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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02. 2018

<누구나 게임을 한다>게임이 세상을 구원할까?-2013

 


2013년의 리뷰.  몇 년 전 <내 인생의 책 10권>에 포함시킬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던 책입니다. 지금 보면, 또 10권 목록이 바뀌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다시 퍼나른 이유는.. 이 대목 때문. 

어제 지인들과 최근 현안 관련, '크라우드 소싱'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생각이 났어요. 무튼, 2013년 7월의 글입니다. 저 책 이후에, 저만큼 재미난 게임 동네 소식을 못 들어봤어요. 그 이후,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고, 어떤 도전들이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04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500억 시간 플레이됐다. 2010년 1월 기준 1150만명. 총 게임시간은 무려 593만년. 개발사 블리자드는 사용료로만 하루 500만달러씩 거뒀다. 페이스북에서 가상으로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돌보는 농장 경영 게임 FarmVille. 플레이어가 9000만명이다. 일일 접속 약 3천만이다. 왜 다들 게임에 미치는 걸까?

각종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게임 탓을 하는 사회다. 하지만 몇 천 만명이 같은 게임에 접속하기도 하는 시대다. 게임을 사회악 취급해서 답이 나올 리 없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는 “우리는 시간을 죽일 때보다 ‘살릴’ 떄 훨씬 행복하다”는 행복학 연구자 탈 벤샤하르(Taal Ben-Shahar) 하버드대 교수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게임을 왜 하냐고? 

게임을 할 때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원해서 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힘들고 보람 있는 일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다. (51쪽) 

게이머들은 이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게임 세계에서는 전력을 다해 충실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대체 어디에서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있을까? 능력을 발휘해 동료와 함께 장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달성했을 때 찾아오는 감격스러운 성취감은? 개인적 성공과 더불어 팀에서 함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은? 물론 현실에서도 이따금 그 같은 즐거움을 경험하긴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는 그야말로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현실세계에서는 세심하게 디자인된 쾌락이나 짜릿한 도전, 강력한 결속감을 가상 세계만큼 쉬이 누릴 수가 없다. (프롤로그)


H쌤이 강추한 책이다. 프롤로그 저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임 중독이 청소년을 망치고 나라를 망하게 만들 것 처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왜 게임에 빠져드는가. 사실 답은 명확하다. 예컨대 ‘WOW’에서 사람들은 경험을 쌓고 능력을 키우고, 기술을 연마하면 평판이 높아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행복한 생산성. 그게 아바타란게 문제가 될까? 현실에서 저런 짜릿한 즐거움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저자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연구자. 미국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스펙 좋은 재원이다. 현재 미래연구소, Institute for the Future 라는 멋진 이름의 조직에서 게임 연구개발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단다. 그는 말그대로 미래를 풀어나갈 플랫폼으로 게임을 이야기한다. “게임은 미래의 실마리, 어쩌면 지금 진지하게 게임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책일지 모른다”는 철학자 Bernard Suits 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시작한다. 원제는 ‘Reality is broken’


현실은 지루하고 비루하다. 때로 우울하거나 무력하다. 그런데 좋은 게임을 즐길 때 사람들은 집중력, 창의력, 의욕이 고조된다. 끊임없이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다. 바닥에서 절정까지 고작 30초면 적은 비용으로 순식간에 감정을 극도로 활성화할 수 있단다.  

좋은 게임은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물론 우리가 게임에서 거두는 성공이 현실 세계의 성공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갖은 애를 써가며 손에 넣으려고 하는 돈, 미모, 명성 같은 것보다 게임 속 성공이 한층 현실적이다. (110쪽)


이 정도면, 왜 게임에 몰입하는지 충분히 답이 나온다. 무한 경쟁에 일자리는 불안하고 방 한 칸 장만하기도 어려운 비정한 시대, 가상현실이 낫다고 여길 게이머들은 넘친다. 게임으로 도피하는 심리, 나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쩐지 두근거린 것은, 미래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현실은 게임처럼 신날 수 없는 걸까? 정말 불가능한 걸까? 

저자는 집안 허드렛일을 게임으로 바꿔버렸다. 식기세척기 비우기, 커피 물 끓이기를 부부의 모험으로 정했다. 이른바 ‘41층 닌자 대륙’에 ‘털과 허물로 괴로워하는 견공 처녀 구하기(강아지 털 빗겨주는 일이다)’, ‘마술로 깨끗한 옷 짓기(빨래라는)’ 미션이 등장했다. 부부는 서로 화장실을 청소하려고 신경전을 벌인다. 무려 경험치 100이 걸린 모험으로 설정한 덕분이다. 

뉴욕의 6~12학년 자율형 공립학교 ‘퀘스트 투 런’은 세계 최초 게임 기반 학교다. 도서관에서 책 속에 숨겨진 수학 과제를 찾아내고 비밀 미션을 수행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성적보다 레벨 업에 온 정신이 쏠려있다. 이야기하기 수업에 참여하면 5점. 여기에 7점을 보태면 ‘달인’이 된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레벨업 할 수 있기에 퀘스트에 실패하더라도 성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레벨업은 긍정적 스트레스를 통해 학생들이 학습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힘껏 노력한 만큼 더 큰 보상을 주는 것은 게임의 기본이다. 

