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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08. 2019

<마음의 과학>


일단 이 책의 기획이 멋집니다. 진화심리학, 신경과학, 생물학 등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한 이슈를 놓고 떠들 수 있는 마당을 열었군요. ‘지식의 지휘자’라며 엣지(Edge Foundation)를 만들고, 사람을 모앗고,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 존 브록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깁니다.

‘마음의 과학’이라고 하지만, 이럴때 영어가 좀 더 있어 보이긴 합니다. ‘The Mind’.. 읽다보면, 이것이 마음인지 뇌인지. 사실 그 경계를 나누는 시도부터 흥미진진하긴 하죠. 이들이 풀어놓는 각각의 이야기를 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수도 있겠지만.


 #새삼_행복론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 자기기만 아닌 행복이란


대표주자로 나선 스티븐 핑커. “행복의 절대 기준은 없다”며 “행복의 역설은 손실이 이익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6쪽).. 뇌라는게, 남들이 풍족한지 살피고 비교한다는 겁니다. 월급이 5% 오른걸 알면 기쁘지만 남들은 10% 오른걸 알면.. 생생 비유군요. 하지만 꼭 상대적인 것일까, 회의가 들 무렵..’긍정심리학’의 마틴 셀리그먼은 ‘즐거운 삶’ ‘좋은 삶(몰입)’, ‘의미 있는 삶’이라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첫번째 ‘즐거운 삶’은 약물의 도움도 가능하다고요. 뭔가 부질없다 싶습니다만, ‘아, 그래서 내가 술을 마시는 거구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주의자로서, 어차피 오래못갈 어마어마 행복 대신 사소한 즐거움으로 자주 뇌에 에너지를 채워주는게 제겐 중요합니다. 또 저는 몰입과 의미를 따지는 인간. 특히 일에 몰입하고 의미를 찾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일과 삶을 분리하기보다 일 자체에 의미를 두는 자체가 요즘 꼰대 인증이라고도 하지만.. 끝내 즐거운 삶, 좋은 삶, 의미있는 삶에 더 매진하고 싶네요. 
그나저나, 마틴 셀리그먼의 사이트도 대단.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과 우울 검사를 해볼 수 있다는데, 하여간에 의지의 문제이지 공부를 못할게 없는 세상이란 걸 실감합니다. 


마음의 진화, 뇌의 진화
 

인터넷과 통신 혁명이 마음의 진화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핑커는 "아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선택이 무언가를 하는 데에는 대개 수십만 년이 걸린다는 점. 그리고 정보를 빠르게 교환할 수 있는 지능은, 언어가 진화한 이래로 계속 생겨난 과정이란 겁니다. “언어는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에서 일어난 진정한 혁신.. 그 이후의 모든 혁신은 그저 언어를 더 멀리까지 전달하거나 더 오래 남도록 했을 뿐입니다.”(33쪽), 라는 말에 마음이 머뭅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얼마나 기막힌 일이었을지. 다만, 이같은 핑커의 결론은 마음을 ‘진화’라는 단어로 본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칭송하고 부러워하는 시대인데, 어찌 마음에 영향이 없겠습니까. 행복의 역설도 더 자주 일어날 것 같은데 말이죠. 대체 마음의 진화에 의미를 갖는 건 뭐란 말인가요? 인류는 계속 진화해왔는데, 뇌의 진화는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린 것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현재 우리가 뇌를 풀가동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더이상 진화하지 않는 걸까요? 영화와 미드로 나온 ‘리미트리스’, ‘루시’처럼 뇌를 확 깨우는 마법의 알약은 나오지 않을까요?  


