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를 이 시대는 어떻게 재해석할까>
“자유주의를 죽인 것은 사회주의였다.”
이런 단정적 선언을 받아들이기에 지난 반세기, 인류는 많은 일을 겪었다. 영국은 하이에크가 염려하는대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다. 독일 나치즘의 뿌리가 사회주의라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이에크가 영향을 미친 레이건과 대처의 경제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지켜봤다.
유럽 현대사의 방향이 “개인의 일상에서 관습이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는 점,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자, 경제활동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져왔고, 과학의 경이로운 성장이 가능했다는 점에는 반박하지 않는다.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공감한 나같은 이라면,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에 개인에 대한 존중이 더 필요하다는걸 의심할 리 없지.
그러나 정부의 역할이란 건, 하이에크가 그 시대에 목격한 수준보다 많이 달라졌다. 북유럽식 사민주의란 건, 하이에크의 구상에서는 불가능한건가. 경쟁에 내맡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 괜찮을까. 하이에크를 이 시대에 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재정을 투입해 경제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야 하거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소득과 소비를 늘려야 하는 것조차 정부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일까. 모든 일에는 '정의'가 가장 중요할텐데,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는 100년이 넘도록 유효한 것인지. 하이에크에 대한 해석이 2차세계대전 이전과 이후,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2018년에는 어떻게 재해석될지. 책을 더 읽어보면, 이런 질문조차 다시 바뀔지.
솔직히, 책은 재미가 없었어요... 물론 어렵기도 했죠. 중간에 덮은 걸, 이렇게 변명하는군요.
그래도 토론은 재미있었고, 의외의 재미난 코멘트들이 오히려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 직후에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바쁘다고 넘겼더니 이미 일주일이 지났네요. 벌써 가물가물 합니다. 사실 완벽한 자유주의, 전체주의를 두부 자르듯 흑백으로 나누기도 쉽지 않고요.
저 시대에는 사회주의와 대적하기 위해, 보다 선명하게 나빠, 진짜 나빠, 다 나빠, 무조건 나빠, 나치즘도 알고보면 사회주의에서 나왔어, 뭐 이런 식으로 선동하는 게 아닌지, 좀 그런 느낌도 없지 않았어요. 선동을 위한 논리 아니냐, 그런데 그렇다고 성공한 선동이냐? 당대에 하이에크는 그다지 호평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레이건과 대처 시대에 재발견되고, 재해석되고, 바이블처럼 떠올랐지만.
무튼, 이날 토론에서 더 흥미로운 건 자유. liberty와 freedom 의 차이에 대한 얘기들. O님이 다음날까지 재정리 해주시기는 했는데. 뭔가 제약이나 제한받지 않을 권리로서의 자유와, 그냥 자유.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정리되지는 않네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마침 포용적 성장을 언급하며, 대통령님 말씀도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브리핑 옮겨놓습니다.
<'포용적 성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포용적 성장'에 대해 언급한데 이어 24일 참모들과 티타임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김의겸 대변인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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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침 티타임 때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서 전달을 해드리겠습니다.
아침에 조간에서 대통령께서 하신 ‘포용적 성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기사를 써주신 것은 고마운데, 그 의미가 대통령께서 쓰시는 의미하고 조금 달리 해석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대통령께서 쓰신 포용적 성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우선 제가 직접 옮겨드리겠습니다.
“포용적 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익스클루시브 그로스(exclusive growth)입니다. 배제적 성장입니다. 성장의 수혜층이 소수에 그치고 다수가 배제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배제적 성장으로는 경제가 지속될 수 없고, 성장에 걸림돌이 됩니다. 반대로 포용적 성장, 인클루시브 그로스(inclusive growth)는 두루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결과가 배분되고, 두루 혜택을 누리는 성장입니다. 포용적 성장은 큰 개념이고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그 포용적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있습니다. 애초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임금주도성장으로 명명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700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가 있습니다. 임금주도만으로는 다 포괄할 수가 없어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의 건의에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명명한 것입이다”
여기까지가 대통령께서 설명을 하신 것이고, 제가 나와서 조금 더 우리 수석님, 또 관련 분들에게 조금 취재를 더 했는데, 포용적 성장에 대한 정의가 있는데, 이것은 OECD에서 사용하거나 또는 사용하는 개념인데 어떻게 보면 학술적 정의라고 합니다.
1차적 분배, 임금 등을 통한 1차적 분배에서는 개입하지 않는다. 시장자유에 맡긴다. 그러나 2차적 분배, 세금이라든지, 재정, 연기금 이런 2차적 분배에서는 개입을 한다.그를 통한 소득재분배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학술적인 용어로서의 포용적 성장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상적인 개념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써온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2012년 첫 번째 대통령 출마 선언할 때, 그때 포용적인 성장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개념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빈자뿐만 아니라 남북문제까지도 포괄하는, 포괄적 적용되는 개념으로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을 썼고,그래서 포용적 성장은 상위개념이고, 그리고 하위개념으로서 아까 얘기했던 소득주도성장, 혁신경제, 공정경제 이런 것이 하위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정도입니다.
