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항쟁 : 고려 시대, 1270년에 강화도의 삼별초가 몽골 세력에 대항하여일으킨 항쟁. 왕실, 친몽골파 귀족들과 대립되는 친무인파와 기존의 반외세·반정부의 기치를 든 일반민중의 참여로 일어난 13세기 후반의 가장 방대한 항전. 1273년 고려와 중국 원나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제주도에서 완전히 진압되었다. (Daum 백과 등 종합)
역사는 비정합니다. ‘삼별초의 항쟁’, 혹은 반란으로 규정해 ‘삼별초의 난’이라 할 사건에 대한 기록은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배중손이 강화에서 시작했고, 진도로 내려가 위세를 떨치다 패한뒤, 김통정이 제주로 이끌고 갔다가 끝내 전멸했다죠. 13세기 가장 방대한 항전이라지만, 몇 몇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남은게 없습니다.
그런데, 선유 작가, 난데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천 년 전이든 만 년 전이든,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지구별에 태어났지요."
인간이 되기 위해, 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나, 문득 심각해집니다. 저런 생각을 놓치고 산지 너무 오래됐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습니다. 사랑을 최종목표로 붙잡고 살지 않았던 삶은 비루하지 않은가 싶은 두려움이 뒤를 따릅니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인간은 쓰고, 노래하고, 그리고, 몸짓을 다했는데.
지난 8월 "(선유 작가의) 연애소설 <가시리>를 제가 썼습니다"라고 김탁환쌤이 커밍아웃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내 콩쿠르 상을 한 번 더 받았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쌤이 썼듯, '제국에 저항하며 뜨거운 사랑을 키워가는 <가시리, 높고 고운 사랑노래>' 초고를 쓴지 한 달 무렵에 세월호가 침몰했고, 책의 운명까지 바꾼거죠. 역사로맨스를 쓰기 어려웠던 그 시기, 김쌤은 '2015년 봄부터 2017년 봄까지 <목격자들>과 <거짓말이다>와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와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를 잇달아 냈습니다. 당시 우리의 절망과 슬픔을 다 떠안고 글로 옮겨주셨죠. 그 기록들에 무척 고마웠는데, '가시리'만 뒷전으로 밀린 셈이네요. 뒤늦게 살려낸 이 작품은 쌤 이름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아버지를 찾은 건,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에서 <가시리> 를 음악극으로 만든 덕분입니다. 10월에 공연이라죠.
김쌤이 커밍아웃하기 이틀 전 토요일. 합정역에서 홍대 벨로주까지 함께 걸어가며 제가 김쌤에게 이런 말을 떠들어댔어요.
"쌤. 사랑소설을 쓰신다고 들었는데, 어찌 되고 있나요? 최근 박상영님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아주 기막히더라고요. 환희와 절망을 이어가는 절절한 사랑. 그런데 작년에 제가 꼽은 최고의 사랑소설이 <그해, 여름 손님>이었거든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원작 소설요. 둘 다 마침 남자들의 사랑이잖아요. 지난번에 제가 떠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사랑이란 건 인기 없는 단어라면서요. 사랑 우정 가족 같은 단어가 덜 쓰이고, 썸, 혼밥, 반려견 이런 단어가 더 많이 쓰인다고요. 그냥 이성의 사랑은 덜 절박하거나, 덜 미치거나. 그래서 미친 사랑 얘기는 다 퀴어인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사랑소설이라면, 뭔가..."
