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챕터 부제를 그대로 가져와봅니다. 우리는 과학을 신뢰합니다. “기존 지식에 대한 합리적 의심, 데이터 기반의 실증적 태도와 정량적 사고, 지식의 보편적 체계화, 설명과 예측 능력이 장착된 이론의 제시”라는 과학자의 사유 방식이 신뢰의 바탕이라는 윤태웅님 칼럼이 있었죠. 솔깃했습니다. 그런데, 과학, 혹은 지식의 이면까지 좀 봐야겠습니다.
여성의 몸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요? 적정 사무실 온도 섭씨 21도에도 비밀이 있었더군요. 1960년대 몸무게 70kg인 40세 성인 남성 기준엔 맞아도, 여성에겐 23.2~26.1도가 좋다는 연구가 뒤늦게 나왔답니다. 수면제 졸피뎀 10mg 먹고 8시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야 하는데, 여성 중 15%, 남성 3%는 운전에 지장 줄 수 있는 수준의 약이 혈액에 남아 있었다고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성별 차이 고려 못한, 아니 않은 사례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2017년의 책으로 꼽았던 <아픔이 길이 되려면>. 한 권으로 김승섭님의 팬이 됐습니다. 두 번째 책입니다. 보건학자로서, 과학자로서 시선이 다릅니다. 태도랄까, 자세랄까, 조용히 깊게 들여다보고 조용히, 그러나 죽비를 내려치는 강도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됐는데, 왜 여성의 경우 우울증상이 늘어나는 것인지, 연구자로서 그는 동료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립니다. 집에서 육아와 가사는 그대로 하면서 직장일만 늘어나는 여성에게 당연한 결과 아닌가요? 그렇다면 사회구조적 이 문제는 어디서 풀어나가야 하죠? 비정규직에서 갓 벗어난 그들의 정규직은 과연 괜찮은 양질의 일자리인가요? (아래 그래프는 노동자 성별에 따른 퇴근 후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라네요)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2015년 82.45세. 그런데 소득 하위 20%는 78.55세. 상위 20%는 85.14세. 소득에 따라 6.59년 차이가 나고요. 꾸준히 늘어난 이 격차가 2025년 6.90세까지 벌어질 전망이랍니다. 유방암은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데, 가난한 여성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건 어떤가요. 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쁜 겁니까..
“암의 원인을 유전자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원인을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개인의 생활습관이라고 하면, 당사자 잘못..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일 때,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원인은 방치됩니다..흡연을 암묵적으로 권장하는 사회적 환경은 없었는지...누군가는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석면이나 라돈에 노출된 집에 살고. 위험한 화학 첨가제 실품을 먹고. 암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이런 환경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됩니다...암의 종류를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죽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쁜지 되물어야 합니다.” (202쪽)
재미난 그래프를 보게 됩니다. 'Brain Deficit' 개념. 권력과 자본이 있는 나라에 인재가 몰립니다. 1523명 상위과학자 중 75%가 미국에 있다고요. (이와중에 논문 인용지수 상위 1% 과학자가 12명 이상인 나라만 하다보니 우리나라는 없다고요..) 뛰어난 학자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더 나은 연구조건을 찾아가는 일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김승섭님은 지식과 지식인 생산의 불평등 이슈를 포착합니다. 이 문제는 뒷 부분 데이터에서 또다른 생각을 낳습니다. 2017~2018년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은 5.4만명. 중국 36.3만명과 인도 19.6만명에 이어 3위. 한국 지식인 생산공장인데, 그 나라의 이슈를 연구하죠. 강대국이 지식조차 독점하고, 자기들 관심사만 중요한, 그런 지식 생산 구조는 불평등합니다.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서글픈 현실이고. 이걸 직시해야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모색이 가능합니다.
담배에는 생물학적으로 활성화된 물질들이 있다. 그것들은 a) 암을 유발하고, b) 암을 증진시키고, c) 독성이 있고, d) 자극적이고 쾌락적이며 향기가 있다. (32쪽)
1998년 법원 결정으로 공개된 필립 모리스 내부 기밀문건인데 작성 연도가 1961년이어요. 오래도 속였네요. 와중에 흡연을 평등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여성 대상 마케팅하고, 젊은이들 사회공헌, 창의, 혁신 활동 지원하고..
스트레스 개념을 만들어낸 오스트리아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 1969년 필립모리스로부터 3년 간 15만 달러 받는 특별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법정에서 전문가로서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서 담배의 장점을 증언했답니다. 1972년 또다시 3년간 15만달러 펀딩 받고, 스트레스 등 수많은 원인이 있어서 흡연을 원인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식의 연구를 이어갔죠. 문제는 스트레스가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학계에서 정립된 바 없는 탐구중인 가설이라는 김승섭님 지적. 스트레스가 원인 아녔단 말인가요??
