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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01. 2018

<유한계급론> 노동 대신 잉여와 사치의 과시

일찌기 제 '지적 허영'을 인정하고, 독서와 리뷰도 그 일환이라고 했죠. 그저 웃자고 떠들었지만, 지적 허영을 부인할 수는 없더라고요.  ‘가치 있거나 우아하거나 결백한 삶’을 위해 ‘여가’를 과시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의 '과시'는 지적인 활동 어딘가에 닿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 지인들과 서로 지적 허영을 나누며 놀기도 하죠. 그런데 이것이 약탈과 지배본능, 혹은 다른 과시로 이어지느냐? 글쎄요.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계급에게는 그런게 당연한 본능으로 해석되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와 여자에게는 교육이 필요없다고 한 가르침은 꽤 오래갔나 봅니다. 베블런도 남성 중심의 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사이 참정권을 얻고 교육권을 얻고, 급기야 '진짜 평등'을 요구하는 '요즘 여자' 입장에서 유한계급론도 다시 씌여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요즘 이슈'인 젠더 감수성을 갖고 보면, 베블런의 주장들에 한 편 수긍하면서, 한 편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재화를 낭비하는 것이 과연 즐거운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에 100년 전의 이런 주장은 흥미롭습니다만. 고전은 그것을 깨고 재구성해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한계급론>이라니, 제가 이 책을 이 나이에, 이 상황에 읽을지 몰랐습니다.  <국부론>에 이어 역시 독서모임 책. 위에 정리한 저 정도 400자 썰을 풀고, 모임에 가려다가 결국 실패했습니다. 마감 내 독후감을 못 올렸어요.. 끼적인 글을 올리기 주저하다가 그만. 그리고 사실 완독도 못했습니다. 간신히 절반 읽었습니다. 유한계급의 기원, 금력과시경쟁,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금력, 취미생활을 규정하는 금력, 금력과시문화를 표현하는 의복, 생산노동을 면제받는 유한계급과 보수주의 까지 봤고요. 나머지 9장 고대적 특성의 보존 부터 14장 '금력과시문화를 표현하는 고등학문'등은 못봤어요..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읽는 속도도 떨어지고..ㅠ. 읽고 싶은 다른 책이 쌓이고 있어서ㅠ  

베블런 효과, 들어만 본 정도? 이렇게 마주할지 몰랐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허영심에 의해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수록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를 말합니다. 베블런은 19세기 중반에 활약했고.. 첫 저작인 이 책으로 떴다고 합니다. "산업화된 제도가 사람들에게 근면, 효율, 협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산업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부를 과시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는 주장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니, 미국도 흥미롭습니다.

베블런이 정의하는 유한계급, the Leisure Class는 '한가롭고 비생산적인 상류계급'입니다.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 등을 주로 했다고요.. 노동은 '지루하고 힘겨운 일', '가난을 증명하는 수치스러운 증거', 아랫것들이 하는 것이고요. '부를 소유하면 명예'를 얻기 때문에 부를 추구했다니.. 세인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사는 명예의 표시로 부를 정의하는데, 부와 명예가 원래 한 묶음 맞군요.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사려 깊은 남자들은 인간이 가치 있거나 우아하거나 결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정한 여가시간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당장 필요한 생산활동을 면제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해왔다.. 특유의 여가생활은 금력 곧 우월한 힘을 증명하는 가장 편리하고 결정적인 증거" 랍니다. 더군다나 예절과 관례 등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훌륭한 예절을 갖추는 데는 그만큼 많은 시간, 열성,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련된 취미, 예절, 생활습관은 "상류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용한 증거"라는 겁니다. 물건을 고르는 감식안조차 일종의 인증이라니, 제가 거의 모든 감식안 따위는 없는 인간이라는 건 박복한 노동계급이라는 반증일까요?

친정 아버지의 소유물이었다가 남편의 소유물이 되는 여성이 저급하고 비천한 일들을 면제받을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는 것도 결국 유한계급의 과시형 본능. 요즘 핫한 코르셋 얘기도 이 때 이미 나오는군요. "여성의 생활력을 저하시키고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불구자로 만들기에 충분한 의복", "자신을 귀하고 가녀린 귀부인으로 보이게 만들어 명성을 가져다주는" 것.
모든 종류의 체면치레가 다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분석한 학자가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각광 받았다는 사실이 저는 더 흥미롭습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은 보수적 계급, 일반적으로 절박한 경제적 사태들은 유한계급에게 직접 충격을 주지 못한다"며 "유한계급이 담당하는 임무는 진화의 운동을 지연시키고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규정합니다. 단순히 경제 질서나 체제에 관한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활습관, 사고습관과 관련된 모든 변화를 성가시게 여긴다." "보수주의는 갈수록 더 부유한 사람의 성격이 되고, 사회에서도 더욱 존경받는 요인이 됨으로써 명예롭거나 고상한 어떤 가치를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보수주의는 사회적 명성의 관점에서 비난당하지 않는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가피하게 져야 할 의무로 자리 잡는다"고요.

반면 혁신적인 것에 본질적으로 비천한 성격이 깃들여 있다니. 혁신이든 혁명이든, 뭔가 세상을 바꾸는 것에 보수적인 것은 계급 본성이라는 얘기를 19세기에 미국에서도 얘기했군요. 모든 개혁들이 "사회 구조를 뿌리부터 뒤흔들 것"이라거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것", "도덕성의 기반을 뒤엎어버릴 것", "삶을 각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난들을 받아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평화롭고 조용한 착취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것에 금력과시제도의 목표가 있었다는 겁니다. 

허영과 과시 없는 여유와 잉여, 과연 불가능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서야말로 제 허영인데, 그건 저를 채우려는 목적이 더 큰거지, 과시가 주 목적은 아니거든요. 정치와 예능, 스포츠가 모두 유한계급의 놀이였을 수는 있지만, 그런 분류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정치를 폄하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의 예능을 도매급으로 넘길 우려도 있다고 봅니다. 


고수들의 토론을 귀동냥했다면, 재미있었을텐데. 베블런 맛보기는 여기까지. 그냥 절반 읽은 감상문입다. 묵직한 담론을 읽기에 수준이 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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