<질의응답>
Q. 기자
제가 쓴 기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왔던 기사를 보면 지금 말씀해 주신 것을 이해를 하더라도 결국은 포인트가 그거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1차적 분배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포용적 성장인데 지금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사실은 1차적 분배에 관여를 하는 거잖아요, 정부가. 그래서 1차적 분배에 관여를 안 하고 대신 세금이나 이런 것으로 2차적으로 관여를 하게 되면 기업들 부담이 덜해지기 때문에 정부 기조가 바뀐 거 아니냐는 것이 지금 대체로 언론사 논조인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면 해석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거든요.그러니까 어차피 포용적 성장이라는 것이 1차적 분배에 개입을 안 하는 정의라면, 지금 정부가 포용적 성장으로 간다면 최저임금이나 이런 부분은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거 어떻게 되는 건가요?
A. 대변인
일단 최저임금 문제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최저임금을 끌어올리겠다라고 하는 의지를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현재적인 조건과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에 대해서, 2020년까지 만 원이라고 하는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데 대해서 사과를 했던 것이고, 하지만 대통령께서도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문제의 방향, 원칙,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Q. 기자
정리하면 포용적 성장이지만 1차적 분배에 관여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 것이죠?
A. 대변인
지금 그러니까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지만,기자님이 얘기하시는 포용적 성장을 쓰는 것은 다시 학술적인 용어로서의 포용적 성장을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 개념이 아니라는 거예요, 일단. 그 개념이 아니다. 이 정도까지 합시다. (일동 웃음)
Q. 기자
정리를 하면 소득주도성장에 대치적 개념이나 혹은 그 반대나,
A. 대변인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Q. 기자
그게 아니고 그것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의 포용적 성장이다?
A. 대변인
네.
Q. 기자
그 개념을 아까 선거운동 할 때 쓰셨다고 했는데,취임 이후에 안 쓰다가 취임 이후에 쓰신 게 언제냐면 G20 가서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나, G20에 오셨을 때 잠깐 이게 우리 OECD의 포용적 성장이 제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경제와 (안 들림)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언급하신 것이 거의 유일하거든요. 지난 1년 이상 사용 안 하시다가 지금 시점에 그 말씀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뭐 때문인지.
A. 대변인
그것은 그렇게 볼 수 있죠. 이미 진도가 나간 것입니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로써 이야기를 하다가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각론으로 이미 들어갔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것이죠, 포용적 성장은.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오셨던 것이고, 그래서 G20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면 아마 그런 취지로 말씀을 하신 것일 겁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다른 나라 대통령 앞에서 소득주도성장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습니까, 그러니까 포용성장을 얘기를 했을 테고, 어제 말씀하신 그 문구 딱 한 번 쓰셨는데 제가 지금 적어오지는 않아서 제 기억에 의하면 문맥이 그렇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면서 바로 포용성장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와 어떤 등치되는 개념으로써, 등가의 개념으로써 포용적 성장을 쓴 것입니다.
Q. 기자
앞으로도 자주 쓰실 일은 없을 그런 표현인가요.
A. 대변인
지금은 훨씬 더 구체적인 각론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미 포용적 성장이라는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다시 돌아가서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Q. 기자
경제학자들이 그동안 윤종원 수석님 오시고 이제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이 다시 나왔을 때, 경제학자들이 대부분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은 개념이 다르다고 분류를 해왔거든요. 그러니까 포용적 성장은 이른바 공급 쪽 사이드를 여전히 중시하는 주류경제학에 가까운 면이 있고, 반면에 소득주도성장은 수요 쪽 사이드를 강조하는 면이 있어서 그 두 개가 등치돼서 계속 개념이 쓰여지는 것에 대해서 좀 이상하다는 지적들도 많이 해왔는데, 어제 대변인께서 그게 상위개념이고 그 하위의 각론이 소득주도성장이나 세 가지 이야기 하셨는데, 그 개념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A. 대변인
아까 제가 드린 말로 저는 답변이 됐다고 생각을 하는데, 일단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순수한 결정체로써의 개념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익스클루시브 그로스(exclusive growth)라고 하는, OECD에서 썼다면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정치적인 상황, 사회적인 현실에서 그 개념을 들여올 때는 그 개념이 우리 사회에 맞게 변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OECD에서 이야기했던 개념과 우리가 받아들였을 때의 개념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개념에는 역사적 맥락이 묻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맥락을 빠뜨리고 아까 얘기했던 순수한 결정체로써의 개념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그 개념을 써온 맥락 속에서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 사이에 그 맥락을 사산한 채, 빠뜨린 채 보면 ‘내가 배운 OECD에서, 책에서 본 개념은 지금 이거하고 좀 다르네’ 그렇게 개념적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인 문재인이 걸어오면서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온 그 개념으로써의 포용적 성장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