전문가들의 논문을 일일이 펀딩 여부 확인하면서 봐야 하나요? 연구 용역 프로젝트란게 대개 기업 아니면 정부인데. 과학자 연구는 최소한의 상도의는 있는줄 알았더니..담배 관련, 이미 2016년에 미국과 일본에서 아이코스 이용자 90명 연구했다는데, 24개 생체지표 중 23개에서 기존 궐련 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여전히 400만명이 흡연으로 사망한다는데......
미국 터스키기 매독 연구는 더 충격적입니다. 1932년부터 1972년까지 치료 않은 상태에서 합병증 관찰했는데, 1947년 페니실린이라는 치료제가 등장했음에도 불구, 치료 않고 사망을 지켜본거죠.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데, 40년 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어요...정작 당사자들은 치료 받는 줄 믿었다는데.
“일제강점기 인종주의 과학은 실증적, 정량적 측정이라는 측면에서 과학의 외피를 둘렀지만 결론은 정해져있었습니다. 통치해야 하는 '이웃집 원주민' 조선인에 비해 일본인이 인종적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 답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수집. 오늘날 이 연구들을 과학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87쪽)
A형 인자가 더 진화한 인종이라 혈액형 조사에서 조선인이 더 열등하다고, 진지한 논문들이 쏟아졌다니, 놀랍습니다.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집현전 부제학인 최만리의 글은 놀랍습니다.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당대 지식인의 내면을 지배했던, 중국을 세계 표준으로 생각하는 사상과도 싸워야 했다“고 전합니다. 1895년에 어린이 종두 접종을 의무화한 조선 정부의 결정에는 지석영 선생 등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는데요. 당시 천연두 걸리면 큰 굿을 해서 마마신을 달래던 무당들이 종두장을 불태우고 반발했다는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당대의 ‘진리’라 믿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과학은 언제나 이렇게 한 발 전진합니다.
그리스 과학이 특별한 이유는 실용적 목적에서 벗어나 세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라는데요. 최초의 과학자로 알려진 탈레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이런 질문이야말로 ‘쓸모없음’과 닿았다는 점이 특징. 신전을 올리고, 질병을 치료하고, 천문을 계산하는 실용적 학문이 아니라, 본질이 가장 쓸모없다는 주장에 꼼짝을 못하겠네요. 탈레스는 ‘물’이라는 답을 찾았는데, 조금 웃기지만, 그 발견 이후의 인류 지성사를 돌아본다면 그럴 일도 아닌가 봅니다.
이 책엔, 이런 종류의 흥미진진 사례가 이어지는데. 어쩔 수 없이, 또 센세이셔널한 것만 골라오나 봅니다. 그러나 14세기 흑사병이 돌던 유럽에서 유대인을 희생양 삼는 사연은 오래되고 질긴 악연과 운명을 돌아보게 됩니다. 실제 게토는 고립되어 있었고, 유대교는 손을 자주 씻는 생활 규율이 있었다는데...1348년 독일에서 한 유대인 의사가 잔혹한 고문 끝에 자백합니다. 랍비의 지시로 우물에 흑사병 독을 풀었다고. 가해자들은 그 자백의 타당성에 대해 ‘무지’해지는 편을 택하고,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수백 명의 유대인이 공개 화형됐고요. 공포와 분노는 합리적 의심을 말려버리고, 비과학적 설명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립니다. 희생양은 언제나 사회적 소수.
김승섭님은 현대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무서운 병인줄만 알았지, 이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질병이 된 건 몰랐네요. 0세에 감염되어도 평균 70세까지 살 수 있고, 약을 통해 체내 바이러스 농도만 관리하면 콘돔 없이 성관계해도 전염되지 않는 만성질환이라고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HIV 감염인은 에이즈 합병증이 아닌 자살로 죽고 있답니다.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 낙인과 혐오로 일반인보다 10배 많은 자살..
2010~2014년 "나는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등답이 스웨덴 3.5%, 미국 13.6%, 한국 44.2%라는데요. 왜 우리나라만 이렇게 비이성적인지 궁금할 법 한데, 김승섭님은 흥미로운 숫자를 내놓습니다. 2011~2012년 한국인 범죄 중에 3.0%를, 외국인 범죄 중에서는 26.0%를 언론이 보도했다고요. 외국인 범죄에 대한 보도 비율이 8.67배 높아서, 편견과 두려움에는 언론의 편향 보도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요..
김승섭님은 저 말을 꺼내면서 필요한 일이라고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어찌나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뵙게 되면 깊게 머리숙여 존경의 뜻을 전하고 싶네요.
인상적 대목 하나만 더 가져와봅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죽음의 죽음’이라고 했다는데.. 죽음의 주도권을 당사자가 아닌 의학에 맡기고, 임종의 시간을 삶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치러내는 의식이 아니라 병원에서 사회적으로 은폐한다는 주장. 자신의 품격을 지키며 불가피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생명연장에 애쓰다가 '의료적 처치의 중단으로 인한 기술적 현상'이 되어버린 죽음.
김승섭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동안 상식으로,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일들이 기괴하고 서글프거나, 화가 나는 일이 됩니다. 아마, 그래서,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필요하고, 계속하겠다’고 하시는 거겠죠. 진정한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