요즘 우리 작가님들 중에 사랑소설 기억나는게 별로 없기도 하고. 사랑이 유효기간을 다 한 시대인가, 이런 꼰대의 마음도 부인할 수 없고. 어쨌든 기대가 부풀고 있었어요. 김쌤은 진정 성실한 작가. 14년 이후, 제가 읽은 것만 <목격자들>과 <거짓말이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 <살아야겠다>, <대소설의 시대>.. 그 외에도 언급하셨듯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까지. 팬으로서 늘 고마웠죠. 그런데, 세상에.. 숨겨놓은 작품이 하나 더 있었군요! 심지어 사랑소설. 팬에겐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이 여름, 제게 행복한 호사가 하나 더 안배되어 있었다니. 미처 알아채지 못한 미련한 팬이라는 질책은 그냥 묵묵히 감당하겠습니다.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푹 빠져보렵니다. 아이고 좋아라. (8월19일 제 페이스북)
<가시리>는 삼별초 항쟁을 배경으로 한 사랑가. 아청이라는 당대의 가인, 함께 자라며 옆을 지켰던 두 남자, 좌와 우가 있습니다. 둘은 무장입니다. 무인시대였던 고려의 남은 자존심들. (고려) 왕국은 (중원의) 제국에 밀려나 강화도에서 힘을 쌓고 있었고, 제국에 맞서 왕국을 지키려는 자와 제국을 인정하고 따르려는 자가 있었던 시절이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는 자와 일제와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자가 있듯, 어느 시대가 다르겠습니까. 삶의 무게가 무거운 두 남자에게 아청은 마음을 다해 지켜야만 하는 순수. 짝으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거리지만, 자제하거나, 욕망하거나. 역시 사랑의 최대 방해꾼은 공적 사명감인가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버리고 새로 만들기 위해 둘의 운명은 가볍지 않습니다. 둘 다 불안한 영혼입니다. 그리고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 좌와 우의 생각이 어떠하듯, 아청은 아청입니다.
"사랑하는 남자라고 해서, 자신의 운명을 그에게 의탁하는 건 애당초 아청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방상의 으뜸 가인 아청에겐 무엇보다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했다…그녀에겐 의지가 또한 사랑이었다." (35쪽)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좌와 우가 그렇게 흔들리지도 않았겠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가인으로서 최고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깊고 단단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참으로 소박합니다.
“곰을 피해 달아나느라 애를 먹었지. 엄청 빠르더라. 하지만 목숨은 건졌고 네게 꽃까지 건넸으니, 멋진 날이었어” (102쪽)
목숨은 건졌고, 네게 꽃까지 건넸으면 족한, 그걸로 충분히 멋진 날이라고 기억할 수 있는 이 남자. 그저 함께 하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될 뿐이고, 개인의 의지만으로 안되는 '난세'인걸요.
“무게도 깊이도 넓이도 전혀 다른 그리움이었어... 강화경에 내리며 깨달았어. 난 앞으로 더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리란 걸. 목숨이 끊길 가능성도 훨씬 커. 그러니 아청 너를 사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253쪽)
조국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그런 드라마는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시대를 사는 개인주의자로서, 국가의 운명을 위해 사랑 따위 접어야 하는 마음에 기가 막혀요. 실상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 이 시대의 규범은 국가권력 대신 국민을, 국민 개인의 기본권을 말하고 있는데, 반만년 역사에서, 이런 헌법을 내세울 수 있는 세월은 찰라에 불과한게 맞군요. 죽어있던 이 법문을 살려낸 시절도 얼마 안됩니다. 그러니, 국가 앞에서 사랑과 욕망을 거세하는 주인공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좌는 왼손을 펴 내려다보았다. 그 손으로 코와 입을 덮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아청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이제 다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좌는 충분히 아청을 느꼈다. 들숨마다 그녀가 몸속으로 들어와 구석구석 머물렀다." (271쪽)
어찌됐든 참고 멀리해야 하는 이성의 논리가, 가슴의 박동에 졌기 때문에 더 절절한게 사랑. 들숨마다 사랑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네요. 제가 그렇네요. 가슴이 메마르고, 심장이 퍼석거리는 사람이 되어버린건지 겁이 나네요.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하셨죠. 그 사랑을 오래 남기는 것도 결국 기록입니다. 노래입니다. 노래가 사람을 움직이고, 시대를 좌우합니다. '서경별곡', '가시리', '정석가', '청산별곡', '한림별곡'을 지나 '만전춘별사'까지 아청이 부르는 노래가 몇 백 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해버린 평범한 개인의 사랑노래가 세월을 건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이렇게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살아납니다.
사랑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는 모두 사랑노래다. (262쪽)
이것은 제 '성덕' 인증 독후감. 어제 쌤 뵙고 사인 받고, 인증샷까지. 거의 하룻밤에 다 읽어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좀 더 길게, 좀 더 독하게 써주시지. 가슴 시리고, 애달파서 울렁거리는 그런 사랑 이야기, 너무 오랜만이라 갈증이 남기는 합니다.
정리 못한게 훨씬 많지만, 김탁환쌤 덕후 인증 독후감들입니다.