책에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저자가 직접 게임 디자인에 참여한 사례들이 생생하다. ‘게임’을 통해 현실을 짜릿한 도전장으로 만드는데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09년 6월 영국에서 수백 명의 의원들이 세비를 부당하게 챙긴 스캔들이 터졌다. 난리가 난 이후에야 정부는 백만 장이 넘는 청구서와 영수증을 분류도 않고 그냥 공개해버렸다. 내가 진심 좋아하는 신문 ‘가디언’은 게임 개발자를 찾아 이 사건을 의뢰했단다. 7일간 개발자들은 날 것의 데이터를 458,832개 온라인 문서로 변환시켰고, ‘의원 세비 조사단’ 프로젝트로 네티즌들에게 게임 참여를 유도했다. 가이드는 명확했다. 1) 문건을 찾고 2) 유형을 파악하고 3) 미심쩍은 청구항목을 옮겨적고 4) 왜 정밀조사가 필요한지 이유를 정리하도록 했다. 무려 2만 명이 참여했고 17만 전자문서를 분석했다. 의원 수십 명이 결국 사퇴했다. 이 프로젝트의 교훈?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여 어떤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아 내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이 게임을 이끈 개발자 사이먼 윌리슨의 말이다. 이 조언에서..여러가지 멋진 상상이 이어지지 않는가?


사람들이 정말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면 일이 달라진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잘 돌아가는 크라우드 소싱 프로젝트로 위키를 소개한다. 몰입형 게임으로서 1070만 이상의 플레이어와 3억65000만개 이상의 ‘고유장소’(위키 백과 문서)가 있으며 여기에는 137,356개의 미발견 ‘비밀 영역'(고립문서, 즉 다른 문서에 전혀 링크되지 않은), 7500개의 탐험 완료 던전(좋은 문서, 내용도 탄탄하고 인용과 증거도 충분), 2700개의 보스 레벨(알찬 글, 즉 정확성, 중립성, 완성도, 문체의 측면에서 으뜸으로 꼽힌 문서)’으로 구성된 세계다. 문서를 편집하면 변경 사항이 즉각 반영돼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난이도는 계속 높아져 도전의지를 끌어낸다. 


“더 많은 장대한 승리. 게임과 비교하면 현실은 시시하다. 게임을 하면 가슴 벅찬 목표를 세우고 모두 힘을 합쳐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적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인류는 기후 변화, 세계 경제 위기, 식량난, 불안정한 세계정세, 우울증 발병률 증가 등 역사상 최대 위기. .. 우리는 손을 내밀고, 공감하고, 필요를 깨닫고, 직접 나서고, 타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인간이다. ‘사회적 능력’이 있고, 그 힘을 모아 온라인 공간만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도 선을 행할 수 있다. 미션만 제대로 제공된다면 말이다. (350쪽)


게이머들이 실제 세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선량한 의지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실제 세계 최대 절전게임 ‘잃어버린 줄’에서 플레이어들이 서로 실제 전력 소비량을 놓고 가상 화폐를 사용하여 내기한다. ‘FreeRice,com’은 세계 기아 극복에 힘을 보태는 비영리 게임이다. 문제 답을 맞추면 가상 쌀이 10톨씩 적립되어 실제 UN세계식량계획에 기부된다. 광고주들이 돈을 대는데 날마다 20~50만명이 참여, 하루 평균 7000명 먹일 쌀을 모으고 있단다. ‘비범한 사람들’이란 게임은 틈틈이 좋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 어떤 이는 응급용 자동심장충격기의 위치를 촬영해 올리는 일을 한다. 플레이스테이션3 게이머들은 “가상 세계를 구하지 않을 때는 실제 세계를 구하자”는 구호 아래 ‘폴딩앳홈’이라는 게임에 나섰다. 하루 3000명, 분당 2명 꼴로 공동작업에 뛰어들었고 6개월 만에 전세계 어떤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도 이루지 못한 업족으로 슈퍼컴퓨팅에 한 획을 그었단다.

게임 그 자체의 스케일도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종합예술이다. ‘헤일로3’란 게임을 만드는 작업은 중세 성당 축조에 비견되기도 했다. 3년 동안 250명이 넘는 미술가, 디자이너, 작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가 힘을 합쳤다. 오디오가 54000개, 대사가 40000줄, 발소리도 무엇을 밟느냐에 따라 2700개로 세분화된다. (이쯤에서 더이상 게임돌이 아들을 구박하지 않기로 결심)

게임은 과연 현실을 구할 수 있을까? 게임을 통해 뭔가 바꿔나가는 사례들을 보다보면 솔깃해진다. 지구를 보호하는 생태 게임 같은 건 사람들의 마음에 씨앗을 뿌린다. 저자가 던진 매력적인 개념 하나는 ‘협업 초능력’. 게임을 즐기며 함께 미션을 수행하던 게이머들은 협업 증진이라는 사회적, 기술적 트렌드를 보여준다. 경쟁(compete)이란 단어가 함께(com) 노력하다(petere)는 뜻이란 걸 몰랐다. 승패에 상관없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정당하게 싸우는 것으로 협력을 자축한다. 

게임 이슈에 관심 갖는 Y님에게 책을 추천했더니 내게도 선물해준 덕분에 즐거웠다. 최근 홀딱 빠졌던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설레지 않을 리가. 다만 480여쪽에 달하는 책은 조금 더 압축해서 정리됐어도 좋을 뻔. 저자는 책 뿐 아니라 TED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했다. 구경해보고 책으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다음 세기에 이 행성이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이 게임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당 210억 시간은 해야 된다는 TED 영상이 엑기스랄까. 게임 중독? 몰입이 지나치면 행복이 일찍 시들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평생 게이머'들은 삶에 오히려 충실해질 수 있다는데, 섣불리 걱정하지 말자. 나름 문화산업 역군임에도 모든걸 망치는 주범인양 구박하고 막고 셧다운제를 도입하기보다 게임이 세상을 어떻게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나가는지 사례를 연구해보는 편이 현명하다고 믿는다. 게임 걱정에 온갖 대책을 만드시는 분들,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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