진화의 비밀과 언어
 

언어의 등장에 잠시 혹하다보면,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이 한 마디 보탭니다. 인류 진화가 갑자기 빅뱅으로 이뤄졌다기보다, “음악, 주거, 손잡이 달린 도구, 맞춤옷, 글쓰기, 말하기 등의 발명은 10만 년 전에서 5천 년 전에 걸쳐 일어났을 수 있으며 ‘대도약’이라는 것은 고고학 발굴이라는 인위적 표본 추출에버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말하기나 글쓰기나 도구의 사용과 같은 혁신이 다른 혁신의 촉매 역할을 함으로써 문화 전체의 발전 속도를 가속화시켰을”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언어를 쓰지 않은 단계의 Mind와 그 이후의 Mind는 완전히 다를텐데. 언어는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지도록 진화한건지..


과학사를 연구한 프랭크 설로웨이가 풀어놓는 다윈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새를 훨씬 잘 알았던 조류학자 굴드의 도움을 받아 진화론자가 됐으나 굴드는 그렇지 않았다고요. 굴드는 ‘종의 기원’이 출간된 뒤에도 창조론자로 남아 있었다고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적게 보았고, 덜 아는 사람이 더 많이 본 셈”이라며, 이 지성사의 수수께끼를 기질이나 성격, 개성에서 풀어보려는 시도에 사실 공감 어렵네요.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 세상이 진화해온 것인지.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쉽게 현혹되는 삶을 스스로 목격하며 사는데 당연한 얘기인가요.  필립 짐바르도는 선한 사람을 악한 곳에 두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하다거나, 다른 사람과 다르다거나, 더 낫다거나, 더 우월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지만 대다수는 쉽게 예기치 않은, 사악한 행동을 한다고요. 기생생물이 동물의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터를 잡고, 공포의 감각을 조작하는, 스탠퍼드 신경생물학자 로버트 새풀스키가 전하는 사연은 신비롭고 섬뜩합니다. 성적 흥분도 조작될 수 있다니. 믿지 못할 것이 우리의 뇌, 마음.. 이라고 하면 힘이 빠지는데. 그래도 알고 있는 편이 나은 중요한 정보. 

18편의 글이 있어요. 저는 사실 12편만 봤어요. 골라봐도 괜찮을 책입니다. 관심사와 호불호도 다를테니까요. 우리 모임의 파트너 오윤근님은 여러 글 중 조너선 헤이트의 글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사실 좀 들어본 이름이라, 저도 중반 이후 좀 건너뛰고 마지막에 실린 이 분 글을 봤는데요. 전 가장 어렵더라고요ㅠ 다만, 이 대목... 와아.. 하며 무릎 쳤네요. 


싫어하는 정치가를 생각할 때 혹은 배우자와 방금 사소한 견해 차이를 보였을 때 자신의 의식 흐름을 지켜보라. 마치 법정에 설 준비를 하는 듯하다. 그때의 추론 능력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논증을 생성하는데 동원된다. 우리가 직감을 전혀 못 느끼고 결과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는 분명히 냉철하게 추론할 수 있지만, 도덕적 견해 차이가 있을 때는 거의 그렇지 못한다. 데이비드 흄이 오래 전에 말했듯이, 이성은 열정의 노예다. (371쪽)


여전히 미지의 세계, The Mind 

대체로 현란하게 잘 차려진 ‘마음의 과학’은 호기심을 낳습니다. 그러나 진정 궁금한 건 안 풀린 기분.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관리하는 뭔가 물리적 구조적 뇌, 오감을 종합하는 분석적 뇌, 희로애락부터 백 만 가지 기분과 느낌을 만드는 감성적 뇌, 기생생물이나 약물로 조작되기도 하지만 개나 침팬지보다 똑똑한 기능적 뇌.. 무튼 이걸 막 굴리는 CPU. 이 중 제대로 밝혀진건 하나도 없다는. 또 이 가운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마음'이라는 건가요. 인간의 본성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존재의 비밀은, The Mind 에 대한 현자들의 설명만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 온갖 질병을 극복하며 수명을 수십 년씩 늘리는 과정에도,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앞두고서도 아직 그렇다는게, 한편 다행이다 싶습니다.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우린 좀 더 많은 수수께끼를 풀겠지만, 오래 걸릴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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