자 한 길로 달렸다면, 아마 성공도 못했을 터. 버핏의 성공은 아이디어 시장의 변방에서 소수의견을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살아있는 동안 이런 주제들에 완전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를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주제를 둘러싼 어둠은 어쩌면 지적 활동과 노력을 끝없이 부추기기 위한 것"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말이라고. "생각의 역사는 틀린 이론이 옳은 이론으로 대체되는 단선적 배열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보다 영감의 불씨가 수세기 동안 덮여 있다가 누군가 다시 찾아서 조심스레 불꽃으로 키워내는 어둡고 복잡한 망과 비슷하다. 틀리는건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맞춤형 아기로 지능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우생학은 나치 이후 끔찍하게 생각해왔다. 부자의 자녀는 갈수록 용모와 지능이 개선되는 반면, 빈자의 자녀는 유전적 복권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우생학적 개입은 평등하지 않을 것이고, '금발에 파란 눈'이 더 우월하다는 기준 자체가 논쟁적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생학에 대해 마냥 금기로만 둘 것인가. 이젠 그게 실행 단계로 와버렸다. 최소한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일지도. AI가 그렇듯, 인류의 지적 탐구는 도약을 위해 철학적 성찰이 더 절실한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20세기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실업 복지와 주택, 장애 복지, 기타 모든 복지 실행 과정에 수반되는 관료적 낭비를 일소한다고 주창했다고 한다. 어쩌면 효율성을 앞세우는 엄격한 우파 주장이 더 많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저자 주장에 동의한다. 복지 재원이 소득세나 국민의료보험이어서 근본적으로 약간 덜 가난한 사람들이 낸 세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는데 실질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수긍한다. 이때문에 저급한 매체들은 부정수급자 등 어두운 면을 부각, 분노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복지가 이윤, 지대나 상속 같은 불로소득에서 나온다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재선을 앞세우는 전문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요 정당 정책 범위는 대단히 협소하다. 전문 정치계급은 일반적 직장생활 경험이 거의 혹은 전혀 없으며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신경쓴다. 부유한 후원자들 달래며.
직업 정치인들이 아니라 임의로 선출한 시민들에게 국정을 맡기면? 배심원들은 다른 시민의 운명을 결정할때 증거를 토대로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
난데 없이 아테네의 추첨제도 불려왔다. 정치도 추첨으로 한다면? 어쩌면 다수가 멍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현행 선출직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저자의 아이디어를 그냥 흘려보내기 어렵다.
죽어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LSD를 투여하면 안될까? 올더스 헉슬리는 죽음을 영적인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 불치병 환자에게 LSD 투여하는 실험을 제안했고, 실제 임종을 앞두고 LSD 처방을 받았단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죽음이었다고 아내가 증언했다. 책에 나오는 온갖 제안 중 솔깃한 대목.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도 해법이 있을 수 있다면. 독서모임 발제에서 두번째 대목이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진 부분이다.
독서모임 돌려막기 전략에 따라, 책을 사내 독서모임 '임팩트 북리뷰'에도 추천했고, 발제를 맡아주신 Dan 덕분에 사실 나의 발제에 (비록 편집당했지만) 'Thanks to Dan'이라는 타이틀도 붙였다. 뼛속까지 조직과 인사 생각하는 Dan은 이런 책을 읽고도 일상에서, 조직에서 리씽크하는 얘기를 꺼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다.
Stig 는 에버노트 유료버전을 통해 '리씽크'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했다. 일기를 쓰면, 과거 기록 중 유사 키워드가 있는 내용을 제시해주는 방식. 예전의 내 생각을 오늘의 내 생각과 이어붙이면서 '빠진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나 역시 '남은게 책 밖에 없다'며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적자 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마음의 적자. 예전 기록에서 다양한 문제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리씽크의 방법으로 '시를 읽는다'는 성은님의 사례도 인상적이었다.
책 내용 중 한 구절 적어놓았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아침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오늘도 고마움을 모르고 폭력적이며 기만적이고 질투심 많고 몰인정한 사람들을 만날 것...누구도 나를 잘못된 일로 끌어들이지 못할 것. 또 나는 가족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 우리는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협력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할 때, 훨씬 남는게 많은 종류다. 사람들과 대화하며 문득 떠오르는 '빠진 조각'으로 나는 '리씽크'를 시도한다.
혹 트레바리 회원이라면, 여기 독후감 모음.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